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겨울에 ‘동백’을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 코끝이 아리도록 차가운 날, 햇살 밝은 창가에 앉아 추운 계절에 붉은 빛으로 피어난 꽃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동백의 의연함은 그 사치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을 테니까.

이제 한두 송이씩 조심스레 벙그러지고 있는 붉은 꽃잎을 보고 있자니 ‘겨울을 푸르게 살아내는 굳건함에 잣나무 백(柏)을 이름에 넣었으나 거기에 더해 붉은 꽃을 피우니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옛시인 이규보의 투덜거림이 한껏 공감이 된다.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묵직함이 있다. 동백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이며 고정관념이다.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수목원이나 동백동산을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즈음에 흐드러지게 핀 것은 ‘애기동백’이다.

이름을 알고 나니 헤픈 듯 보이던 꽃잎들이 철없이 해맑은 아기들의 웃음처럼 다가온다. 하얀 애기동백을 처음 만났지만 그 기쁨과 감동까지 사진에는 담을 수가 없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 살고 있고 주로 섬과 해안가에서 자란다. 우리나라는 동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옹진군 대청도까지 올라가 있으나 내륙은 고창 선운사 숲이 제일 북쪽이다. 벌과 나비가 없는 계절이라 동박새가 중매자역할을 한다.

중매자 수가 적으니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을 늘려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것이다. 3,4월에 피는 동백은 춘백(春柏)이라 부르며 게으르다고 조금 얕보듯 말하기도 한다. 긴 개화기에 향기까지 만들 여력은 없나보다.

안타깝게도 아직 붉은 꽃잎이 단호하게 추락하는 그 뜨거운 광경을 보지 못했다. 새바람이 불면 나서야겠다. 꽃이 피기 시작하던 때 갔던 강진 백련사나 고창 선운사보다는 동그란 열매가 맺혀 있던 때에 찾았던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을 한 번 더 가 보아야겠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남해 섬으로 배를 탈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지는 꽃을 보러간다는데 이리도 설레다니 이것 또한 동백의 마력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