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올여름, 길진 않았으나 폭염이 진했다. 숲 가장자리에서 볕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닻꽃’을 보러 올해는 조금 서둘렀다. 해마다 한창때를 지나 빛을 잃고 지쳐 있는 닻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해살이나 두해살이풀들은 뿌리가 살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들과 달리 그해의 기후에 다음해의 생이 달려 있다. 넉넉한 봄비 때문인지 풍성하게 올라오는 아주 싱싱한 닻꽃을 만났다.
화려한 빛깔도 아니고 눈에 뜨이는 크기의 꽃도 아니다. 꽃받침이 네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갈라진 조각이 뾰족하다. 그 모양이 배를 정박할 때 사용하는 ‘닻’을 꼭 닮았다. 8월, 뜨거울 때 산에 올라 꽃을 보며 바다를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꽃이다.
전국에서 이 꽃을 보려고 먼 길을 달린다. 남쪽 땅에서 이 꽃을 볼 수 있는 곳은 가평 화악산과 인제 대암산이다. 멸종위기 2급 식물목록에 올라있다. 지난 2019년 이름이 ‘참닻꽃’으로 바뀌었는데 유전자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에만 사는 새로운 종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햇살은 뜨거워도 산위에서 만나는 바람은 여름의 끝을 알려주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북쪽의 들녘은 벌써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그 뜨거웠던 햇살이 필요했던 곳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더위를 견뎌온 시간이 억울하거나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씨앗 맺기에 목숨을 다하는 한두해살이풀들의 수고로움만 하겠는가.
그나저나 이렇게 기후가 점점 뜨겁게 변해가면 닻꽃처럼 북쪽이 고향인 꽃들은 점점 만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