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포상(褒賞)·상벌(賞罰) 채우기
상태바
이력서에 포상(褒賞)·상벌(賞罰) 채우기
  • 양정강
  • 승인 2023.01.3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이력서 서식에는 포상이나 상벌 사항을 쓰는 칸이 있다. 10년 전 마지막으로 써낸 이력서에 는 ‘과거 포상기록’ 4칸을 ‘보령 메디앙스 공로상, 연세대학교 총장 표창장(2회), 로터리클럽 3650지구 회장 표창패, 로터리 봉사클럽 위원장 공로상’으로 채웠다. 

학력과 경력 등의 다른 내용들이야 술술 써내려 가다가도 상벌이나 포상 칸에 이르러선 무슨 상을 받았던가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어 꽤 곤혹스러웠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지낸 세월도 있건만 이렇다 할만한 상을 받은 일이 없는 탓이다. 

학회장을 지내면 누구나 차례로 받는, 어느 제약회사 후원의 소아치과학회 공로상, 교수를 그만두고 개원해 무척 바쁘다는 소문 때문인지 학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기념으로 장학금 기탁을 부탁받아 치과신협 대출로 거금(?)을 내고 받은 총장 표창장, 20년 봉사단체 참여로 받은 상으로 칸을 겨우 메꿨다.

상벌이란 ‘상과 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포상은 ‘1. 칭찬하고 장려하여 상을 줌 2. 각 분야에서 나라 발전에 뚜렷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칭찬하고 장려하여 상을 줌. 훈장, 포장, 표창 등 3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 여러 상들의 종류를 알아보면, 국가에서 수여하는 훈장이 12종류로 대통령과 우방의 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부터 과학기술훈장까지 다양하며 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하고는 각각 5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치과의사라면 교수직을 수행한 경우 ‘근정훈장’, 군 복무로는 ‘무공훈장’, 학술연구로는 ‘과학기술상’이 가능하다. 포장은 훈장의 다음 가는 훈격으로 12종류가 있다. 

한데 며칠 전 받아본 동년배 대학 동문의 자서전에 첫 번째로 올라온 상(賞)이 ‘○○대학교 치과대학 學長賞’이라 눈에 번쩍 들어왔다. ‘아, 나도 이 상을 받았는데 한 번도 써먹어 본 일이 없었다. 상 하나를 더 적어도 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이는 학력란에 16개, 경력란에 45개, 저서가 12개나 채워져 있는 등 참으로 부지런히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활동을 해온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둘을 더해 받은 상은 단출하다.

졸업식에서 받은 학장상을 이력서에 올릴 생각은 이제까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실은 틈틈이 자랑을 하긴 했다. 총장상을 받은 1등 친구의 이름을 대며 2등인 나와는 점수 차이가 크게 난다고 그를 칭찬하면서…

언젠가 동창 친구에게 같이 일하는 여선생들 자랑을 했다. ‘○원장은 1등, ○원장은 2등, ○원장은 3등 졸업생이고 난 2등을 했다’고 이야기한 순간 당장 면박을 받았다. ‘학교 공부하고 진료 실력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론 그 친구는 사회생활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잘했는데 학교성적은 모르는 것으로 한다.

포상하면 떠오르는 선배 어른 한 분은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빛낸 상을 비롯해 받은 상이 수십 아니 백을 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고희 기념집 ‘상벌’에는 ‘국민포장, 대한○○협회 공로대상, 국민훈장 목련장, 대한치과의사협회 공로대상, WHO`S WHO(영국발간)에 수록됨’이라고 몇 줄 적은 게 전부다. 큼직한 상이 있으니 나머지는 생략해도 될 듯싶다.

또 다른 은사 한 분의 ‘古禧를 맞은 나의 回顧錄’엔 賞勳으로 ‘홍조소정 훈장,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상, 대통령 표창(2)’으로 주로 포상이 채워져 있다. 

상(賞)하면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 더. 어떤 분은 심사위원을 찾아다니며 선물공세까지 하더니 결국 큰 상을 받았다고 한다.

상이란 무릇 내가 아닌 남들이 객관적인 판단으로 정하며 좋은 일을 계속하라는 격려가 맞는 말일 게다. 이런저런 포상 이력을 보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지만 참으로 열심히 다양한 업적이 있어도 별 포상이 없는 것은 제 머리를 깎지 않은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학장상을 떠올리다보니 하나 더 생각났다. 개근상이다. 살면서 중고등 6년 결석이 없다. 나이 들어 두 개의 ‘보건대학원 고위자 과정’도 개근했다. 개근 자랑을 틈틈이 할 때면 ‘그런데 학교성적이 그 정도냐?’는 답이 늘 돌아왔다.

중‧고등 때는 학업성적이 중간을 살짝 넘는 수준이니 공부 잘한다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에도 글 제목이 『수영장 개근하기』였으니 어쩌면 내 자랑 목록의 제1은 ‘개근상’이 어울릴 듯하다. 하여 이제부터 ‘학장상’ 앞에 ‘개근상’을 올릴 참이다.

자고(自古)로 행복한 삶은 상 많이 받기도 아니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는데 ‘내로남불’이요 ‘흉보면 닮는다’고, 나이 80 넘어 상 하나 더 받을 생각을 하다가 그만 이력서의 ‘상벌과 포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정강(사람사랑치과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