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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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희망을"
  • 우석균
  • 승인 2020.12.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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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공동대표
우석균 공동대표
우석균 공동대표

매년 특별한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겠지만, 2020년은 보다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누구라도 처음 겪는 역병의 해였고, 또 여전히 코로나19로 새해를 여는 아침입니다. 새해라기보다는 팬데믹의 첫해에서 두 번째 해로 접어드는 느낌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복된 새해’라는 인사말이 적절하지는 않은 듯도 합니다.
 
팬데믹만이 아닙니다. 경제위기도 여전히 지속될 전망입니다. 또 인구가 거주 가능한 지구를 후세에 넘겨주려면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반으로 낮추어야 하는데, 우리는 작년 1년을 허비했습니다. 이제 9년 남았군요. 이 전망도 밝게 잡은 것이랍니다.

물론 백신은 이미 개발됐고 2021년에는 우리도 백신을 맞겠지요. 그러나 백신이 안전하고 별문제 없이 공급된다 해도, 올해 상반기에 1,000만 명 정도가 맞기 시작해 2번 접종에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항체가 형성되려면 하반기도 꽤 지나서야 노인들과 의료진만이, 만약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다면 접종인구의 70% 즉 700만 명 정도가 일정한 면역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의료체계의 부담은 실질적으로 줄겠지만(이렇게만 되어도 정말 좋겠습니다), 아직 마스크를 벗을 때는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시간이 언제나 올지요. 아니 오기는 하는 걸까요.

한국은 선진국이라서 이런 시간표라도 그릴 수 있지만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 다시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됩니다. 또 북녘의 동포들은 어떨지도 걱정스럽습니다. 또 하나 선진국들만 백신을 다 맞으면 경제위기에서 회복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어찌어찌해서 경제위기가 회복세에 접어든다 칩시다. 그때부터 온실가스 배출은 급격히 늘어날 텐데 그러면 기후위기가 더 빠른 속도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요?

네 맞습니다. 우리는 역병의 시대만이 아니라 묵시론적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병은 이러한 시대의 신호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고 보니 요한묵시록의 종말의 네 기사가 각각 역병, 전쟁, 기근, 그리고 죽음의 기사이고 그 첫 번째 기사가 역병이었던 듯합니다. 무슨 신년인사가 이리 암울하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네. 시대는 암울하고 제 생각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서 그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을 듯 보이기도 합니다.
 
희망은 이제부터는 오히려 우리의 행동에서 찾아야 할 듯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세기 전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유니우스 팜플렛에 나오는 말이지요. 그는 예언자였습니다. 뒤를 이은 시기는 잘 아시는 것처럼 역병과 전쟁의 시기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또 1,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시에 스페인 역병이 돌아 5,0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됩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혁명을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발발했고 아시아에서도 3.1운동과 5.4운동을 필두로 새로운 운동이 있었지만 인류는 결국 야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말을 한 로자 룩셈부르크도 테러로 숨졌고 러시아 혁명도 굴라그로 대표되는 반동으로 시대의 희망 역할을 마감했습니다. 세계는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에 더해 10년을 더 분단과 전쟁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1세기 전 룩셈부르크의 질문은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으로 끝났지만 지금 시대의 야만은 단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야만이란 인류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선택이란 지금의 사회체제를 넘어 ‘다른 사회’를 만드는가 아니면 지금 이 상태로 종말에 이를 것인가 사이의 선택일 것입니다.
 
2020년 암울한 상황에서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s)’ 운동이 전 세계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2021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2020년보다 훨씬 더 큰 운동들이 세계를 뒤흔들 것입니다. 저항의 물결은 암울한 시기에도, 아니 암울한 시기이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터져 나올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항을 연결하고 단결시키는 것.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연대를 만드는 것 말입니다. 지금은 서로 달라 지향점이 다르고 여러 얼기설기한 움직임들로만 보일지라도 그 저항들이 단결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희망으로 모든 분들께 덕담을 드립니다. 새해에는 노력하시는 일들에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건강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에서 희망을 봅니다. 항상 이 땅의 어려운 사람들과 연대하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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