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독재와 얼토당토않은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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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독재와 얼토당토않은 '심판'
  • 송필경
  • 승인 2024.03.0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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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어떤 독재자는 천박하고, 유치하고, 작위적이고 경박했다. 정치적인 행동들은 하나마나였다. 그러자  뛰어난 문인이 그 독재자를 묘사한 풍자 글을 발표했다.

이 독재자가 분주히 움직입니다.
그에게 정의를 돌려줍시다.
그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고독과 어둠을 느끼고 겁을 냅니다.
밤이 두려운 이들은 노래를 하는데,
그는 분주히 움직입니다.
미쳐 날뛰고, 온갖 것을 건드리고,
이런저런 계획들을 쫓아 달리지만,
무엇 하나 없이 창조해내는 것 없이 포고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고 기를 씁니다.
쉬지 않고 움직이지만,
딱하게도 헛도는 바퀴일 뿐입니다.

이런 뛰어난 풍자 글을 쓴 사람이 지금 시대의 송필경이면 얼마나 좋으랴! 아, 신은 송필경에게 뛰어난 글을 쓰는 재주를 주지 않고, 뛰어난 글을 보는 눈만 주었다.

‘꼬마’ 나폴레옹(나폴레옹3세)은 1848년 2월혁명 덕분으로 삼촌 나폴레옹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꼬마는 1851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으로 복고하며 공화정의 꿈을 짓밟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보수 국회의원이었던 빅토르 위고가 위의 글을 쓰며 이 재앙에 분개했다.

“이 무슨 일입니까! 황제를 거치고 났는데 또 황제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위대한 나폴레옹을 거쳤으니 꼬마 나폴레옹도 겪어야 한다는 겁니까?”

프랑스는 인류사에서 위대한 발자취였던 1789년 대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저런 혼란이 거듭되자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통령’ 정부를 세웠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올라 대혁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1815년 폐위되고, 다시 프랑스는 혼돈에 빠졌다. 1830년 7월혁명과 1848년 2월혁명이란 프랑스대혁명에 버금가는 혁명과 그 외 크고 작은 혁명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1848년 집권 이후 꼬마는 의외로 정권을 오래 이끌었다. 경제발전도 일정부분 일으켰다. 1870년 프로이센 전쟁에서 패배한 후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다.

혼란이 계속되자 1871년 파리시민들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코뮌’을 결성했다. 하지만 2달 열흘의 실험으로 끝이 났다. 그 뒤 프랑스는 공화정을 유지했으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독한 인종차별과 편협한 국수주의를 상징하는 드레퓌스 사건을 겪었다.

쿠바농업은 좋은 거름으로 나무를 키워 몸에 이로운 잎을 얻는다.(사진제공= 송필경)
쿠바농업은 좋은 거름으로 나무를 키워 몸에 이로운 잎을 얻는다.(사진제공= 송필경)

‘자유‧평등‧우애’를 혁명정신으로 삼은 프랑스는 20세기에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혹독한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펼쳤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영웅이었던 드골은 2차 대전 뒤 아시아의 베트남과 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전쟁을 치른 야수였다.

그런 프랑스가 제대로 정신을 차린 계기는 1968년 권위와 억압을 해소한 ‘68혁명’ 때였다. 프랑스에서 성이 해방되고 똘레랑스(관용정신)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789년 대혁명에서 1968년 68혁명까지 180년이 지났다. 대혁명이라는 거대한 뿌리에는 오랫동안 수많은 밑거름이 있었다. 대혁명의 뿌리가 내리기 전 계몽사상이란 토양이 있었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등이 일군 토양이었다.

대혁명 이후에 일어난 혁명을 겪은 빅토르 위고는 『비천한 사람들(레미제라블)』이란 문학작품을 통해 실패한 대혁명을 옹호하고 혁명에 생기를 불어 넣는 거름을 준비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역사적 지성인인 에밀 졸라가 나타나 아무도 가로막지 못할 진실의 행군이란 거름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르트르같은 지성인은 조국 프랑스의 식민 제국주의 억압을 비판하고 반전평화를 부르짖는 거름 역할을 했다. 68혁명이란 거름을 받고서야 비로소 대혁명 때 심은 나무에 ‘자유‧평등‧우애’의 잎이 돋았다.

한국도 4.19 의거와 6.10 항쟁, 그리고 촛불항쟁으로 혁명의 나무를 키웠다. 그럼에도 천박한 독재의 잎이 계속 돋아나고 있다.

프랑스 예에서 보듯 혁명의 ‘자유·평등·박애’란 잎은 오랜 기간 얄팍한 지식인이 아닌 묵직한 지성인이란 거름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혁명의 나무가 자랄 토양에 지성의 힘이란 거름을 만들어왔는가?

촛불혁명 5년 만에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연상케 하는 독재의 잎이 돋아난 엄연한 현실은 좋은 거름을 만들지 못한 우리 지성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촛불정부에서 거름 역할을 하지 않은 책임자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독재를 심판하겠다는 행태를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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