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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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부른다
  • 송필경
  • 승인 2023.01.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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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즐거움을 모르고 죽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1. 다 큰 자식을 잃은 슬픔

몽향 최석채(1917〜1991) 선생은 일제말 도쿄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대구에서 언론 생활을 했다.

몽향이 1955년 자유당 정권에서 매일신문 주필로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쓰자 신문사는 대낮에 테러를 당하고, 자신은 구속됐다. 1960년 3월 17일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한 사설 「호헌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명논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유신 초기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으나 우여곡절 끝에 조선일보 주필과 문화방송사·경향신문사 통합 회장을 역임했고 대구 매일신문 명예회장을 맡았다. 유신 때까지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은 지금하고는 좀 달랐다.)

1980년대 매일신문에서 『몽향 칼럼』을 즐겨 읽곤 했다. 전두환 시절에도 날카로움은 여전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칼럼이 무뎌졌다. 몽양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 언론인이 「다 큰 자식 잃은 슬픔보다 인생에 더한 비극은 없었다」는 글을 쓴 뒤 슬그머니 칼럼은 없어졌다. 몽양은 시름시름 앓다가 뜻밖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2.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소중한 내 혈육

단어를 이것저것 다 긁어모아 130만여 개를 실은 사전이 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단어 수는 30만여 개라 한다. 우리 조선말도 다 모으면 50만여 개에 달하고 사전에 나오는 단어 수는 18만여 개라 한다.

보통 3천여 개 정도 단어를 알면 어떤 대화든지 충분히 할 수 있고, 5천여 개 이상 사용하면 고급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만여 개 이상 단어를 사용하면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도서관에 있는 수천만 권 책에 있는 수십만 단어를 사용한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영혼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까? 3만여 단어를 쓴 언어의 마술사 세익스피어가 환생하더라도 두 돌 갓 지난 내 손녀의 귀여움을 글로 나타낼 수 있을까?

선가(禪家), 즉 수행하는 절에는 언어를 초월하라는 ‘불립문자(不立文字)’란 용어가 있다. 불립문자란 인생에서 겪는 진정한 의미는 언어로 나타낼 수 없고 마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태어나서 20여 세까지 7천 2백여 일을 기른다면 그동안 부모가 애쓴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많은 단어로 나타낼 수 있을까? 저 큰 우주가, 소중한 자식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보다 클까?

3. 10.29 이태원 참사

참으로 어이없는 참사로 인한 생명의 상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20여 년 동안 기른, 우주보다 큰 사랑스런 생명들의 숨이 끊기는 순간은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신형철의 신간 『인생의 역사』에 다음 글이 나온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가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은 히라노 게이로치의 다음 말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分人 individual)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그래서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우주보다 큰 생명을 잃은 사건이 159건이 있었다. 또한 159명 주변 인물의 수많은 연결을 파괴했다. 159명만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 아니다.

그런데, 이 어이없는 참사에 우리 정부와 사회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나는 이해하기 무척 힘들고 괴롭다.

못 다핀 청춘- 10.29 이태원 참사 넋기림展
못 다핀 청춘- 10.29 이태원 참사 넋기림展

우리나라 헌법체제는 대통령중심제다.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몸통이다. 우리 정치체제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막강한 권력의 몸통인 대통령은 사회적 사태에 책임질 의무도 무한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다시 말해 막강한 권력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결국 ‘4.16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몸통은 꼬리 끝부분만 살짝 자르고 그 의무를 다했다고 한다.

4. 개는 이웃의 고통을 모른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이런 말을 남겼다. "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개의 수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다. 개는 이웃 동네 개들의 아픔조차 모르는 짐승이다.

10.26 참사가 나자 4.16 세월호 참사와 한 치도 다름없이 피해 유가족들에게 막말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혐오로 피해자 가족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비루한 자들이 아주 많았다.

이 정권의 실세 정치인들까지도 막말 분위기를 북돋우고 있다. 이웃 개의 고통을 모르는 개 같은 인생들이다. 이 정권도 마찬가지다. ‘개 같은’은 결코 심한 말이 아니다. 누구든 생명을 잃거나 빼앗기는 사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덕을 갖추어야 이 천박한 시대를 끝장낼 수 있을까?

*** 
윗글은 아래 전시회에 출품한 글이다.

『너의 이름을 부른다』
‘못 다핀 청춘- 10.29 이태원 참사 넋기림展’

이태원 10.29 참사는 국가의 책무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또한 합동분향소 곁에서 ‘자식의 시체팔이’ 운운하는 저들을 보면서 삐뚠 이데올로기가 시대의 큰 비극임을 깨닫게 합니다.

작가의 글과 화가의 작품을 통해 159명 희생자의 넋을 기리면서 울분과 각성의 메시지를 담은 전시입니다.

- 전시 일정 : 2023년 01월 31일(화) ~ 2023년 02년 16일(목)
- 여는 마당 : 2023년 02월 04일(토) 13:30분
- 전시 장소 : 아르떼 숲(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12)

- 참여 작가 :
그림; 이익태, 칡뫼김구, 박재동, 박건, 이소리, 천광호, 김봉준, 김건예, 이록현, 김보연, 황은주, 김안식, 이윤숙, 최우, 박순철, 주라영, 정영창, 이동재, 성효숙, 공은주, 이욱, 박근수, 김영순, 유진숙, 전승일, 김수경, 최원일

글; 사윤수(시), 맹문재(시), 공광규(시), 전비담(시), 김봉준(문화담론), 최삼경(문화담론), 장건(시), 제갈양(시), 이반석(문화담론), 송필경(수필), 장미진 (문화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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