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며 희망을 외친 1968년의 ‘68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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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며 희망을 외친 1968년의 ‘68혁명’
  • 송필경
  • 승인 2022.10.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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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상상력에 권력을②

비틀즈와 밥 딜런 같은 대중가수들이 깃발 든 1963년의 ‘발칙한 반란’은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 곳곳과 미국의 거리에 불씨가 튀면 바로 폭발할 수 있는 반항의 기름을 뿌렸다.

1968년 1월 냉전시대를 이끈 두 축인 소련과 미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며 중세 종교개혁을 위해 격렬하게 투쟁했던 기억을 지닌 역사 감각이 있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 자신들의 자치권을 제한한 소련에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려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가슴에 숨긴 새 지도부가 태어났다. 새 지도부는 곧바로 소련체제에 저항하여 반란을 꾀하는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다.

가냘픈 농업국가 베트남에는 미군 50여 만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강 전력을 지닌 미국 전투병력의 절반이었다. 더불어 미 공군 전투폭격기 편대의 반 이상,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 해군 군함의 3분의 1이 베트남에 있었다.

그런데도 남루한 베트콩 전사 19명이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점령했다. 미군은 6시간 만에 베트콩 모두를 살해하고 대사관을 탈환했지만 미국의 권위가 구겨지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전 세계에 놀라운 충격을 주었다.

세상에 다른 길이 없나를 상상하던 발칙한 젊은이들은 ‘도전하지 못할 권위’란 없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젊은이들은 베트남 민중의 함성에 큰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왜 투쟁하는가? 외국의 침략자와 사이공의 압제자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1968년 당시 서구사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독일에서는 20세가 넘은 여성이라도 혼자사는 집에 남성이 방문해 밤 10시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방을 빼야 했고 그걸 눈 감는다면 집주인이 고소를 감수해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아내가 남편 동의없이 은행계좌를 갖기 어려웠다.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야 비로소 여성이 투표권을 얻었다. 생각보다 덜 문화적인 부조리가 가득했다.

68세대들의 핵심 정신은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해방’이었다. 그때까지 인류를 괴롭히고 옥죄던 억압은 헤아릴 수 없었다. 여성들은 더 짓눌렸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과연 제정신의 세계인가?”

68세대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때부터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했다. 이제 TV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한때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폭스바겐도 갖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1960년대 서구사회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풍요로운 시기였다. 소득은 크게 늘었고 사회는 안정기에 들어섰다. 대학 문이 넓어지고 대학생 수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반항하는 젊은이들은 물질을 갖기 위해 싸우던 삶을 허접하게 보고 물질풍요로 행복과 진보를 약속한 근대의 신화에 돌팔매질을 했다. 발칙한 구호를 내건 젊은이들은 물질중시 사고방식과 억압적 윤리에 반란을 꾀했다.

젊은이다운 은유(메타포)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은 발칙한 대중예술에서 영감을 얻었다.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예술은 세상을 둘로 나눠 바라보지 않는다.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성질이나 사건들이 서로 이어있다고 보는 힘이 예술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억압은 서로 연결돼 있다. 억압이란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몫(혜택)을 누리기 위해, 적게 자진 자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몫이란 정치권력이거나 자본을 뜻했다.

억압은 불평등을 낳는다. 불평등은 몫을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로 나뉘는 사회계급을 만든다. 상위계급이 하위계급을 억압하는 것이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사회계급의 문제다. 누군가가 특정 사회계층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몫을 가질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몫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당연하다 싶은, 의식하지 못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상상력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눈에 보이는 데로만 받아들여 메말라지기 마련이다. 물질만능의 자본주의나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현실사회주의나 인간이 만든 어떤 체제든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다.

체제의 사회적인 시선과 체제가 요구하는 강박 관념이 억압으로 알게 모르게 작용했다. 부조리를 생산하거나 유지하려는 자는 억압자이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서로 그렇게 죽이고도 반성하지 않고 더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미‧소는 경쟁적으로 생산했다.

체제를 떠나 지금 21세기까지도 인간이란 얼마나 부조리한 존재인가는 여전하다. 특히 세계 최강의 힘을 가진 나라 미국이 작고 가련한 나라 베트남에서 무기를 소비하기 위해 무차별적이고 약탈적인 살인을 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더러운 전쟁에 강제로 징병당하는 젊은이들은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기성세대들이 이런 현실을 못 본 체하면서 입으로만 세계평화를 떠들자, 젊은이들은 그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부조리하고 낡은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반란을 꾀했다.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고 외쳤다. '모든 형태의 억압에서 해방‘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은 나라마다 달랐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68혁명‘의 폭발은 혁명의 나라 프랑스 낭테르대학에서 불씨가 튀었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불씨는 파리 낭테르 대학생들이 남녀 성별로 나눈 학생 기숙사를 없애달라는 요구였다. 이 엉뚱한 불씨가 현대 사회의 흐름을 바꾼 큰 사건을 만들었다. 불씨는 유럽과 미국, 중남미,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세계를 한 바퀴 돌면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한편 독일이 ’68혁명‘의 중심이라는 시각도 있다. 독일은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나란히 68혁명의 4대 핵심국가에 속한다. 1968년 2월 베를린 국제베트남회의에서 전 세계 반전활동가들이 이른바 ‘68정신’의 싹을 심었다고 보는 견해가 그렇다.

독일은 1967년 8월 시위 대학생의 죽음으로 이미 저항의 폭발가스가 가득차 있었다. 1968년 4월 ‘부활절 봉기’의 바리게이트를 통해 폭발하면서 서구 여러 대도시와 프랑스 ‘5월혁명’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일은 ‘68세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68혁명’을 둘러싼 담론과 논쟁을 가장 오래 펼친 나라이다. 어른들은 자신밖에 모르는 철부지 대학생들이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발칙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하찮은 가치체제 수호에 목숨을 건다고 단정했다.

‘행복은 살 수 없다. 그것을 훔쳐라.’
‘지루함은 반혁명이다’
‘행복이야말로 새로운 이념이다’

그러면서 외쳤다.

‘나이 서른이 넘은 사람과는 이야기하지도 말라’
‘도망쳐라, 동지여!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를 금지하라!’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떠오른다’
‘우리는 그 무엇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점거한다’

젊은이들은 시위 구호를 외치기보다 TV 광고문구 같은 발랄한 상상력으로 세상에 돌을 던지며 외쳤다. 그들이 외친 돌은 엄숙한 이념이 아니었고 체계화한 주장도 아니었지만 색다른 빛이었다.

7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68세대’의 빛은 꺼지지 않고 있다. ‘68혁명’의 정신은 21세기의 생태, 환경, 노동, 문화, 여성 등 아직도 자연과 인간을 억압하는 어두운 영역에서 빛이 되어 사회운동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있다.

20세기 ‘68혁명’의 정신은 21세기의 우리에게 고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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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불행히도 ‘68혁명’에서 벗어나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박정희는 ‘68혁명’에 대해 물샐틈없이 언론을 봉쇄했다. 우리 의식을 우물 안에 가둔 폭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을 통해 ‘68정신’ 못지 않은 ‘전태일 정신’이 우리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지난 2018년 쿠바를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현실 사회주의자 카스트로와 이상 사회주의자 체 게바라가 ‘68혁명’에 큰 자극을 줬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마오이즘도 아주 큰 몫을 했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변방에 있었던 중국과 베트남, 쿠바가 20세기 서구가 지속했던 야만적인 삶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인류보편사로 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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