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땅 가까이 사는 대부분의 들꽃들이 할 일 다 마친 후 휴식에 들어가는 5~6월은 나무에서 피는 하얀 꽃들이 활개를 친다. 그리고 무성한 초록잎들로 빛이 적은 숲속의 푹신한 흙에서는 자생 난초들의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자생난초는 약 110여 종이 넘는다. 축하 선물로 주고받는 고급스런 도자기 화분 속 난초나 한 촉에 상상 못 할 가격이 매겨져 있는 화려한 난초만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난초가 있다는 것에 언뜻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 자생난의 3분의 2 이상이 제주에 살고 있다.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아름다운 모양과 신기한 이름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둥근모양의 알뿌리가 감자를 닮아 ‘감자난초’다. 한두 개씩 올라오는 잎은 꽃이 피고 나면 누렇게 변해 사라지고 늦여름에 새눈을 만들어 겨울을 난다. 꽃잎처럼 보이는 여섯 장 중 세 장은 꽃받침이고 세 장이 꽃잎이다.

세 장의 꽃잎 중 입술모양의 아래 꽃잎은 특별하다. 다들 황색에 가까운 노란색인데 홀로 하얀색 바탕에 붉은 점이 있다. 꽃가루받이에 유리하도록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난의 씨앗은 숫자로는 어마아마하게 많다. 크기가 아주 작은 씨앗 속에는 발아에 필요한 영양분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아율이 현저하게 낮다. 또 난초과식물의 꽃들은 모양이 남달라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탓에 대부분의 난들이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있다. 야생난은 어떤 종이든 국제거래가 금지돼 있다.

감자난초는 전국의 조금 높은 산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여느 난보다 키도 크고 노랗게 빛나니 쉽게 눈에 뜨이기도 한다. 풍성하게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분명 들꽃과는 다른 기품이 있다. ‘난’이라는 짧은 음절 속에는 이미 남다르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산에 들어 만나는 자생난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그것을 오랫동안 누리는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태어난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