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이어진 건기(乾期)의 마지막 때여서 일까, 알롱껑안으로 가는 길 주위엔 단 한 뼘의 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인 수백 평 단위의 대지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캄보디아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야자수잎과 나무줄기, 비닐조각 등으로 짜깁기하듯 엮은 집들도 그렇지만, 쓰레기와 생활오수로 가득찬, 이 곳이 원래 늪지대였던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진흙탕 시궁창 바로 위에서 사람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두 눈으로 보고서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이들은 원래 프놈펜 시내의 메콩강과 똔레삽 강변에서 촌락을 이루며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 가던 사람들이었다. 5년 전, 원인 모를 큰 불로 이들의 생활터전이 몽땅 타버리자 캄보디아의 훈센정부는 그들을 몽땅 실어다 이곳에 풀어놓았다.
사람들은 우선 잠자리와 한낮 더위를 피할 거처를 위해 움막을 지었고 빗물을 모으거나 웅덩이의 흙탕물을 걸러 마셔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마을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제법 자리 잡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움막과 항아리로 살아 간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빗물을 모을 수 있는 큰 플라스틱 물통이 외국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가구마다 지급되었다는 것과 마을 공동우물이 일본 NGO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해 부산의 외국인노동자인권센터와 한 NGO의 지원으로 지어진 2층짜리 중고등학교 건물에서 이제 마을 아이들이 중고교 과정까지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받는 한달 임금은 '평균 30불', 그것은 그들에게 가족의 식량을 해결해 줄 정도의 큰 돈이다.
일요일 낮,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고 붉은 황토색의 마을 길 위엔 동네의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열 여섯명의 낮선 손님들의 출현에도 마을은 아무일 없다는 듯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미국과 필리핀의 메리놀회에서 3년 전부터 시작한 마을주민사업의 터전인 '메리놀센터 건물'은 마을 입구의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를 초청한 한국외방선교회의 신부님과 센터의 현지인 스탭들이 진료팀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가장 경이로웠던 보석, 10여 명의 젊은 친구들이 눈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들은 대개 열 여섯에서 스무살 정도의 고등학생들이었는데, 그들과 함께 했던 일주일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이었다.
이동호(건치 부경지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