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이름 그대로 범의 꼬리를 닮아 ‘범꼬리’이다. 언뜻 보면 수수하고 밋밋한 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들여다보면 꽃 한 개의 모양은 꼬리가 아니라 토라진 범의 입 같기도 하다.

꽃잎 밖으로 삐죽하게 내민 수술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가늘게 보이는 줄기는 1미터까지 자라고 잎이 줄기를 튼튼하게 감싸고 있다. 꽤 높은 산속 너른 풀밭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시 화단에서 만나는 큼직큼직하고 화려한 꽃은 원예종 ‘꽃범의꼬리’이다.

6월에서 7월,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여린 분홍빛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깊은 산에 핀다. 이 시기에는 봄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여름 들꽃들이 피어나기 전, 들꽃들이 귀한 꽃방학인 때라 벌과 나비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아래를 향해 피어난 꽃 덕분에 벌과 나비들은 거꾸로 매달려 꿀을 빨고 있다. 강아지풀 같기도 하고 곡식 이삭을 닮은 듯도 하다. 무리지어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은, 매력 넘치는 모습이다.

한라산 꼭대기에 사는 ‘가는범꼬리’, 함경도 깊은 곳에 사는 ‘둥근범꼬리’와 ‘호범꼬리’ 백두산에 사는 북한의 천연기념물인 ‘씨범꼬리’… 범꼬리 종류들이 많은데 보고 싶은 순서를 매기다 보니 절반이 북녘에 살고 있다.

마음 놓고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곳의 여름은 한결 시원할 것이다. 서늘한 여름을 상상하며 보내는 겨울도 나름 매력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