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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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조증
  • 양정강
  • 승인 2023.04.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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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며칠 전 고교 동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모임에서 만나면 반갑게 수인사만 하는 사이로 수십 년 전에 충치치료를 한 일이 있었기에 순간 치과진료 때문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우울증’ 상담이었다. 50대 후반에 내가 2년여 심하게 겪었던 우울증이 동기들 사이에 얼마나 알려졌나 싶었다.

친구의 하소연은 근래 불면증과 식욕 부진으로 내과에서 수면제 처방으로 지내는 중 정신건강의학과(精神健康醫學科)에서 우울증 안내를 받으라 해서 도움을 구한단다. 하여 20여 년 전 경험했던 전문의 3명의 처방소개와 질곡(桎梏)을 벗어난 사연을 전하였다.

상담 마무리는 목소리가 제법 씩씩하기에 지극히 초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문의를 수소문하기로 했다. 바로 다음 날 요양병원 원장인 동기로부터 전문의 소개를 받아 진료예약을 했다면서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그런데 매주 로터리클럽에서 만나던 요양병원 원장 동기가 소개한 의사는 20년 전 내가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로 요양병원 원장 동기가 추천했던 바로 그 의사였다. ‘정신과의사’로 불리던 그이는 이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불리는데 올해 나이 80이다. 경험 많은 그이가 어떻게 안내하는지 자못 궁금하면서 지난날이 떠오른다.

평탄한 하루하루를 아니, 그런대로 잘 나가는 시절을 보내던 중 말 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사라지고 심한 식욕부진과 수면장애로 결국 맡고 있던 모임의 역할도 그만두고 환자진료도 전에 도움을 받던 후배에게 맡겼었다.

출근하면 환자와 눈인사만 나누게 되었고 그만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경험한 세 전문의는 약물투여 외 접근법이 뚜렷하게 달랐고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서, 정신과는 의학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구름잡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언제서야 벗어날까? 참으로 막연하기만 했었다. 

처음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약물 중심으로 진료를 받았다. 차도(差度)가 없던 중 꿈 분석과 그림 그리기 해석을 중심으로 상담을 하는 명예교수의 안내를 받았다. 얼마 후 약을 바꿔보자고 했지만 증세는 더 나빠지고 말았다.

세 번째로 찾은 젊은이는 상담을 위주로 했는데 약은 첫 주치의 처방을 권했다. 배우자 동반 상담 후 대학병원 입원을 권하자 아내가 놀라서 처음 찾은 의사에게로 돌아가면서 정기적인 약물처방으로 버텼다. 

한동안 심각한 상태의 환자로 치부(置簿) 않는 듯 2주마다 3분도 아닌 약처방 진료를 받았다. 활발하던 의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먼 무표정한 날들을 보내던 때 치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 복지부 요청인데 새로 발족(發足)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상근심사위원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참여 의사를 물었다. 뜻밖의 내용이라 그냥 끊었는데 옆에서 듣던 아내가 상근업무라니 치과를 접자고 해서 바로 수락을 했다.

자고(自古)로 ‘어머님 말씀과 부인 말을 들어 손해볼 일 없다’가 내겐 참말이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데 ‘인명은 재처(在妻)’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심평원 근무 시작 이후 2000년 7월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료예약 진찰비 영수증은 지금까지 사용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25년 개원의를 그만둔 나이 60, 환갑에 시작한 심평원 근무는 내외로부터 지적받는 업무임에도 신바람이 났다. 이후 ‘5년째 조증(躁症)입니다’, ‘10년째 조증입니다’라면서 여러 모임에 참여하다보니 어느새 23년째 나름 즐거운 80대 초로(初老)에 접어들었다. 힘들게 겪은 우울증으로 세상을 대하는 행태가 그 전과는 좀 다르게, 보다 긍정적으로, 낮은 자세로 변한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우울증(憂鬱症): 기분이 언짢아 명랑하지 아니한 심리 상태. 흔히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다.

조증정신병(躁症精神病): 기분이 들떠서 쉽게 흥분하는 상태가 1주일 이상 계속되는 병적 증세. 신경전달 물질의 증가, 호르몬 변화, 유전적 요인, 스트레스 따위가 원인이 될 수 있다. 

조울증(躁鬱症): 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 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 조현병과 함께 2대 정신병의 하나이다.

우울증과 자살은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한 연구는 자살자의 약 60% 이상이 우울증에 기인한다고 했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은 인구 10만 명당 24.1명(2020년 기준)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질환을 조기에 진단, 적절하게 치료하는 것이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의 보살핌이 절대적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자살을 많이 하며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매우 높아 청소년의 경우 약 200건의 자살시도가 1건의 사망으로 이어지는데 반해 노인의 경우 4건의 자살시도가 1건의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다.

우울증을 심하게 경험한 이후 우울증에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면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일터를 바꾸면서 ‘주변 환경 바꾸기’를 통해 우울증으로부터 극적인 탈출을 한 경험을 널리 알리고 싶다.

 

양정강(사람사랑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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