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카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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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카톨릭교회
  • 이동호
  • 승인 2007.12.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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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⑤

캄보디아에 카톨릭이 처음 소개된 것이 1555년이라고 하니 캄보디아 카톨릭교회의 역사는 450년이 넘습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선교역사에 비해 카톨릭교회의 현재 위상은 사실 너무나도 미미합니다.  예비신자를 합쳐 교회에 나오는 교인의 수가 1만7천 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의 반 이상은 베트남계라고 합니다.

300년의 프랑스식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카톨릭교회가 캄보디아인들의 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캄보디아인들의 삶과 하나가 된 불교의 압도적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로 한 오랜 독립전쟁에도 불구하고 카톨릭교회가 일정 정도의 교세를 확보하고 있는 이웃 베트남과는 전혀 다른 전통을 캄보디아는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중국문화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베트남과는 달리 인도의 흰두교와 태국불교의 영향권내에 있었던 캄보디아의 오랜 역사적 맥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54년 독립 이후 권력을 획득한 시하누크 전국왕은 반미주의자였으며 자국 내의 미국인들이 CIA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 론놀의 군부쿠데타에 의해 친미정권이 들어서자 일시적으로 카톨릭과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수도 프놈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이 폴 포트의 크메르루즈에 의해 장악되면서 선교활동은 위축되었고 마침내 75년 수도 프놈펜의 함락으로 카톨릭을 포함한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숙청과 학살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4년의 크메르 루즈 정권 동안 남아 있던 모든 교회와 성당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79년 베트남의 침공 이후에 유엔이 들어오고 90년에 다시 정부가 들어섰지만 명목적으로 허용된 종교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Kingdom of Cambodia"라는 국명과 앙코르와트가 그려진 국기에서 짐작하듯 훈센 정부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를 정치에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즉 국교인 불교를 내세워 정치권력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카톨릭과 개신교에 대해서는 NGO구호활동에 국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훈센정부는 내각에 종교부를 두고 국민들의 종교활동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개혁과 민주주의발전, 사회발전에 불교의 역할이 미미한 현실을 볼 때, 캄보디아에서 불교의 역할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 어디를 가나 화려한 사찰이 동네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절이,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십일조에, 시주돈에 눈멀고 크고 화려한 건물에만 관심을 둔다면 결국엔 어디로 갈 것인가...조금 답답하기도 합니다.

시엠립의 유일한 카톨릭교회는 저희들의 숙소 바로 옆 시엠립강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3개 교구에 3분의 주교님과 50여 분의 신부님들이 사역하고 있는데 캄보디아현지인 출신의 신부님은 전국에 5명이라고 합니다. 한시적으로 카톨릭신학대학이 설립되어 사제들을 양성하기도 했지만 지원자가 워낙 적어 유지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신부님은 한국외방선교회와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 7분 정도가 NGO활동과 선교활동에 애쓰고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은 캄보디아의 카톨릭NGO활동을 주도해온 예수회가 그동안 캄보디아를 10여개 나라의 신부님들이 공동으로 관리해 온 공동교구였으나 지난해에 한국전담교구로 지정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온 신부님들이 예수회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 분들이 한국예수회의 지도,감독을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변화된 위상을 실감케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일날 오전의 성당은 시엠립의 곳곳에서 모여든 학생들과 교인들로 제법 북적입니다.

교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교리공부와 영어강좌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소중한 공동체로 역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교회에서 더불어 지내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 뒷 편에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듯 세 사람의 목수가 일요일에도 열심히 땀흘리고 있었습니다.  교회건물은 캄보디아의 전통양식을 결합하여 통풍이 잘되도록 지어져 있습니다.

오전 10시 반 쯤, 미사와 공부가 끝나고 제법 많은 학생들이 트럭에 나누어타고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해맑고 환한 학생들의 표정들은 지금까지 캄보디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희망의 메세지를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개인적 구복에만 정성을 쏟는 캄보디아불교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가르치는 카톨릭교회 안에서 공부하는 이 학생들이 나중에 캄보디아사회의 일꾼들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카톨릭교회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정신적 안식을 제공하고 자립과 재활을 돕는 역할을 더욱 많이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성장하길 바랍니다.

교회에서의 오전 일과의 마지막은 늦은 아침 (이른 점심?)입니다. 학생들이 돌아간 후, 신부님과 교회스텝들은 모여서 소박한 주일식사를 함께합니다. 따로 점심시간이 없으니 이른 점심인 셈입니다. 점심시간이 없는 것은 똔레삽호수를 건너 바탐방쪽의 수상마을인 쁘렉또알의 선상교회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기 위해 출발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현지식으로 차려진 식사는 볶은 채소와 개구리튀김의 두가지 찬에 밥과 묽은 수프가 전부입니다. 캄보디아인들이 즐겨먹는다는 개구리요리는 아마도 생선과 함께 중요한 단백질원인 듯 합니다. 카레로 볶은 개구리는 그런대로 별미입니다. 연세가 지긋한 외국인수녀님도 캄보디아생활이 짧지 않은 듯 잘 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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