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땅을 보고 있어 땅나리’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맏는다. 나리 중 일찍 피는 털중나리나 참나리에 비해 어쩐 일인지 얼굴의 주근깨도 덜 보이고 빛깔도 침착하다. 이 붉은 꽃빛은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색깔이다.

자그마한 얼굴은 여섯 살 소녀의 뺨을 보는 듯 통통하고 투명하나 머리를 한껏 말아 올린 야무진 솜씨는 스무 살 처녀의 당당함이다.

여름하고도 젤 한복판에 꽃을 피운다. 더위에 강한 만큼 추위에는 약해 중부이북에서는 살 수가 없다.

한줄기 꽃대에 여러 송이가 모여 피기도 하지만 딱 한 송이만 매달고 있는 외로운 꽃대도 눈에 띤다. 다른 나리꽃들에 비해 꽃이 작고 깜찍해서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표정은 더없이 해맑고 날씬한 몸매가 황홀하기까지 하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고자해서일까, 아니면 부끄러워서일까?

푸르른 하늘이 궁금하기도 하련만 끝까지 바닥을 응시하며 뜨거운 자신의 생을 침묵으로 지킨다. 그 고지식함을 생각하니 서늘한 한줄기 바람이 한껏 달아오른 햇볕을 잠깐 식혔던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