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정권의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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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정권의 '죄악'
  • 송필경
  • 승인 2023.05.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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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무식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

리영희 선생은 1977년 11월 23일에 투옥 당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뒤의 책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이 반공법 위반 도서라는 이유였다.

이때 리영희 선생을 ‘황상구(黃相九)’란 검사가 취조했다. 황 검사는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며 자신이 수재라는 걸 리영희 선생에게 수십 차례 과시했다고 한다.

리영희 선생은 평소 가족들 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의 돈으로 많은 책을 샀다. 구속이 되자 소중한 피가 맺힌 책들이 압수당해 불온서적의 증거품이 되었다.

검사는 그 많은 책의 성격과 내용을 일일이 물었다. 『자본론』 취조 차례가 왔다.

황 검사는 리영희 선생에게 물었다. “무슨 책이오?” 설마 자칭 수재 검사가 『자본론』도 모르겠나 싶어 답변 않고 검사 얼굴을 쳐다만 보았다.

검사가 야단쳤다. “물으면 답변을 하시오!” 심술로 대꾸했다. “그거야 기독교 성경책이 어떤 책이냐고 묻는 것과 같지 않겠소?”

검사가 또 물었다. “마르크스는 누구요?” “그거야 뭐 성경을 누가 썼냐고 묻는 것과 같지 않겠소?” 자칭 수재 검사는 『자본론』과 ‘마르크스’를 정말 몰랐다. 이런 무식한 검사가 지성인을 심문했다는 사실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무지막지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

리영희 선생의 모친은 감옥에 수감 중이던 1977년 12월 27일 돌아가셨다. 리영희 선생은 임시 석방되지 못하고 옥중에서 사과 한 알과 사탕을 놓고 제사지냈다. 어머니 영전에 바치는 글을 써서 집으로 엽서를 보냈다. 글씨를 쓰다가 흘린 눈물이 번져 알 수 없는 글자가 많았다.

리영희 선생은 1983년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사건과 관련해서 두 번째 감옥에 갔다. 박처원이 남영동 대공분실처장이었다. 이 자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종철 열사가 탁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뻔뻔스런 거짓 발언을 하며 사건을 은폐 조작한 자다.

하루는 박처원이 리영희 선생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두 번째 나와 맞서게 됐구만. 첫 번째 사건의 재판 때 당신은 석방될 수 있거나 집행유예가 될 수도 있었고,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최소한 분향이라도 하게끔 잠시 나갈 수도 있었지.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못하게 한 것이 사실은 나야”

박처원은 자신의 반공 경력을 이렇게 자랑했다. “17살 때 ‘반소련운동’을 했고 남조선에 내려와서 종로경찰서에 들어가 ‘빨갱이’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경찰 대공과를 지망했고 밑바닥에서부터 30년 동안 일을 했다. 내손으로 수천 명을 잡아넣고 골로 가게 만들었지.”

또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만약 리영희를 잡아넣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대공사찰의 기둥인 나를 잡아넣으라. 여하간 법률적인 것과 관계없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유죄판결을 내려야 하고 징역을 살려야 한다. 앞으로 유사한 일들이 나오면 반공법 위반으로 때려잡도록 전례를 남겨야 한다.”

* 지금까지의 글은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리영희 대담 임헌영. 2005. 한길사)에 나오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비루한 권력에 맞서 분신한 노동자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정치가 공안권력을 앞세워 걸림돌이 되는 세력에게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비루해진다. 검찰의 입버릇은 늘 비루했다. “당신을 구속시켜 버리겠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공권력은 아주 많고, 당신의 사돈에 팔촌까지 죄는 만들면 된다!”

촛불정부는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검찰권력을 정화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정권을 내주었다. 박정희에게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긴 장면 정부 이상으로 어이없다. 촛불정부의 무능했던 대가는 지금 와서 혹독하다.

지난 1일 ‘노동절’에 노조 소속 건설노동자 한 명이 영장실질심사 직전에 분신하고 다음 날 숨졌다.

유서에서 그는 분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검찰정권은 노조활동을 공갈이라는 아주 파렴치한 죄목으로 옭아매 한 성실한 노동자의 자존심과 삶을 짓밟았다.

40여 년 전 리영희 선생을 무식하고 무지막지하게 다루었던 공안검찰과 그 버릇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검사들이 장악한 이 정권은, 참으로 비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자신의 저서 『철학의 헌정; 518을 다시 생각함』에서 ‘지배 권력의 폭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하는 양상은 크게 3가지’라고 분석했다.

1. 비폭력 저항이다. 3.1운동이 대표적이다.

2. 무장폭력 저항이다. 지도부가 확고한 이념을 가질 때 따르는 자들이 거대한 무리를 짓는다. 지도자가 정당한 의식을 가졌기에 따르는 무리들은 무기를 들고서도 도덕적 지향을 잃지 않는다. 이 저항이 우리 근대사에서 찬란한 빛이었던 갑오동학혁명이었다. 비루한 집권자들은 외세의 폭력을 끌어들여 동학혁명을 진압했다.

3. 특이한 양상의 저항이 하나 있다. 저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외쳐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칠 때다. 이럴 때는 폭력이 자신에게 향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전태일 열사 분신’이 대표적이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3년이 되었다. 성실한 노동자에게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한계에 부닥치게 만든 진보세력의 책임은 크다. 또한 정치가 퇴행적으로 망가진 현실에 진보세력의 실천적 반성이 꼭 필요하다.

비루한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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