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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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남한산성』
  • 이동준
  • 승인 2024.01.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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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책이야기- 첫 번째

여진의 족장 누르하치는 만주의 모든 부족을 아우르고 합쳐 국호를 후금이라 칭하고 스스로 황제의 누런 옷을 입고 칸(汗)의 자리에 올랐다. 칸은 충성과 배반을 번갈아가면서 늙어 비틀거리는 명의 숨통을 조였다.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는 아비가 죽자 형들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청(淸)이라 내걸었다. 젊은 칸의 나라는 말(馬)먼지 속에서 강성했다. 명의 숨통이 거의 끊어져 갈 무렵 칸은 조선의 임금에게 국서를 보내 명의 연호를 버리고 명에 대한 사대를 청으로 바꿀 것과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 군신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칸은 기어이 동쪽으로 왔다. 산성에 진을 쳤으나 칸은 대로를 따라왔다. 조선은 유신(儒臣)이 많았으나 칸의 군마를 막지는 못했다. 만승의 나라에도 한때의 약세는 늘 있었고, 군왕이 도성을 버림은 망극한 일이나 만고에 없는 일은 아니었다.

어가는 강화도로 향했다. 하지만 적 기병의 선발대가 강화로 가는 길을 막아 어가행렬은 강화행을 단념하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칸이 봤을 때 조선은 이해가 안되는 나라였다. 작고 궁핍한 나라가 왜 기를 쓰고 스스로 강자의 적이 돼 자신을 불러들이는지, 또한 그러고 나서는 왜 군신이 모두 산성에 숨어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있는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그냥 버티겠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자신이 직접 오니까 놀라서 숨은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칸이 일컫는 그 춥고 궁벽한 토굴 속에서 조선의 군병들은 엄동설한에 손가락이 잘려 나갔고 백성들은 부역에 시달렸으며 말들은 잡아 먹혔다.

군병의 추위를 덜어주기 위해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은 부녀자의 속곳이라도 벗겨 군병을 입혀야 한다고 했지만 영의정 김류는 종친의 의관은 거두지 말자고 했다. 왕실이 위엄을 잃으면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는 말이었다. 김류는 당시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을 대변한다. 그 시대에는 임금이 곧 나라였다. 조선의 산천초목과 백성 모두가 왕의 것이었다.

청장 용골대는 수십만의 병력으로 남한산성을 포위하면서 싸움을 걸기도 하고, 예의와 법도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문서를 보내기도 했다. 국가와 국가사이에 주고받는 '형식'이라곤 없는 문서였다.

최명길은 문서가 무도하나 신하들에게 용골대를 대하지 않음을 탓하면서 청이 서둘러 싸우려 하지 않는 점을 보아 화친을 원한다고 보았다. 김상헌은 심양에서 예까지 내려온 적이 빈손으로 갈 리가 없으니 화친은 곧 투항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한 사건을 두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렇게 갈린다. 확증편향은 이때도 유효했다.

임금은 성밖으로 격서를 내보내려 했다. 창의의 늦음을 꾸짖고 신민의 도리를 밝히는 문서였다. 동시에 이판을 불러 적진에 들어가 말(言)길을 열 것을 원했다. 내행전 마루에서의 언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말(言)들은 부딪치고 뒤엉키며 솟구쳐 오르다가 가라앉았다. 적이 남한산성을 말려 죽이려고 하니 조선은 약자의 비참함과 고루함을 겪어야 했다. 글자 하나에도 적이 어떻게 반응할지, 칸이 어떻게 생각할지 야심한 시각까지 언쟁을 하곤 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이시백은 문과에 급제한 유생이었지만 문한의 나른함을 떨치고 무인의 삶을 걸었다. 이시백은 수어사로 묘당의 논의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묵묵히 임무를 다하는 이시백같은 자가 조선이 그리 자랑하고 키워내고 싶어했던 성리학적 인간이 아닐까? 이런 자는 시대를 초월해 쓰임을 받을 사람이다. 현대에도 묵묵히 일하는 이시백같은 자들이 많으니 국가가 유지되는 것인가도 싶다.

싸우자고 준열한 언동을 일삼는 자들도 있다. 비국과 간관, 젊은 유생들이다. 주화파 최명길을 베어야 한다는 언설 뒤에 숨으려는 자들이다. 21세기에도 참 많이 보이는 유형들이다. 낄낄거리며 비웃는 자들, 냉소적인 자들, 그 와중에도 계책을 내려고 노력하던 자들, 도망치는 자들 등등, 같은 성안에서 똘똘 뭉쳐서 싸워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 했는데 안타깝다.

성안이 마르기 전에는 출성과 수성이 다르지 않았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근왕병들을 기다렸으며 적이 스스로 지쳐 물러나기를 기다리면서 명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성문이 안에서 밖으로 열리든,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열리든 그 희망이 없어지는 날에 성문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모두 인간의 의지에 따라 이뤄지는 것처럼 전쟁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의지란 영원하지도 않고 약하디 약한 것이다. 김상헌같은 인물이 아무리 많다 한들 전쟁을 그들만 가지고 할 수는 없었다.

묘당에서 말(言)들이 뒤엉킬 때 백성들과 군병들은 굶주리고 얼어 죽었다. 당상이건 당하건 갓 쓴 자들은 따뜻한 곳에서 언쟁을 했으나 상한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은 성첩을 지키다가, 혹은 전투에 참여하거나 돌을 나르다가, 일을 하다가 다치고 주리고 또 얼었다.

말(言)이라는 것은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설득하는 것이었지만 백성들은 말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지에 관심이 없고 그저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칸은 조선 관원들을 삼전도로 불러내 황서(黃書)를 전했다. 삶은 훔칠 수 없고 거저 누릴 수도 없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살기를 원하면 성문을 열고 나오라는 명에 조선의 임금은 살고자 했다.

답서를 누가 적을 것인가? 후세 만대로 이어질 이 치욕을 누가 견디고 답서를 적겠는가? 환궁한 연후에 산성 안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글을 쓴 자는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혹시 칸이 노해서 남한산성을 공격한다면? 글 쓴 자의 오명만이 남겠지.

최명길이 결국 답서를 적게 됐다. 답서는 묘당에서 모든 신료들이 함께 읽었다. 최명길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하자는 언설 후, 자신은 충신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자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찧었다. 김상헌과 같은 척화신들이 항서를 막으려고 했으나 임금은 밤중에 승지를 불러 국서를 찍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었다. 임금은 살아남기 위해 크나큰 치욕을 견디기로 했다. 강화도에서 농성하던 왕자와 비빈들도 모두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국 우리가 아는 삼전도의 굴욕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성안의 세상과 성밖의 세상은 결국 다르지 않았다. 살고자 해 성안으로 들어왔지만 살고자 해 결국 성밖으로 나가는 그 순간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역시 말로써 정의를 실현할 수 없고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약자가 강자에게 정의를 부르짖어 봤자 강자의 말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기준이자 또 정의였다.

강자가 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 최명길의 말처럼 치욕도 살아 있어야 갚을 것이 아닌가? 말은 역시 말로써 그칠 뿐이었다. 그 사이 고통받는 자들을 생각했다면 더 빨리 그쳤어야 했다. 현재의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동준(목포교도소 공중보건의.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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