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통제만으로 감염병 관리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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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 통제만으로 감염병 관리 불가능”
  • 이인문 기자
  • 승인 2021.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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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건치, 최규진 교수 초청 온라인 강좌 개최… 감염병 대응 방식에 대한 역사적 고찰 진행
서경건치가 지난 26일 온라인 오픈 강좌를 개최했다.
서경건치가 지난 26일 온라인 오픈 강좌를 개최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감염병과 함께 해온 역사였다. 오랜 세월의 수렵채취의 이동생활을 멈추고 이어진 농경과 목축의 시작을 통해 인구가 증가하고 또한 가축들을 키우면서 인류는 인수공통의 감염병와 함께 해왔다. 홍역은 소의 우역에서, 천연두(두창)는 소의 우두에서, 인플루엔자는 돼지에서 건너왔다.

이러한 감염병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의료인으로서 너무 의학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서 혹시라도 보지 못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서울·경기지부(회장 구준회 이하 서경건치)가 지난 26일 온라인으로 오픈 강좌를 개최해 감염병의 발생과 대응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접근을 성찰하고 인권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좀 더 나은 길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서경건치 전양호 사무국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강좌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 및 의료인문학과 최규진 교수의 강연 및 질의응답의 순으로 진행됐다.

최규진 교수는 이날 ‘감염병의 역사가 가르쳐 준, 지금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걸쳐 진행된 천연두 대응과 관련된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속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을 되짚었다.

최규진 교수의 온라인 강연 장면.
최규진 교수의 온라인 강연 장면.

이날 강연에서 그는 “천연두는 인류를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심하게 괴롭혀온 감염병이기도 했지만 인류가 의학적 힘으로 최초로 박멸시킨 감염병이기도 하다”며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 후 1000년대에 천연두 예방법인 ‘인두법’을 개발했고 이후 유럽에서 개발된 ‘우두법’도 1805년 중국 광동에 전래됐다”고 밝혔다.

이어 최 교수는 “조선에서는 인두법과 우두법을 정약용이 각기 1798년과 1828년 처음으로 소개했으나 널리 알리지는 못 했고 1880년대에 들어서야 지석영 등을 중심으로 조선정부의 우두정책이 이어져 1899년 두창예방규칙이 제정되는 등 조선의 (서양)의학을 통한 자주적 근대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지석영 등의 우두법 도입을 시작으로 제중원과 의학교로 이어지는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 추진은 이미 1848년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우두법을 도입하고 이어진 난학의사들의 탄생과 메이지유신의 성공 등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침략으로 을사늑약 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좌절되고 말았다”면서 “결국 통감부 시절 조선의 우두기반은 파괴되고 일제 경찰에 의한 업적위주의 강압적 우두정책이 시행되면서 당시 조선 민중들에게 큰 저항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교수는 “군사적 성격의 일제 헌병경찰제 하에서 시행되는 위생행정에 대한 조선민중의 반발은 1919년 3.1운동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당시 조선민중의 44%가 감염되고 총 14만여 명이 사망에 이르는 등 일제 강점기 공중보건은 제국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당시 인구 10만 명 당 법정전염병 환자수 통계(아래표 참조)가 보여주듯 본토와 달리 식민지에서는 일제의 위생행정이 매우 열악했으며 그마저도 조선민중들에 대한 통계는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라면서 “감염병 관리는 강압적 통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아무리 유능한 의료인들이 많아도 안 되고(당시 일본의 위생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 보건당국의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설득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시민들의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협조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인구 10만 명 당 법정전염병 환자수(자료 제공= 최규진)
인구 10만 명 당 법정전염병 환자수(자료 제공= 최규진)

또한 최 교수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과거의 감염병 유행을 현재의 코로나19 유행과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예전 이명박근혜정부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고 여전히 부족한 점은 있으나 감염병 대응 컨트롤 타워와 높은 의학수준과 시스템, 민주적 시민의식 등 방역에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3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해야만 한다. 이것이 백신 입수가 다소 늦었음에도 한국이 코로나19를 방어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세계 언론과 네티즌들이 한국의 방역시스템에 호평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구 천명 당 공공의료기관 병상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으로 지난해 발생했던 故 정유엽 학생의 경우처럼 ‘의료공백’ 상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책마련 시급하다. 자본과 권력은 이 시국에도 원격의료추진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며 “확진자들의 동선공개와 출퇴근을 한 직원들과 달리 시설장애인들만 예방적·선제적 코호트격리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치를 취했던 것 등 코로나19 상황에서 소홀히했던 인권문제들도 되돌아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OECD 인구 천명 당 공공의료기관 병상수(2017년 기준. 자료제공= 최규진)
OECD 인구 천명 당 공공의료기관 병상수(2017년 기준. 자료제공= 최규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백신접종 거부권을 둘러싼 논의 등이 진행됐다. 의료인들에게는 백신 접종을 강제할 수 있는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이 상충될 때 무엇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백신접종에 대한 인센티브를 시행해도 되는 것인지 등을 두고 자유로운 논의들이 펼쳐졌다.

한편 서경건치 구준회 회장은 이날 강좌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의료인으로서 백신 접종 등 감염병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우리가 혹시라도 놓치고 있는 문제가 없는지 과거의 감염병 대응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코로나19로 인해 대면강좌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회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갈 생각”이라며 “추석 이후 치과민간보험에 대한 강좌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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