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의료정보를 기업에 통째로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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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의료정보를 기업에 통째로 준다고?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3.11.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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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민감정보 보호 무력화하는 ‘디지털헬스케어법’ 국회 복지위 논의…시민사회 “국민 생명과 안전 보호 책임 외면” 분통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 오늘(21일) 국회 앞에서 '디지털헬스케어법'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 오늘(21일) 국회 앞에서 '디지털헬스케어법'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오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는 민간기업이 개인 건강정보를 통째로 건네받아 정보주체 동의도 없이 가명처리해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디지털헬스케어법’이 논의될 예정이라 파문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 헬스케어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관한 법률안」과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바로 그것이다.

현행 의료법 제19조는 의료기관‧의료진의 환자 정보 누설을 제21조는 제3자 기록열람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2조도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이 직무상 목적 외 용도로 제3자에게 정보제공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데, 디지털헬스케어법안은 이런 최소한의 인보호를 위한 규제를 무너뜨리는 것.

이에 보건의료‧환자시민단체들은 해당 법안을 ‘의료‧건강정보 민영화법’으로 규정하고 오늘(2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김은정 협동사무처장은 “디지털헬스케어법은 개인정보법, 의료법, 약사법 등에 규정된 제3자 제공범위를 무시하고 건강정보가 쉽게 전송되도록 하고, 각각 법률 규정을 시행령을 재규정하는 위법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국민의 민감정보가 무분별하게 활용되거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보다 규제가 완화되거나, 의료법, 약사법, 생명안전윤리법 등 그 외 환자 질병 정보를 강하게 보호하는 법령들까지 사문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일갈했다.

게다가 해당 법안에서는 ‘가명처리’ 한다고 하지만, 가명정보는 추가 정보가 있으면 얼마든지 재식별이 가능한 정보다. 실제로 IMS헬스 사태가 그 심각성을 보여줬다. 

한국IMS헬스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의 88%인 4,399만명의 가명 의료정보 47억 건을 사들여 재가공한 후 국내 제약사에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겼고, 2015년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IMS에 제공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암호화된 한국인 처방전 데이터 주민번호를 손쉽게 전부 해제해 논문으로 발표키도 했다.

또한 이들은 의료‧건강정보가 가명처리된다 할찌라도 정보주체 동의도 없이 기업이 매매하고 결합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업만을 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민영보험사들은 미흡한 데이터3법을 법적 근거로 공공기관인 심평원에 있는 국민 의료‧건강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디지털헬스케어법이 통과되면 이것도 합법이 된다”며 “보험연구원이 직접 밝힌대로 보험사들이 가명정보를 수집하려는 진짜 이유는 기저질환자들의 보험료 인상, 보장 거부, 보험가입 자체를 거절하기 위해서다”라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임신과 분만, 유산, 성폭력 피해, 정신질환, 유전병, 가족력 등 민감정보가 사고 팔린다면 어떻게 되겠냐?”라며 “누군가에게 기저질환이 있다는 걸 알면 기업은 채용에 불이익을 줄 있고, 성 재생산 건강정보는 결혼 알선 기업들이 수입하려 할 것이고, 보이스피싱 범죄집단에 흘러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병원에서 안심하고 의료인들에게 내밀한 비밀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이런 정보가 진료목적으로만 사용될거라도 굳게 믿기 때문인데, 그 믿음을 뒤흔드는 건 의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매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건강정보 유출을 우려해 치료를 기피하고 있다. 보건복지위 위원들은 이런 위험천만한 법안을 통과시켜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헬스케어법에는 민간기업이 의료기관의 진료기록 및 상담기록, 의료영상 등 진료정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진된 개인건강정보, 질병청과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 공공기관 정보를 통째로 전송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시민사회단체는 해당 법안이 정보주체의 권리를 배제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해당 법에서는 정보주체의 동의에 기반한다고 하지만, 기업과 개인 간의 정보와 권력격차가 큰 사회에서 개인의 동의는 매우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김은정 협동사무처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민감정보 보호방안 수립 의무도 요구하지 않고 보건의료 개인정보 처리 주체도 모호하고, 일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자보다 더 많은 활용 권한을 보건의료데이터 활용기관에 부여하고 규제 실효성도 담보하기 어려운 이러한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그는 “국회는 더 이상 특정 산업, 특정 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입법에 나서서는 안되고, 얄팍한 편의성과 개인 동의라는 꼼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기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의료기술에 대한 ‘선 출시-후 규제’를 골자로 하는 내용도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 허가 법령에 기준‧규격‧요건이 없거나 적용이 맞지 않으면 ‘임시허가’를 신청할 수 있고, 임시허가가 되면 최대 4년간 제품을 의료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또 기업이 현장 직접성능검증을 위해 규제 정부나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실증특례’를 신청할 수 있고 이 역시 최대 4년간 가능하다. 즉, 기업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4년 간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

이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이 ‘진료’란 이름으로 환자에게 쓰이고, 환자들은 실험대상이 되면서 그 비용도 부담하게 되는, 부도덕 그 자체”이라며 “국민의힘, 민주당 모두 국민의 의료‧건강정보 보호에 관심이 없고 기업을 위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규탄하며, 해당 법안 폐기를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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