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조물주가 이 꽃을 만드실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처녀치마’를 만나고 스친 생각이다. 화려한 빛깔의 꽃술을 보라.

신비스런 보랏빛에다가 수술보다 길게 삐져나온 암술이 무척이나 유혹적이지 않는가? 늘어뜨린 이파리들은 궁궐여인의 금박 물린 치마도 부럽지 않고 정승부인의 열두폭 치맛자락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묵은 잎에서 꽃대를 올리는 숙근성 여러해살이다. 꽃대에 3~10개의 꽃송이들이 달리는 봉오리는 꽃대를 올리기 전부터 빼꼼하게 보인다.

나무 밑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계곡, 물가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올해 만난 군락지는 나무 밑도 아니고 물가도 아닌 북쪽 사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니 사는 곳을 가리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까탈스럽지 않은 처녀다.

한겨울에도 늘어진 치맛자락은 초록빛을 놓치지 않고 있다. 어느 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가운데서 만났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빛깔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양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치마폭 사이에 희망 가득한 새계절을 숨겨두었다. 지나간 혹독한 시간도 깊숙이 품었다. 차가운 바람이 잠시 머물며 기다림의 빛깔로 물들었다, 봄이 보랏빛으로 몰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