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喜怒哀樂] 말년 공보의, 초보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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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喜怒哀樂] 말년 공보의, 초보 치과의사
  • 최훈
  • 승인 2008.01.03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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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주시 동강면 공보의 3년차 최훈입니다. 얼떨결에 글을 쓴다고 하긴 했는데 막상 쓸려니 어렵네요.

저는 1년차 때 완도군 소안도에 있었습니다. 소안 그러면 대부분 잘 모르시던데요 보길도는 아시지요. 보길, 노화, 소안 세 섬이 한데 모여 있답니다.

섬에서의 일 년, 재밌는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일단 대학까지 집에서 다니다 보니 처음으로 집에서 떨어져 지내게 되는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공보의로 간다는 생각보단 수련회 가듯이 별 생각 없이 갔었지요. 학생 때 선배들 보건소 놀러가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막상 놀러가던 거랑 살러 가는 거랑은 많이 다르더군요.

2005년 4월 25일 첫날 근무가 시작됐는데 첫 환자로 할아버지가 #35였던가 많이 부어서 오셨더라구요. 근데 막상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하려니까 뭘 해야하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후후..

그래서 잠시만 기다리시라하고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고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도 나긴 하지만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수업 때 좀만 덜 졸았으면, 실습할 때 좀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당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년차 마지막해가 됐네요. 삼개월정도 남았는데 지금도 1년차 때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체어에 앉혀놓으니깐 4살짜리 꼬맹이가 눈물 한 방울 뚝 흘리면서 ‘살려주세요’라고 했던 일, 이를 살펴보자니깐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자기를 살려주려면 뽑아만 달라던 할머니, 저녁에 의과, 한의과 공보의와 저보다 한 살 어렸던 내과 의사랑 같이 술 마시며 했던 얘기들, 후배들이 놀러 와서 역시나 술 마시며 했던 얘기들, 함께 본 별들, 나름 날마다 뛰려고 했던 항까지 가는 조깅길…

뭐 좋았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요.

겨울 가뭄에다 보건소 수도가 터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물이 없어서 간단히 세수 정도만 하고(이때 5일 급수까지 했었지요, 5일에 한번 12시간만 물이 나오거든요), 밥은 점심때 식당에서 사먹는 걸로 하루를 때우고, 환자 치료가 맘대로 안돼서 속상했던 적도 있고, 지금도 그렇지만요!! 섬에서 나름 조깅이며 요가로 몸 만들어서 주말이면 광주로 나가서 다시 몸 버리고 섬으로 들어온 일(이유는 아시겠죠, 후후)…

술자리에서 건치 기자님이 글 주제로 여러 가지 해주셨던 얘기 중에 그나마 섬에서 있었던 일이 제일 나을 거 같아 쓰긴 했는데 도통 생각이 잘 나지 않네요.

하지만 처음으로 시작한 공보의 생활 아니 처음으로 시작한 치과의사로서의 길, 그리고 그때의 설레임과 두려움 각오 다짐 등이 생각나네요. 덕분에 공보의를 마무리하는 이때에 다시 한 번 처음의 마음가짐을 되새겨보게 되네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도 선배님들 곁으로, 새로 시작하는 초보 치과의사로서 살아가게 되겠죠. 처음의 마음가짐 잊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훈(공보의, 나주시 동강면 보건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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