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의사가 의사에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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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의사가 의사에게'2
  • 편집국
  • 승인 2007.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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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료법이 입법 예고된 초반기에 간호진단, 의사의 설명 의무, 임상진료지침 등의 문제를 중요시했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의료법 개정안에는 담겨 있었습니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무한대로 열어주는 의료법 개정안

앞에서 한국 의료의 최근 한 경향으로 병원의 멀리플랙스화를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의 제한을 완전히 풀어버렸습니다. 의료법인이 무한대로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가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어 추가적인 부대사업이 합법화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만큼 그 절차와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보건복지부령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부대사업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병원협회의 로비에 약한 보건복지부는 병원협회가 요구하는 거의 모든 사업을 부대사업으로 승인해 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개정안 통과시 그간 병원협회가 지속적으로 로비를 펼쳐온 사업들이 바로 부대사업으로 승인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업, 관광숙박업, 관광객이용시설업, 관광편의시설업, 사회복지시설업, 병원체인사업 등입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당장 병원은 지하에 온천장이나 목욕탕을 만들고 숙박시설을 만들어 여관업을 하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관광지역의 경우 일부 공간만 진료를 담당하고 대부분의 시설 공간은 온천, 마사지, 피부 미용, 숙박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무늬만 병원’인 병원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대부분의 병원이 이러한 사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병원을 구조 조정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현재에도 돈이 안된다고 필수 진료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과를 폐쇄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돈벌이 수단이 늘어난 마당에 그런 업무나 과를 굳이 둘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대형병원의 경우는 좀 다르겠으나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은 전체 병원 구조를 조정하여 부대사업 위주의 틀로 다시 짜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입니다.

병원협회의 이익이 곧 우리 봉직 의사의 이익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돈을 벌지 모르지만, 병원의 주요 기능인 진료 기능은 오히려 축소될 수 있습니다.


2. 병원의 돈벌이 기관화를 촉진시킬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합법화한 의료법 개정안

병원이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기 위해서는 사업 범위의 확대와 더불어 주식회사 형태의 경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병원으로 자본이 투자되는 방식을 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병원에서 난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여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더 큰 돈을 투자할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법 체계 내에서 의료기관은 비영리법인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영리법인은 사업 수익을 모두 자신의 법인에 재투자하도록 되어 있고 과실 송금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규제를 교묘히 빠져나갈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병원경영지원회사’라는 새로운 주식회사의 활성화 방안입니다.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의료행위와 관계없는 병원경영 전반(구매, 인력관리, 진료비 청구, 마케팅 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이러한 회사는 현재에도 ‘병원경영 컨설팅’업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에 병원이 자본을 투자하고 그 이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병원의 부대사업 범위에 병원경영지원회사 지원도 포함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합법화될 경우 이러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지주회사로 한 광범위한 병의원 네트워크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벌 병원이 출자한 병원경영지원회사를 정점으로 그 밑에 다양한 규모의 전국적 병의원들이 네트워크화 되어 돈벌이 병원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원이 병원경영지원회사에 투자가 가능해지게 되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온갖 돈벌이 수단을 개발하고 유포하는 진원지가 될 것입니다. 병원은 그러한 경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전수받아 돈벌이 행위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얻은 수익은 병원으로 재투자되어 의료서비스와 환자를 위해 쓰이지 않고 다시 병원경영지원회사로 재투자되어 자본 투자자들에게 배분되고, 그 과정 속에서 병원경영지원회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입니다.

병원경영지원회사의 투자자들은 병원의 경영진들과 병원 자본일 것이므로 이들 일부에게 환자의 쌈지돈과 병원 봉직 의사의 노동의 대가가 착취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병원경영지원회사에서 퍼뜨릴 적극적 영리 추구 행위가 진료 행위를 왜곡시킬 양상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부당, 허위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 먹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케팅 기법이라는 명목으로 의료인들에게 환자들을 ‘벗겨 먹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전수시킬 것입니다.

지금도 존재하는 병원경영 컨설팅 회사 중 일부는 자신 고용하고 있는 직원을 파견할 경우, 파견하는 병원에 몇 개월만에 두세 배 이상의 매출을 장담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로 쓰는 방법은 ‘끼워 팔기’와 ‘불려 팔기’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위해 방문한 환자에게 별 치료가 필요 없는 두세 가지 문제를 덮어씌워 더 치료받도록 하거나, 급여 범위내에서 해결 가능한 치료에 비급여 시술을 끼워 넣어 돈을 더 받는 행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부도덕한 상술이 의료 영역에 일반화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3. 이번 개정안은 민간보험회사만 살찌우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거의 정설입니다.

그간 보험회사는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것을 이용하여, 암 보험, 뇌심혈관계질환 보장 보험 등 다양한 형태의 질병보험을 출시하여 시장을 공략해 왔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한국 성인이 하나 이상의 민간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민간의료보험 시장도 포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최근 보험회사들이 앞다투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질병보험 광고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적극적 광고를 통해 새로운 구매 계층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고만으로는 새로운 구매 욕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광고와 더불어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상품의 출시입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현재 보험회사들이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상품이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입니다.

현재의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정액형’ 민간의료보험입니다. 어떤 질병에 걸리면 얼마 하는 식으로 보상의 액수가 질병별로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환자가 병원에 가서 본인이 부담한 돈을 그 액수만큼 보상해 주는 상품으로서 국민들에게 보다 매력적인 상품입니다.

그래서 보험회사는 이러한 신상품을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의 원활한 출시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제도로도 출시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나, 몇 가지 제도가 더 갖추어져야 보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신상품을 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그간 요구해왔던 것은 병원과 보험회사간에 가격 계약이 허용되어야 하고, 보험회사의 환자 알선 행위가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출시하였을 경우, 보험회사의 설계에 따라 지출 구조를 맞추어 주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강요하고 요청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병원이 선정되었을 경우 가입자에게 그 병원으로 가도록 유인하고 알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행 의료법에는 그 누구도 특정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알선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조항의 개정이 필요했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가격 계약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더불어 이와 같이 병원과 보험회사간의 가격 계약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보험회사가 그 병원으로 가입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행위를 합법화하였습니다.

이러한 개정안은 이러한 법 개정을 통해 보험회사-의료기관-병원경영지원회사 네크워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환자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환상의 삼각편대’가 구축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병원경영지원회사는 대형병원을 정점으로 전국의 병의원을 묶어 병의원 네트워크를 만들어 비급여와 부대사업을 중심으로 돈벌이를 합니다.

보험회사는 이 네트워크에 가격 계약을 통해 참여하고 자기 회사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 환자들을 이러한 병의원 네트워크로 유인, 알선하여 이속을 챙깁니다.

보험회사가 국민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해서 잠재적 환자 풀로 조성한 다음, 병의원 네트워크가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 환자 만들기와 환자 유치 행위를 통해 주머니를 털어 그 이득을 나누어 갖는 ‘환자 착취의 카르텔’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개정안의 조항은 병원자본과 민간보험회사 자본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병원과 민간보험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뭐 그리 나쁜가, 병원이 돈을 많이 벌면 내 월급도 많아지는 것이고, 민간보험회사가 커져서 건강보험 영향력이 줄어들면 짜증나는 건강보험공단 직원 등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것 아닌가 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동료 의사들이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만으로 건강보험 체계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진료 행위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정부의 규제에 눈살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정부 규제와 건강보험의 간섭이 기분 나쁘다고 하여서 시장의 원칙과 민간보험회사의 규제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요?

그리고 내 월급 몇 푼이 더 오르기는 하겠지만,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고, 왜곡된 의료 행위를 강요하는 병원 경영진 밑에서 우리의 진료 행위는 과연 만족스러울까요?

이 상황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의 전문주의와 시장 원칙이 중심이 된 의료체계는 양립 가능한가?

다시 말해 시장의 원리, 이윤의 원리가 최상의 원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교과서적인 진료’를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였을 때 그것이 낭비적인 것으로 지적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과연 지금보다 더 시장화된 시스템 내에서 우리의 전문성과 독자적 판단은 과연 병원 경영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 민간보험회사의 통제가 과연 건강보험공단의 통제보다 약하거나 우리의 전문성을 존중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건강보험공단의 통제가 없어지면 우리 맘대로 진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의료 시스템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른 나라에서 그러한 ‘무중력 상태’인 의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건강보험공단의 통제를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민간보험회사의 통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민간보험회사의 통제가 건강보험공단보다 합리적이고 유순할까요?

지금은 우리가 보험회사 직원의 요구를 거절해도 아쉬운 것은 저들이지만,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보험회사-의료기관 계약이 가능해져서 저들이 환자를 유인하고 알선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도 과연 그러할까요?

그리고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인 민간보험회사의 간섭과 통제가 과연 어정쩡한 건강보험공단의 그것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셋째,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환자들이 돈 때문에 우리에게 진료 받을 수 없는 조건이 확대된다면 과연 우리의 직업 만족도는 높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하면, 우리가 너무 낭만적인 것이 아닌가 되물어 보실 분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회과학적으로도 한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그 사회 구성원의 행복도 내지는 사회에 대한 만족도가 전체적으로 저하한다는 연구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실 너나 할 것 없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화를 내거나 가슴을 친 적이 다 한번 쯤은 있지 않습니까?


최근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에 대해 할 말이 조금 있어 동료 의사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한 글이 쓸 데 없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현재의 의료법 개정안의 독소 조항은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병원에서 봉직하고 있는 우리 의사에게도 나쁜 것입니다.

단지 병원 소유 자본과 민간보험 자본만을 살찌울 법안입니다.

우리의 이해는 병원 소유 자본의 이해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이해는 전체 국민들의 이해와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의 이해에 살짝 동의해 주는 것을 넘어,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와주려 나서고 있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병원협회와 달리 이러한 독소조항에 대한 반대의견을 피력해야 합니다.


2007년 6월
뜨거운 여름, 병원 진료실에서 한 봉직의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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