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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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돈
  • 양정강
  • 승인 2022.09.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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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돈` 하면 떠오르는 생각 중에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인터뷰가 인상 깊다. 후학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돈에 연연해서 의사가 됐다면 지금이라도 장사를 하라”고 답했다. 필자는 고맙게도 평생 장사를 한 기억이 없다.

1963년 8월 23살 때 `구겐하임치과병원`이 있는 뉴욕으로 갔다. 당시 월급 $238을 받는 자리였다. 먼 길 나서는 아들에게 급할 때 쓰라며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내어주셔서 이를 끼고 김포에서 `팬암` 비행기를 탄 일이 어제인 것만 같다. 도착 후엔 $1,000짜리 수표를 소위 환치기로 받기까지 했으니 모두 자식 걱정의 산물이다.

평생 `돈`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냈으니 복 받은 인생이다. 결코 부자는 아니지만 돈의 결핍을 느끼지 않은 것은 오로지 훌륭한 부모님 덕분이다. 두만강, 한탄강, 한강을 건너는 참으로 힘겨운 난리들을 지나는 중에서도 철없는 나이 때 겪은 일이라서인지 무심히 지냈다.

교수 생활 8년만에 도중 하차하고 개원의 25년을 하면서 환자가 너무 많고 나라살림이 한참 좋아지던 때라 제법 부자가 됐으리라. 하지만 부동산이나 증권 투자 등으로 '돈을 불려야지'라는 생각이 그때도, 지금도 전혀 없다.

지금 모교에서는 개학 100주년 기념 사업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백만 원 이상`에서 `10억이상` 단위까지 구분해서 안내하고 있다. 어쩌다 동기회 대표를 맡고 있어 총동창회 `단톡방`에서 다른 동기들의 기금 납부 상황을 비롯한 여러 소식들을 동기생 단톡방에 전달하면서 친구들이 기금을 낼 때마다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데 어느 날 필자에게 기금을 대신 내라면서 보내준 친구의 기금이 총동창회 단톡방에 소개가 되지 않아 회장에게 물었다. 대답인 즉 “100~200만 원의 소액기부가 급증해 건건이 올리지 못했는데 건건이 발생할 때마다가 아니라 1주일 단위, 혹은 1달 단위로 정리해서 보고를 하면 어떨까 합니다”고 사무국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소액기부`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소액` 두 글자가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회장에게는 `잘 알겠다. 소액기부라니 200만 원 낸 필자는 `100만 원 더할 걸`이라고 우스개 답장을 보내고는 `편하신대로 원하시는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답신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1주일 단위나 1달 단위의 기금 납부 소개는 없고 제법 큰 액수들은 전달 장면을 올리면서 소개하고 있다. 100주년 행사 기념식은 후원의 밤 행사로 하는데 호텔 수용인원이 500명으로 제한돼 초청대상은 기금 액수로 정한다고 한다.

혹여 돈이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이 된 `신 자유주의`시대의 산물인가? 소액기부자는 탈락이다. 비록 대부분 `소액기부`에 해당하는 금액이지만 80세가 넘은 동기생 친구들이 10명이나 납부했으니 매우 고마운 일이다.

유대인은 남자 나이 13살, 여자 나이 만 12살이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고 하는 성인식을 치르는데 유대인 율법에 따라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겠다고 선서를 한다. 이때 3가지 선물을 받는데 율법서와 시계, 그리고 축의금이다.

시계는 계약과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가 있고, 부모와 친척이 유산으로 물려주듯 수 백만 에서 수 천만 원까지의 돈을 건네준다고 한다. 이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고는 예금,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한다. 즉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버는 것과 돈을 불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전 세계 인구의 0.2%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역사적으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재닛 앨런`, `조지 소로스` 등 익숙한 이름의 유대인들이 있고 미국 100대 부호의 20%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이 성인식 때부터 익힌 돈 관리법을 진작 알았으면 지금처럼 나이 80넘어까지 출근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좀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좋은 일에 수천만, 수 억 원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돈이 많거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감옥에 가는 일을 제법 보면서 되레 위안으로 삼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주변에 부동산 등 투자를 하느라 빚을 지는 이들에게 `의사는 돈에 쪼들리지 말아야 한다`, `전문직이 나쁜 마음 먹어도 상대는 잘 모른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유대인들이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경제교육을 생각하여 이젠 그만 둬야겠다. `소액기금`이라는 홀대 아닌 홀대를 받는 처지는 피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오래 전에 낸 장학기금은 이자가 너무 적어 의미가 줄었지만 매년 적은 액수나마 장학금에 보태고 있으며 한때 스스로는 아니고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제법 큰 액수의 장학금도 내봤고 여러 경 우에 등록금이나 후원금을 전한 기억도 있으니 이를 위로로 삼을 참이다.

80세가 넘은 이제는 내키는 대로 살 생각이다. 부자도 아니고 연금도 없지만 90살까지 지금처럼 기본 생활비를 버는 평범한 일상이 꾸준하기를 바란다.

 

양정강(사람사랑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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