[칼럼]MB의 추진력과 비가역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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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MB의 추진력과 비가역적 변화에 대한 두려움
  • 이상이
  • 승인 2008.05.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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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복지국가 Society(www.welfarestate.net)에 이상이 공동대표가 기고한 칼럼의 전문이다. (편집자)

전라북도 새만금 간척사업은 군산 앞바다에서 시작하여 변산반도를 잇는 총연장 33Km의 방조제를 구축하여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농지를 얻는 국내 최대의 농업간척사업으로 출발하였다.

이 사업은 당시 경제기획원 등 경제부처에서도 타당성에 회의를 품고 있었던 것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대선 당시 정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국민의 혈세를 퍼부은 이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 파괴사업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난 대선 시기 모 정당의 한 예비후보는 여기다 골프장 100개를 짓자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으니, 새만금 간척사업 원래의 목적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다. 실패한 사업이다. 그런데 되돌릴 수가 없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은 어떤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정에 실망해있던 국민들이 처음에는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대운하 공약에 관심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찬성여론은 20% 대에 묶여있고 명시적 반대 여론은 60%에 이른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이 가져올 경제성장효과에 일시적으로 현혹되었던 많은 국민들이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 사업의 ‘비용-효과’ 분석을 나름대로 끝낸 것이다.

감히 짐작컨대, 이 사업의 가장 큰 비용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 파괴’였을 터였고, 더 큰 문제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많은 정책들이 새롭게 추진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외국에서도 정권교체에 따라 보수정권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나중에 재집권한 진보정권에 의해 민영화된 기업이 다시 국유화되는 일을 왕왕 보게 된다. 선거공약과 선거과정에서 표출된 민심을 수렴하여 이렇게 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만약, 새로운 정권에 의해 추진된 어떤 정책이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거나 부작용이 크다면, 이를 과거의 정책으로 되돌리든지, 아니면 과거의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다른 방식으로 해당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

민영화된 기업에서 문제가 크게 생기면, 이를 다시 국유화함으로써 상황을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감세를 하였더니, 이 정책의 기대효과가 미미하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였다면 국민의 뜻을 모아 다시 증세와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기조를 바꾸면 된다.

최근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부유층 중심의 증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좋은 사례다. 이것이 가능한 것도 민주주의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강력한 적을 만나고 있다. 대선 공약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시점에서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반대하는 일, 그 중에서도 한 번 저지르고 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소위 ‘비가역적 변화’가 자명한 일을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세력이 그들이다.

농지를 확보하겠다며 농림부의 주관 하에 시작되었던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파괴 사업, 새만금 간척사업의 결과가 오늘날 “여기다 골프장 짓는 것이 훨씬 더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회자되던 웃지 못 할 상황에서,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의 참혹함을 본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은 어떤가? 이 사업의 결과가 애초의 사업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면, 현 정부는 이를 애초의 국토 그대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한 번 우리 국토의 찢겨진 ‘비가역적 변화’의 참혹함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반대한다.

최근 들어, 우리는 ‘비가역적 변화’의 참혹함을 보여줄 민주주의의 적을 보건의료영역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부처는 이명박 정부 취임 이래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의료민영화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미국 영화 ‘식코’가 위력을 떨치며, 미국식 의료민영화의 참상을 고발하자, 이에 놀란 네티즌들이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제시하였던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국민건강보험법 상, 국내의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당연히 진료제공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뜻)의 폐지’에 격하게 반발하면서, 이것이 총선의 정치쟁점이 되자, 여권이 태도를 바꾸더니 마침내 복지부 장관이 ‘당연지정제 폐지’를 추진하지 아니하고, 이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현 정부가 애초 검토하였던 ‘당연지정제 폐지’를 통한 국민건강보험의 무력화와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이에 조응한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이라는 ‘급진적 의료민영화 시나리오’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경제부처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계획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국민적 저항이 심한 급진적 의료민영화 대신, 다소 ‘정교한’ 형태의 의료민영화 기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보건복지가족부도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당연지정제’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 참여정부 시기 유시민 전 장관이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국회에 1년 동안 계류되어 있다가 최근 버림을 받았던 ‘의료법 정부개정안’을 제18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다시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 의료법은 ‘누구든지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유인하여 의료기관에 알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민영의료보험은 환자를 모집하여 의료기관에 알선함으로써 영리를 취하는 업종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의료법 전부개정법률(안)에 의하면, 민영의료보험 회사들이 비급여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환자 알선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적법해짐에 따라 민영의료보험 회사들이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매개로 유명 의료기관들과 서비스 공급 및 의료수가 계약을 맺고, 환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요즘처럼 의료기술의 개발과 순환이 빠른 세상에서 고급의료를 의미하는 비급여 의료서비스는 그 영역이 급속히 팽창할 것이고, 한 번 민영의료시장에 들어온 비급여 의료서비스 항목들은 국민건강보험 영역으로 옮겨가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두 가지의 힘이 작용해서 그렇게 된다. 첫째, 민영의료보험 회사와 시장의 힘인데, 이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한 번 자신의 사적 사업영역으로 들어온 영업용 상품을 절대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미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여 혜택을 보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이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 고급의료기술을 국민건강보험의 급여항목에 포함하려면 건강보험재정 소요가 크게 늘게 되고, 자연히 국고지원의 증액과 함께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데, 이미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의 부담(사실 건강보험료는 이 분들이 훨씬 더 많이 부담하고 있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는 분명하다. 국민건강보험은 오래된 또는 저급한 의료기술을 중심으로 급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되고, 민영의료보험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점차 국민건강보험보다 더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질적 양극화가 명확해지고, 값비싼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안 되는 국민은 보편적 의료보장으로부터 소외되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이 구조화된다.

뿐만 아니라 민영의료보험과 이에 대응하는 의료기관의 불필요한 고급화 경영전략 때문에 국민의료비도 급속하게 치솟게 된다. 이는 서민가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경제에도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이것이 의료민영화의 결과다. 우리는 미국의 경험에서 이를 잘 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것은 그 다음이다. 현 정부가 도발한 의료민영화가 기대한 정책효과보다는 심각한 부작용과 병폐만을 양산한다면, 그래서 민심이 의료의 공공성을 확고히 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러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확언하건대, 혁명적 상황이 연출되지 않은 다음에야 별로 달라질 것은 없게 된다. 이는 ‘비가역적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것 또한 미국의 사례에서 잘 보고 있다.

미국의 의료민영화체계는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60% 이상과 의사의 60%가 현행 미국의료제도를 우리나라나 캐나다와 같은 전국민의료보험체계로 바꾸자는 데 찬성한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영부인이 나서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의료체계 개선 노력은 초반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미 공고한 민영의료 이익체계가 어떤 공적 방식의 개혁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이것 외에도 의료체계 ‘비가역성’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한미 FTA 체결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제도 하에서는 미국이나 외국의 민영의료보험 회사들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의료보험 영업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의료기관과 민영의료보험 회사가 직접 계약하는 미국 방식의 본격적인 실손형 의료보험제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국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끝내 경제부처가 기획한 ‘정교한’ 방식의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여 이를 관철한다면, 그래서 미국식 의료민영화의 시초가 열리면, 당연히 미국계 민영의료보험 회사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이후 정권이 바뀐들, 새 정부가 이 회사들의 영업을 사실상 어렵게 하는 ‘획기적인 의료 공공성 강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 경우에는 아마도 한미 FTA 협정에 따른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작동할 것이다.

절대 다수 국민의 뜻이 없는 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자명한, 비가역적 제도 개혁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확고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하려는 자들,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민영화하려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거역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추진력을 가지고 도모해야 할 일, 국민적 지지가 가 있는 일은 환경과 공공성의 가치 파괴가 아니라, 환경과 의료 등 사회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정책방향이다.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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