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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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노트
  • 나백주
  • 승인 2022.04.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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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건강세상네트워크 나백주 공동대표

‘버스커버스커’라는 가수가 부른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 흥얼거리듯 흥겨운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도 좋다. 지금 벚꽃이 흩날리는 이 거리를 연인과 함께 걷는 설레임이 좋다는 의미를 주로 담고 있어서 살아 있는 오늘을 즐기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취지를 한껏 살리고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 암시하듯 언젠가는 벚꽃도 모두 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오늘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영화 『엔딩노트』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엔딩노트』의 한 장면(출처= 네이버영화)

『엔딩노트』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다큐영화로 분류될 이 영화는 딸이 아빠의 죽음을 영화감독으로서 기록한 영화이다. 평생 직장생활을 성실히 하고 은퇴한 아빠는 은퇴한지 얼마 안 돼 말기위암을 진단 받는다.

이후 죽음을 예고받은 후 무기력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꼼꼼하게 그동안 못 했던 일들(예를 들어 안 믿던 종교 가져보기, 안 찍던 야당에게 투표하기, 소홀했던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하기 등)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는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제작을 맡았다.

그런데 이제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돼 이 영화를 다시 접하다 보니 느껴지는 점이 많다. 내 아버지는 지금부터 약 30년 전에 간암을 선고 받고 겨우 1년여 시간이 지나 복수와 황달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그런데 내 아버지는 이 영화 속 아버지와 달리 본인이 돌아가시기 겨우 3달여 전에 말기 간암 진단명을 알게 되셨다.

그러다 보니 이미 몸은 혼자 목욕하기도 어려울 만큼 안 좋아지셨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왜 간암이라는 진단명을 일찍 알려주지 않았는지 아쉬어하셨다. 자식인 나는 처음에는 어차피 병명을 아셔도 바뀌지 않을 상황이라는 판단에 일부러 모른 채 맘편히 사실 날을 더 많이 갖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방 나을 병인데 왜 계속 안 좋아지는지 의심하셔서 처음 진단이 내려졌던 집근처 내과에 스스로 가서 의사에게 아직도 간암인 것을 몰랐냐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으셨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처럼 말기암 진단명을 환자들에게 잘 알려주는 않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호스피스라는 개념이 알려지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변명하고 위안을 해봐도 이 『엔딩노트』 영화처럼 자신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엔딩노트 작성과 시행 시기를 갖도록 도와주지 못했던 불효는 아무리 해도 돌이킬 수가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불치병 판정을 받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 스스로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판단하고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죽어가는 시간도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버킷리스트라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을 정해보고 실행하면서 삶을 정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적으로 이런 불치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소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급성기 치료만이 아니라 질병예방과 재활까지도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공돼야 하며 더 나아가 이처럼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끝까지 돌봄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돌봄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도 삶의 마지막이 불행해질 뿐아니라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회한과 안타까움이 가슴에 켜켜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상당히 많은 병원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중단했다. 호스피스 서비스가 그 자체로 충분히 병원 수익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이나 특별한 미션을 가지고 있는 병원에서 주로 제공하고 있는데 그런 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 진료병원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부족한 호스피스 진료도 축소돼 호스피스 서비스를 더욱 아쉬어 하는 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는 그런 호소가 어쩐지 눈물겹다. 아마도 내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리라…

말기암환자들은 치료 때문에 병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실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상담과 안내를 해주는 것이 절실하다.

말기암 환자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벚꽃처럼 피고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존엄한 사회로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모두 필요한 호스피스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집밖을 나서면 오늘도 벚꽃이 쏟아지듯 날리는 것을 볼 것이다. 그 화려함과 추락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아찔한 느낌도 든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있음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도록 공적 사회서비스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사회 건강정책에 힘을 쏟아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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