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수가협상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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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수가협상의 불편한 진실
  • 최유성
  • 승인 2021.11.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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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경기도치과의사회 최유성 회장
치협 수가협상단이 지난 6월 1일 8차 협상이 결렬된 후 퇴장하고 있다.
치협 수가협상단이 지난 6월 1일 8차 협상이 결렬된 후 퇴장하고 있다.

오래전 선배님들은 일부러 보험청구를 회피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근관치료나 발치와 같은 수가가 그 가치에 비해 너무 낮게 평가된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보철과 같은 비급여 진료비로 치과의 경영이 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렇게 진행됐을 것이고, 출혈저가경쟁은 치과의사의 과잉과 같은 시장경제원리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으리라고 본다. 

아무튼 매년 5월 31일과 6월 1일의 새벽까지 밤샘 협상과정에 대해 우리 치과의사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소위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건보수가의 현실화가 의료계의 선거 때마다 외쳐지고는 있는데, 이제 그것이 허무한 메아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기득권층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의료공급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조롱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심정이다. 진정 그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억울하고, 진료행위의 가치가 부정당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먼저 매년 연례행사인 수가협상과정을 그 표면적인 과정과 이면의 복잡한 역학관계, 그리고 생존권 문제이기에 반드시 함께 공감해야만 하는 문제들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의 가장 본질적인 대전제인, 의료공급자인 우리 자신도 의료소비자이면서, 국민의 일부라는 의식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과정이 정말 필요한 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건강보험 수가는 초기에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해 결정됐고, 2000년 7월 상대가치점수제 도입과 함께 시작된 수가계약 과정이 공단과 의료단체와의 ‘계약’이라는 형식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처럼 치협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정하도록 했다. 

2001년부터의 이러한 과정이 ‘고시제’를 벗어나 ‘협상’이라는 형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앞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거의 일방적인 ‘통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초기에는 공단과 의협 병협, 치협, 한의협, 약협 등의 ‘공급자협의회’가 단일환산지수로 함께 동일한 계약을 했으나, 2008년부터는 각 단체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각기 다른 유형별 계약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각 단체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결국 공단이라는 국가기관과의 협상에서 각 단체의 힘이 분산되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변질됐다는 평가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수가협상의 본질인 환산지수 연구와 수가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주된 근거자료가 SGR이라는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이라는 모형 결과이다. 이에 SGR의 역사적 생성 배경부터의 문제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대안이 부재한 상황, 그리고 매년 연구수주의 과정, 연구시기, 정보공유의 내용 및 공유시기 등의 문제점들을 열거해보려고 한다.

소위 SGR이라는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 모형은 1980년대와 90년대 매년 두 자리수 이상의 의료비지출 상승률을 경험한 미국에서 1997년에 도입한 개념으로, 실제 지출액이 지속 가능한 목표 지출액 범위 이내일 경우에는 미리 정해진 공식에 따라 수가가 결정되고, 실제 지출액이 목표지출액을 초과하면 수가를 줄이게 되는 구조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의회에서 17회에 걸쳐 초과된 지출액의 축소를 방어하기 위한 무효화법을 통과시켰으며, 결국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의 발의로 영구 폐기된 정책이라는 것이 SGR 모형의 현주소이다. 

또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2%(2017년 기준)의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기에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우리나라는 GDP 대비 7.6%(2017년 기준)이고, 정부가 인정하는 행위별수가 자체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는 적용불가한 모형인 것이다. 더구나 최근 보장성강화 정책으로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출 억제 기반의 모형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즉 급여행위 원가율이 낮은 기형적 구조에서 목표진료비와 실제 진료비의 차이를 가지고 가감한다는 개념도 모순이고, 결국 수가 협상의 기준점에 대한 새로운 모형의 개발이 요구된다. 

다만, 위에 언급된 내용 이외에도 SGR 모형이 부적절한 이유들은 많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매년 건보공단에서는 수가협상을 위한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수행자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며, 2017년 당시 5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리고 최근 내년 계약을 위한 연구용역으로 2억2천만원이 투입될 예정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이러한 연구가 매년 연말에 발주하고 연초에 연구를 시작해서 수가협상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관련 데이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수가협상 테이블에서 의약단체들은 구경조차 못하고, 그해 11월경에나 외부에 공개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물론 협상과정에서는 공단에 유리한 자료들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실제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2014년에 의협과 병협에서는 이러한 연구용역이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해왔지만, 2021년 현재 시점에서도 2023년 수가협상에서 진료비 누적기간을 최신 데이터의 반영, 종합적인 중장기 개선방안 마련, 사회적 합의 도출과 같은 원칙적인 내용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기존 수가협상의 과정이 절차적으로나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계약에 활용할 근거자료의 신뢰성이나 정보공유의 과정도 불합리한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돼 온 것은 분명하다. 매년 보도자료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새로운 환산지수 모형 개발 및 수가제도 개선안을 제시하고, 유형별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 수가보상 기전을 모색한다고 했으나, 올해도 연구자 선정 및 계약 체결 이후에 11월 착수와 5월경 연구결과를 도출한다는 일정을 반복한다는 소식이다. 

수가협상의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밴드라고 불리는 추가소요예산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에 대한 설정 권한이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에 있는데, 매년 수가 협상 직전에야 밴딩폭이라고 하는 예산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모전과 함께 불평등한 협상이 되는 것이다.

즉 SGR 모형이 구체적인 합의점을 만들어 낼 기준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밴딩이라는 추가소요예산도 비밀에 싸여 있는 총체적 난국이 20여년의 세월동안 잘못된 관행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추가적으로 수가계약 시점을 5월로 앞당긴 이유는 다음해의 예산 편성을 위함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인 밴딩폭을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다보니, 인건비와 경제상황 등의 모형에 적용되는 요인들의 불확실성만을 더하게 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와 같은 특수한 상황, 거시적인 경제 상황, 보장성 강화 등 다양한 이유로 수가협상이 아닌 그야말로 통보와 같은 연례행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수가협상에 나섰던 각 의약단체의 대표의 의견이나 관련 기사들의 내용으로 보인다. 

물론 재정적 여건을 고려해야 하고, 가입자와 거시적 경제상황도 중요하며, 다수 국민의 요구라는 정치적 계산도 민주주의의 숙명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원가미만의 수가와 비급여라는 탈출구마저 옥죄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에 대해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치과의 경우는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에 적극 협조했음을 주장하고 있으나, 어찌됐든 추가수요예산에 영향을 받는 인상율을 의약단체들이 나눠먹는 상황에서 치과계의 주장이 존재할 자리는 없는 듯하다. 즉, 여러 가지 이해득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리한 보장성강화에 편승하는 것에 대한 심도 있는 치과계 내부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상과 같이 해법이 요원한 상황에서 건보수가의 현실화라는 애매한 주장보다는 근본적 문제점들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사료된다. 이에 앞으로도 매년 수가협상의 당사자인 치협의 입장을 고려해, 경기지부에서 수가협상 과정의 문제점과 치과만의 특수성에 관해 법적인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20여년 이상의 관행, 다수 국민의 뜻을 배경으로 하는 정부, 공단과 공급자 단체 간의 협상력 차이 등을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건강보험 제도의 본질적 목표는 국민의 건강이라는 대명제가 위태롭다는 사실, 그 판단의 정점에 있는 의료전문가집단의 사회적 책임감을 대의명분으로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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