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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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후보』라는 거짓말
  • 박준영
  • 승인 2021.06.07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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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서른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사진출처= 다음영화)
(사진출처= 다음영화)

정치인에게 정직하길 기대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 꽃이 피길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일까? 정치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위로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드인 『하우스오브카드』에서 프랭크 언더우드가 소름 끼치게 설파했듯이 정치는 전쟁과 같아서 적의 목줄을 완전히 밟아 죽이는 게 맞는 것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정치인의 덕목 중에서 가장 으뜸은 ‘정직’이라는 생각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았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이 왜 없겠는가? 작정하고 국민을 속이기 위해 행해지는 불량한 거짓을 말함이다.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 3선인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우리가 뉴스에서 지겹도록 보는 이중적 정치인의 행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민코스프레는 기본이고 자신이 항상 정의의 편인 척 한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주 의원이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모든 일이 꼬여버린다.

생각해보라. 정치인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이미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기본 기능 하나가 망가진 거다. 그래서 영화 『정직한 후보』는 그 제목으로 이미 이율배반적이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사진출처= 다음영화)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연출한 감독은 연극과 영화판(『김종욱 찾기』, 『부라더』 등)에서 능수능란한 이야기 솜씨를 보여준 장유정 작가이다. 여기에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며 한껏 물 오른 연기를 보여준 배우 라미란은 다른 배우와 대체불가능하게 보인다. 연출과 연기는 합이 잘 맞아 보인다.

『정직한 후보』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민망하고 낙후돼 있는 선거운동 전 과정을 꼼꼼하게 재현한다. 원곡의 감동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선거 로고송, 거리에서 오가는 시민들을 괜히 부끄럽게 하는 선거운동원들의 칼로 잰 듯한 어색한 군무, 진정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반복적으로 외치는 선거 구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장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우리는 정치에 응어리진 마음 같은 게 있다. 삼류도 아닌 사류 바닥에서 여전히 지체돼 있고 국민들이 촛불을 수 없이 들어주었건만 여의도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미개하며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한다. 검찰청 입구 포토라인에서는 기름기 있는 얼굴로 자신의 무죄를 자신만만해 하더니 나올 때는 고개를 숙이며 국민께 죄송하다는 부조리 극을 우린 지치지도 않고 지금껏 보고 있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사진출처= 다음영화)

그래서 영화는 기시감을 버무린 코미디가 돼 버렸지만 그저 웃기만 하기엔 씁쓸함이 남는다. 그렇다고 그냥 지켜 보자니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잠재적 후보들이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이 참에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주상숙 의원이 걸렸던 ‘정직 바이러스’가 2021년 대한민국의 현실 유력 정치인들에게 전염된다면 어떤 말들이 뉴스에서 튀어 나올까? 그리고 과연 여기서 살아남을 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니,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인들이 있을 수 있기나 할까?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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