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내일
상태바
더 나은 내일
  • 송필경
  • 승인 2022.02.14 1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국민이 국가를 만들고 함께 사는 이유는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치는 답해야 한다.

요즈음 정치에 참여한 내 화두다. 눈 깜짝할 새 어느덧, 정말 어느덧 나이 70을 코앞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의 현재 평균 수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조선시대의 평균 수명에 비하면 엄청 오래 살았다.

약 40여 년에 걸쳐 치과의사 생활을 해오면서 모은 재산은 살고 있는 아파트뿐이지만 태어나서부터 구차하게 산 적은 없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나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내 나이를 고려할 때, 나는 ‘더 나은 내일’의 삶에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딸은 40세를 갓 넘었고, 아들은 이제 곧 40세에 이른다. 딸과 아들은 웬만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내가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집값이 천정부지인 서울에서 팍팍하게 살고 있다.

딸과 아들에게는 손녀가 각 1명씩 있다. 6살과 2살 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지금의 내게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면서 나의 기쁨인 손녀들에게 경제적인 유산을 남기지 못한 게 이제야 후회스럽다.   

경제 양극화로 인해 돈이 계층·신분의 기준이 되고 있으니, 장래에는 인간의 존엄이 돈에 짓밟힐 게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과거 왕조시대에는 ‘피의 세습’이 소수의 양반과 다수의 상민으로 갈라쳤듯,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의 세습’은 소수의 고소득층과 다수의 저소득층 사이에 두터운 벽을 쌓고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증명했듯이 힘이 센 소수는 힘 없는 다수를 소외시키고 언제나 억압해왔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지난 10일 페친인 데모당 당수 이은탁 선생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당시 24세)의 4주기를 하루 앞둔 오늘(10일)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이행하라며 노동부와 민주당, 국회, 청와대, 검찰청, 대법원을 찾아가 항의한 김수억 전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에게는 지난 9일 실형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비정규직을 죽인 자에게는 무죄를, 비정규직을 살리려고 싸운 비정규직에게는 실형을 선고하는 세상이다.

컨베이어벨트에서 혼자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착취와 죽음의 컨베이어벨트를 끊는 수밖에…

촛불항쟁 덕분에 들어선 이 정부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정치 모토로 삼았으나 말뿐이었다.

위의 3가지 모토는 모든 정치 행위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을 구체적인 이상(理想)이었겠지만 임기 5년의 정부가 실현하기에는 너무 힘이 드는, 지나친 욕심이었다. 

도리어 이 정부는 ‘재벌에게 특혜를 주고, 노동자에게는 부당한 대우’를 했다. 게다가 젊은이들에게 내일의 꿈을 배앗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시행착오적인 실책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인 죄임이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촛불항쟁을 여기서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 이명박근혜로 후퇴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당장에 우리 사회가 근원적인 혁명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혁명으로 이어가게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신영복 선생의 말이다.

혁명은 간고성(艱苦性), 굴곡성(屈曲性) 그리고 장기성(長期性)을 그 본질로 한다. 한 점 불꽃을 소중하게 키워가는 역사적 전망을 간직하기도 하고 인간의 올바른 사상에 대한 철학적 천착을 바탕에 깔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베트남혁명을 공부했으며 지금은 쿠바혁명을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의 민족통일해방과 쿠바의 사회주의혁명은 단시간에 성취한 것이 아니었다. 

이 두 나라를 공부하면서 혁명의 속성을 간고성·굴곡성·장기성으로 파악한 신영복 선생의 통찰력이 참으로 예리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대선을 통해 거대 양당을 당장 거부하고 진보노동정당에 힘을 싣자는 진정한 진보인사들의 주장과 노력을 나는 진심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남북화해를 거부하고 멸공으로 남북갈등을 조장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권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게 지금 대선에서는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선 이슈에서 어지간히 알만한 사람들에게도 정책이 실종된 채 ‘욕설’과 ‘대장동’만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데 대해 나는 많이 당혹스럽다.

정치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내일의 삶이 오늘보다 더 나아지게 하는 수단으로써 말이다. 방편으로써의 정치에 후보의 사생활만 현미경으로 검증하고, 추측성 비리를 확신시키는 게 정치의 목적이 된 우리의 정치 풍토가 참으로 아쉽다.   

나는 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 시대를 살았다. 나처럼 이들과 같은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지 않도록 내일의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내일의 손녀들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옳은 길은 단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리라. 내가 가는 길만이 바른 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누구의 길이 옳고 바른 길인지 지금은 누구에게도 분명하지 않다고 본다.

나와 달리 지금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앞당기려는 참 진보인사들의, 피눈물을 흘리는 노력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빈 말이 아니다. 이번 선거 끝나고 나머지 내 인생에서 여력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을 따라 가리라. 내 손녀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