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파도 쉬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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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아파도 쉬지 못하는가?
  • 김정연
  • 승인 2022.09.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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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연 기획소위원장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넷) 김정연 기획소위원장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해 건세넷과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사)보건복지자원연구원, (사)시민건강연구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6개 단체들이 지난달 10일부터 31일까지 매주 진행된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의 제3강 ‘실태고발: 우리는 왜 아파도 쉬지 못하는가?’를 정리한 원고를 보내왔다.

제3강 실태고발은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김정봉 ▲파리바게트지회 임종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김금영 등 5인의 패널들이 참여, 집담회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본지에서는 이를 전재하기로 했다. 시민포럼 제3강은 건세넷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watch?v=SWBrfjoFj4M)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제3강 집담회는 지난달 24일 진행됐다.
‘건강노동사회 시민포럼’ 제3강 집담회는 지난달 24일 진행됐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5인의 패널들은 왜 아파도 쉴 수 없는지, 열악한 노동현장의 이야기를 공유해주면서 현재 시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병수당 제도의 문제 및 보완점에 대해 노동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제안했다.  

패널들은 배달, 주얼리 금속, 파리바게뜨, 방송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콜센터) 소속으로 그 업무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문제들은 유사했다.

첫째는 인력부족 문제로, 대다수의 영역에서 고질적으로 매우 심각했다. 아파서 쉬고 싶어도 대체인력이 없고, 내가 업무에서 빠지게 되면 생산공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또는 계획된 일정 및 할당량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생산성의 문제로 고용주는 노동자가 쉬거나 현장을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아파서 업무에 빠지게 될 시,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자신의 몸을 혹사 시킬지언정 쉴 수 없는 구조였다.

근무 중 심각하게 다쳤어도, 대체인력이 구해지지 않으면 출근을 해야 하고 병원을 갈 수 없었던 파리바게트 사연을 비롯해,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팀 프로모션이란 제도를 통해 1명이 콜을 못 받게 되면 해당 팀 실적이 낮아지고, 동료 간에 그 문제를 서로 비난하고 성토하게끔 하는 콜센터 내 악성 조직문화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둘째는 임금문제로, 현실적으로 쉰다는 것은 곧 금전적 불이익을 노동자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방송 스태프 PD의 경우 매주 1건씩 촬영을 해 1달에 4건을 방송해야 겨우 230만 원을 받는데 단 1주라도 쉬게 되면 최저급여 미만이 되고, 드라마 스태프 또한 일당을 받는 구조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배달 노동자의 경우도 신분상 특수고용형태여서 아파서 쉬면 소득이 0원인데 그와 별개로 오토바이 보험료 납부는 매일매일 공제가 되는 구조여서, 하루 쉬면 마이너스 금액이 일별로 앱에 찍히기에 생계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콜센터의 경우도 조퇴 시 임금문제가 발생하고 적정량의 전화를 받지 못할 시 실적압박으로 통제를 받는 상황이기에 근무환경 상 쉬는 것이 어려운 구조였다.

셋째, 일부 직종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있었다. 주얼리 노동자는 사업주가 보통 근로계약서 작성을 회피하고 임금을 봉투에 담아주기에 재직 확인이 어렵고, 4대보험 가입률도 80% 미만인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도 그동안 일을 한 부분이 증빙되지 않아 산재를 받기도 어려웠다. 또한 아파서 쉴 경우 인력 공백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근로계약서가 없다보니 근로기준법상 연차 휴가 등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방송계도 이와 비슷했는데 큰 드라마 현장이나 아침 방송을 제외하고는 보통 PD 1명, 작가 1명이 팀을 이뤄 근무하다보니 방송사 및 제작사와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으로 일하는 상황이 다반사였다. 이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아파서 쉴 경우 일자리를 잃거나 복귀가 불분명한 점도 아플 때 쉴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노동환경의 결과물로써 패널들 대부분이 자신의 직군과 연계된 질병을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었다(파리바게트-근골격계 질환, 콜센터-방광염·근골격계 질환·우울증, 주얼리-진폐증 등). 인력부족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을 혹사시켜 일을 하고, 부상당하고 질병에 걸려도 현실적으로 쉴 수 없는 상황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건강을 위협하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 상병수당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첫째,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제도시행이 필요하다. 현재 상병수당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와 고용보험가입자, 자영업자만 신청할 수 있어 고용보험이 없는 프리랜서를 비롯,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각지대 노동자들은 신청을 할 수 없다. 부상과 질병 가능성이 높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역설적으로 더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에 상병수당 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일례로 서울시 종로구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종로구에서 많이 근무하고 있는 주얼리 및 봉제 노동자들은 이 사업에 거의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주얼리를 기준으로 시범사업 기준을 살펴보면 시범사업이 종로구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로 한정돼 있고, 거주자가 아니라면 ‘협력사업장’이란 기준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많은 주얼리, 봉제노동자들이 종로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종로구에 거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는 점, 또 실제 많은 사업장이 ‘협력사업장’이 아니기에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주얼리 노동자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최대 귀금속 시장이 몰려있는 곳이자 귀금속 특화지구로 지정된 종로구인데, 막상 해당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가 결과적으로 상병수당에서 배제되는 구조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둘째, 상병수당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현재 상병수당 시범사업 모형은 3가지로, 모형 유형별로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 대기기간의 조건이 다른 상태이다. ▲3일 이상 입원  ▲7일 이상 또는 14일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으로 3가지 모형 모두 요구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

특히나 배달노동자의 경우 부상 등으로 하루, 이틀 정도 쉬는 경우 유급휴가가 절실히 필요한데 장기간의 기간을 요구하는 상병수당 모델은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너무 적은 상병수당 금액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인데 상병수당은 하루 43,968원이어서 실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써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견해가 많았다.

셋째, 상병수당 신청과 관련된 대상자의 접근성 개선 및 홍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상병수당을 신청하려면 웹에 들어가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온라인 홈페이지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는 신청하는 접근방식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더해 상병수당 사업을 설명하는데 쓰인 용어 자체가 어려워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예를 들어 대기기간 7일이라는 용어는 처음 언뜻 들었을 때는 상병수당이 7일 기다리고 나면 그 뒤에 들어온다고 이해하지, 7일간 아파야 신청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상당히 많은 서류작업들도 상병수당 신청의 장애물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소속 김금영 씨는 자신의 근무 중에 상병수당에 관한 문의 전화가 딱 1통뿐이었다면서 시범사업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수 있기에 많은 홍보가 필요해 보인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상병수당이 제도적으로 정착하고 많은 이들이 이용할 수 있으려면, 쉬고 나서 직장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복귀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관건이며, 복귀가능성이 보장돼야만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윤지영 변호사는 각 사례별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마지막으로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윤 변호사는 비정규직 및 작은 사업장 노동자가 아파도 쉬지 못하는 데에는 제도가 한 몫 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에 단순히 유급병가를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피력했다. 계약서 작성을 안 한, 또는 못 한 노동자까지 포함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사업주 등의 의무)에 유급병가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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