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보건의료]①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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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보건의료]① 괴물
  • 김사라
  • 승인 2007.09.1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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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의료보장을 어떻게 보는가를 객관적으로 알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국민정서 읽기란 통계적인 조사를 통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중매체나 언론에서 언뜻 언뜻 나오는 보건의료나 사회보장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의료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는데 간접적이나마 도움이 된다.

본지에서는 영화 속 보건의료 칼럼을 통해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의료 혹은 의료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건강정책포럼 웹진에서 연재하는 『영화 속 보건의료』 칼럼을 건강정책포럼의 양해 하에 전면 게재코자 한다.  편집자

 

우리나라 성인 중 영화 ‘괴물’을 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줄거리를 아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봤다는 것이다. 괴물은 탄탄한 스토리보드와 연기력, 특수효과 등 여러 가지 영화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더 호소력 있는 것은 중간중간 삽입된 간단한 에피소드 들이다.

괴물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합동 분향소의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들이 떼굴떼굴 구를 정도로 슬퍼야 하는 장면에서 한 경비원이 ‘아반떼 0000’를 외치며 ‘차를 그렇게 대 놓으면 어떡해요?’ 하는 대사가 나온다.
아줌마스러운 아줌마 한 명이 뛰어 나가면서 미안한 몸짓을 보인다. 실로 한국적이다.

이 장면이 왜 웃음을 주는지는 한국인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한 장면이니까. 심각해야 할 장면에서, 주차문제의 심각성을 희극적으로 묘사한 이 대목에서 한국인은 요절복통 한다.

괴물에서는 여러 군데 보건의료인이 나온다. 첫 장면에서 미군부대 부검실의 의사들이 나오고, 주인공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병원에서 의료진이 대거 출연한다. 작가, 그리고 감독은 의료인 혹은 의료기관을 아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병원에 대해서, 혹은 의료인인 친구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괴물에서 나오는 의료인은 대개 두 갈래로 나오는데, 한 쪽은 거짓말쟁이고 한 쪽은 무책임 무관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쪽 다 별로 좋지 않은 편인데 한 쪽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해를 끼치고, 다른 한 쪽은 그럴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주인공 박강두의 체내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급기야 뇌 조직검사를 하는 의사,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방류할 것을 종용하는 의사가 악의적인 의사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모두 외국인이다. 그들에게 우리 국민의 건강은 관심 밖의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인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초기에 저항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방독 마스크를 쓰고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일’을 수행한 의사. 살인사건으로 말하면 살인 교사자와 살인자의 관계라고나 할까. 이 관계는 바이러스가 없다고 속인 의사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박강두가 탈출한 후 음성변조를 거쳐 언론과 인터뷰를 한 간호사 역시 환자를 ‘괴물’보듯 한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 ‘간호사가 관절염 생기게 됐어요.’ 하는 대사에서 이 간호사의 관심은 자신이 받은 피해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박강두가 괴물 접촉자로 자진 신고한 후 가게 된 병원 응급실의 의사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아반떼 외침과 마찬가지로 흔한, 하지만 매우 한국적인 의사이다. 일반적으로 대중매체에 나오는 의사는 쌀쌀맞지만 단정하다.

그렇지만, 다음 날 검사가 있음을 말하고 금식을 권하는 이 의사, 껄렁하기 그지없다. 다듬지 않은 수염, 꼬질꼬질한 가운, 세상만사 귀찮은 듯한 어투. 우리나라 병원, 응급실 등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공중보건의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기억한다.

설명 자세하게 해주지 않고, 반말로 끝을 흐리고, 부지런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뭔가에 찌든 것 같다.

의료인과 의료서비스는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국민이 보는 의료에 대한 정서를 ‘괴물’에서 읽는다면, 국민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악한 의료와, 이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의료, 그리고 전문성도 윤리성도 없는 의료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에게서는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은 물론이려니와, 최소한의 환자에 대한 배려도 찾을 수 없다.

자유경쟁체제 안에서 환자=이윤 창출을 위한 중요한 고객이라는 방정식조차 세우지 못하는 의료. 우리의 현실일까? 절대 아니길, 감독의 개인적인 편견이기를 바란다.

김사라(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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