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와 ‘반공’의 천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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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와 ‘반공’의 천박함
  • 송필경
  • 승인 2023.09.15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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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1952년 쿠바의 친미 독재자 바티스타는 선거를 없애고 쿠데타로 집권했다.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려던 카스트로는 투표용지 대신 총을 들고 혁명으로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카스트로는 남성 116명과 여성 2명을 선발해 훈련한 후 ‘몬카다’ 병영 공격을 계획했다. 당시 몬카다 병영은 쿠바에서 두 번째로 큰 군요새였다.

카스트로는 병영을 습격해 충분한 무기를 확보한 뒤 근처 마에스트라산맥으로 들어가 미국 마피아의 하수인인 바티스타 정부를 무력으로 무너뜨리는 대규모 민중봉기를 계획했다.

그러나 군사경험이 없었던 카스트로의 젊은 대원들은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총을 쏘지 못했다. 몬카다 병영 진입을 시도한 지 30여 분만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부대원 56명이 전투 중에 포로로 잡혀 즉결처형을 당했다.

카스트로는 살아남은 대원 19명과함께 산으로 도망갔다가 6일 만에 체포됐다. 카스트로의 일행을 체포한 병사들은 이마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격분해 있었다.

카스트로는 흉악하고 살인을 일삼던 병사들을 향해 기죽지 않고 모욕적인 소리를 퍼부었다. “우리는 해방군이다. 너희들은 독재자의 하수인이며 살인자들이다.” 그 말에 더욱 흥분한 병사들은 카스트로 일행을 바로 죽이려고 총을 겨눴다.

“쏘지 마!” 지휘자인 키 큰 흑인 대위가 질서를 잡으려고 애쓰면서 명령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쏘지 마, 쏘지 마. 사상(Idea)을 사살할 수는 없어. 그 누구도 사상을 죽일 수는 없어.” 카스트로는 이 흑인 대위의 낮은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카스트로의 많은 자료를 읽으면서 이 흑인 대위 ‘페드로 사리아(Pedro Sarría Tartabull, 1900∼1972)’의 “그 누구도 사상을 죽일 수 없다”는 말보다 더한 감동은 없었다.

카스트로가 체포된 뒤 재판을 받을 때 1953년 9월 26일자로 법정에 보낸 스스로 쓴 변론의 일부다.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올바른 사상은 큰 군대 이상의 힘을 지닌다.”

천박한 ‘반공’ 세력에게 물어뜯기는 가장 강렬한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한 홍범도 장군(왼쪽)과 사상의 자유를 사살할 수 없다는 쿠바 사리아 대위의 흉상.(사진제공= 송필경)
천박한 ‘반공’ 세력에게 물어뜯기는 가장 강렬한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한 홍범도 장군(왼쪽)과 사상의 자유를 사살할 수 없다는 쿠바 사리아 대위의 흉상.(사진제공= 송필경)

'사상의 자유'라 하면 볼테르와 루소가 떠오른다. 볼테르가 루소를 옹호하면서 포효한 '사상의 자유'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사리아 대위의 중얼거림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가늠할 수 있다.

볼테르와 루소는 봉건귀족 지배에서 중산계급 지배로 넘어가는 역사전환 과정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두 외침이었다. 부유한 보수주의자인 볼테르는 언제나 이성을 신뢰했다. 가난하게 자란 루소는 이성을 신뢰하지 않고 늘 행동을 원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문명과 학문에 반대하고 미개인이나 동물과같은 자연상태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루소는 낡은 제도를 파기하고 자유‧평등‧우애를 근본으로 하는 새로운 제도를 수립할, 본능적이고 격정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이 순환을 단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볼테르는 루소를 열정과 공상에 가득차 있고 고귀하지만 현실성이 빈약한 몽상가이며 오늘 우리 남한의 잣대로 보면 국가보안법을 무시하는 극좌과격주의자로 보았다. 그럼에도 스위스 당국이 루소의 여러 저서를 금서로 지정하고 불을 태우자, 볼테르는 그 유명한 사자후를 외치며 스위스 당국을 공격하면서 루소를 옹호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사상(Idea)에는 하나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상을 말하는 당신의 권리를 죽을 때까지 옹호할 것이다.”

- 이상 월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에서 발췌 인용(볼테르의 발언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보수주의자 볼테르와 진보주의자 루소, 이 두 지성의 격조는 결과적으로 프랑스혁명에 불을 지폈고 인류 근대화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사리아 대위의 ‘사상을 죽일 수 없다’와 볼테르의 ‘사상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죽을 때까지 옹호하겠다’는 말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너무나 고귀하고 격조 있는 진리다. 대사상가 볼테르와 일개 군인 사리아의 ‘사상의 자유’에 대한 진리를 시공을 초월한 공통원리로 파악하는 묘미가 역사공부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사상의 자유를 박멸하려는 '반공'을 이론이나 사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천박하다. 반공을 역사적으로 보면 히틀러나 무솔리니같은 파시스트와 미국의 메카시같은 정치적 정신병자들이 사용한, 곰팡이 냄새나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반공을 무지막지한 통치의 원리로 사용하면서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만병통치의 묘약으로 삼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졸렬하고 역겹다.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야당조차 구린내가 날 정도로 입을 다물고 있으니 우리의 정치수준이 그저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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