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상태바
"언제나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 서경건치
  • 승인 2021.03.05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원 탐방 1.

온라인 소식지를 통해 건치 서경지부 회원들의 근황을 전하고 회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회원 탐방' 코너를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며, 첫번째 주인공은 채민석 회원(동탄 채움치과)입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2월 전양호 사무국장과 이효직 사무차장이 방문하였고, 오랜만에 수다도 떨고 맛있는 점심까지 얻어먹고 왔습니다.  

 

1. 최근에 결혼도 하시고 개원도 하셨다고 들었다. 축하드린다. 근황을 좀 알려달라.

- 결혼과 개원이 작년 봄이라서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1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두 행사 모두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널리 알리지 못하고 조용히 치렀다. 그리고 결혼과 개원을 즈음해 집도 치과 근처인 동탄으로 이사를 했다. 코로나도 코로나이지만 물리적 거리 때문에 주로 서울에서 생기는 여러 회의나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농담삼아 '동탄 섬'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기에 오픈한 개원의들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이겠지만, 자연스레 치과 경영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 행복하신가?

- 어려운 질문이다.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만큼의 실천을 하고있지는 못하지만 이 질문에는 얼마 전 영면하신 백기완 선생님의 추모 홈페이지에 있는 글로 답을 대신하려고 한다. “이웃들이 다 어렵게 사는데 네 배지(배)만 부르고 네 등만 따시고자 하면, 키가 안 커!”

 

3. 이래저래 힘들 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일을 겪으셨는데, 소회랄까? 과정에서 힘든 일이나 뭐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얘기를 좀 해 달라.

- 개인적으로 결혼을 하게된다면 결혼식 없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내심 최대한 많은 사람들한테 '대면'으로 축복받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결혼식을 올린 작년 4월은 다행히(?) 수도권에 첫 거리두기 지침이 발표되고 한 차례 연장된 시점이었다. 이상적인 결혼식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는 인식의 거리를 비교적 자연스레 타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는데 오히려 결혼식 전 3월 초에 신혼여행으로 열흘동안 아이슬란드에 가려던 것이 취소가 된 것이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출국 하루 전날 마트에서 아이슬란드에서 먹을 음식을 카트에 담고 있었는데, 여행사로부터 비행기가 캔슬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카트에 담은 음식을 다시 판매대에 올려놓을 때는 정말이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퇴사 후 개원 전의 공백기에, 개원 후에는 차마 가기 어려운 먼 곳을 가보고자 하는 건 많은 이들의 로망일텐데, 인생에서 몇 안되는 기회가 좌절된 것이라 당시에는 삶의 낙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4. 이전에 꽤 오랫동안 건치 활동을 함께 하긴 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당시에 채민석 회원은 왠지 건치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뭐랄까 건치보다는 훨씬 더 왼쪽에 있는 것 같은... 이건 좀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긴 한데, 당시랑 지금이랑 건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20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이고, 40대에 마르크스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주의 정치에 대한 비판서인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가 한 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한 저널에서 나온 유머라고 한다. 암튼 2008년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주최한 '보건의료 진보포럼'에서 건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스물일곱살이었고(물론 2005년인가 2006년에 학교 동아리 연합행사 초청연사로 김의동 전 서경지부 회장님을 만나긴 했지만 그땐 건치라는 단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지금은 한국 나이로 딱 마흔이다. 음 아직은 바보인 것 같다^^

우선 예과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읽은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저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구별 못하고, 엥겔스가 엥겔지수의 그 엥겔인줄로만 알았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식의 지평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관련된 지식을 알아 나가면서 토론하고, 집회를 나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꼭 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사명감까지도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얘기하면 건치보다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젋은 보건의료인들이 모여있는 공간인 '다리' 활동이나, 국제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모 정치단체에서 대놓고 마르크스주의의 틀로 사회를 분석하고 실천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건치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어디 가서는 건치 회원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건치에 기여를 한 건 없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당장은 여러 사정이 있어 쉽지 않지만, 머지않아 건치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5. 건치에 바라는 게 있다면? 

- 잊지 않고 회원탐방까지 와주셨는데, 어떻게 더 바라는 게 있겠나? 굳이 바라는게 있다면 머지 않아 활동을 할만한 여유가 생겼을 때, 내치지 않고 보듬어주시면 좋겠다.

6. 요즘 뭐하시고 지내시나? 치과랑 집 빼고 뭐 달리 하시는 일이 있으신가? 취미생활이든 사회활동이든?

- 코로나도 그렇고 치과 오픈하면서 삶의 여유가 없다보니 근 몇 달 간 활동을 제대로 한 것이 없다. 건치신문 편집위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 건강과대안 운영위 활동도 거의 못했다. 단체톡방의 논의를 통해 비대면으로만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2년 연속 학생들과 같이 갔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수폭금지세계대회도, 참치학교도, 학교 동아리 학생 조직도 못하고 있다보니 치과랑 집 빼고 달리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꿀잠 진료소도 거리두기 강화로 내내 못하고 있다가 지난 달에 5개월만에 참여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생긴 취미가 있다. 우연한 계기에 독일 녹색당의 지도자로 사민당과의 적록연정에서 관료를 지냈던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이후 체력과 시간이 허하는대로 달리기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마침 새로 이사 간 동탄 집 바로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어서 운동하기엔 좋은 환경이다. 올 겨울에는 하필 눈이 많이 와서 흐름이 끊길 때가 많긴하지만, 요슈카 피셔처럼 달리면서 맑은 정신으로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더불어 체중도 좀 감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7. 이제 드디어 개원의가 되셨다. 봉직의랑 개원의랑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 그리고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으신가?

- 봉직의는 상급 프롤레타리아 같고, 아직까지는 개원의는 하급 쁘띠부르주아 같다^^
굳이 봉직의와 개원의의 다른점을 계급론을 들먹여서 이야기하게 된 일화가 있다. 공보의 시절 같이 알게된 의과 선생님이 개원 축하 화분을 보내주면서 한 말이 있다. "민석아, 개원 축하해. 이제 드디어 네가 얘기했던 사회주의를 포기할 때가 되었구나"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이 형은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명제를 잘 알고 있구나'(참고로 마르크스주의자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이다.) 내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요새 계급론에 관심이 많이 간다. 내가 처한 현실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목도하는 수많은 분절된 노동을 보면서, 그리고 코로나19가 야기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양상을 보면서, 부동산과 주식의 광풍을 보면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변혁의 담지자로 호명된 전통적 노동계급의 현대적 의미를 곱씹게 된다. 갑자기 내용이 급 진지해졌는데, 사실 단순하다. 내가 되고 싶은 치과의사는 그 공보의 형의 기대를 배반하는 치과의사이다. 즉 언제나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에 연대하는 치과의사이다. 또한 20대 시절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몸 속 깊숙이 어딘가에서 움튼 열망을 위해 40대가 지나서도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바보' 치과의사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