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치과이야기]르네상스와 해부학 : 세계관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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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치과이야기]르네상스와 해부학 : 세계관의 전환
  • 강신익
  • 승인 2004.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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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세기 유럽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급격히 변해가는 소용돌이 속을 살아가고 있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그곳의 학자들이 서방으로 이주하면서 천년 넘게 간직해 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의학 지식을 서방 인들에게 전해주게 되었으며, 활자와 동판화 등이 발명되면서 이러한 지식은 신속하게 유럽 전체로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것을 신과 교회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중세적 사고방식에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는 마침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선언함으로써 중세적 세계관에 결정타를 날린다.

이처럼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를 “세계와 인간의 발견”이라고 부른다. 콜럼버스와 코페르니쿠스가 ‘세계’의 발견에 기여했다면, 르네상스 정신의 화신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해부학자 베살리우스는 새로운 ‘인간’을 발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과학, 예술,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종합적 자유지성의 화신이었으며, 뛰어난 해부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통스런 노력으로 수많은 사체를 해부했으며 뛰어난 솜씨로 인체의 각 부분들을 스케치했다.

상악동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것도 그였으며(그림 1), 대구치와 소구치를 구분하고, 치아의 존재 여부에 따른 얼굴모양의 변화에 주목한 것도 바로 그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스케치들은 그가 죽은 다음까지도 오랫동안 출판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스케치에 담긴 시대정신마저도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브뤼셀 태생의 의학자 베살리우스는 1543년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정교한 해부도를 담은 책을 출판함으로써 체액설에 근거한 고리타분한 고대의 의학과 담을 쌓는 분수령이 된다. 그는 치아가 뼈와 다르다는 사실과, 치아의 내부에 치수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그림 2)

베살리우스의 뒤를 이는 해부학자들은 이후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하나씩 바로잡아간다. 콜롬보는 죽은 태아를 해부하여 턱 속에 이미 치아의 싹(치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어린아이가 먹는 모유로부터 치아가 발생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았다.

팔로피오는 영구치가 유치의 뿌리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발육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하악골이 두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뒤엎었다. 유스타키우스는 1563년에 치아의 구조에 관한 최초의 책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그는 치아의 형태뿐 아니라 미세구조와 발생과정, 그리고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아무리 용감한 개라도 이빨을 잃게 되면 갑자기 겁쟁이가 된다는 관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몸의 구조와 정신의 관계를 논한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르네상스의 지성들은 세계와 인간을 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시대정신의 흐름을 크게 돌려놓았으며, 그 결과로 새로운 세계와 함께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에 직면해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난 다음 얻어진 것이란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의 탄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이론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을 책 서문에 써야 했고 그나마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야 그 책을 출판할 수 있었으며, 베살리우스도 기존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파두아 대학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서서히 기득권의 벽을 넘기 위한 새로운 흐름을 준비하고 있다. 탄핵이라는 주류의 반격에 촛불로 저항했으며 어정쩡하나마 총선으로 그들을 심판했다. 그러나 진정한 시대적 변혁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르네상스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세상을 인간을 중심으로 한 세상으로 바꾸어놓았듯이, 우리는 냉전적 증오를 중심으로 한 닫힌 세상을, 사랑으로 충만한 열린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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