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시즌 1‧2… 조선의 역병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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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시즌 1‧2… 조선의 역병 투쟁기
  • 박준영
  • 승인 2020.06.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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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열 아홉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미드(미국드라마)인 『워킹데드』가 글로벌 히트를 하긴 했지만, 좀비 장르물이 과연 국내에서도 통할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갖는 전문가가 많았다. 한국 관객들은 좀비물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기도 할 뿐더러 시각적으로 불편한 괴물의 몰골을 과연 장시간 몰입하며 볼 수 있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좀비 영화인 『부산행』이 천 만 영화로 등극하더니 시대극을 배경으로 하는 좀비물까지 연이어 개봉하면서 ‘좀비’ 소재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좀비를 표방한 영화 『창궐』의 흥행이 주춤하긴 했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좀비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 인터넷 스트리밍 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일단 외국인들의 눈에 이국적으로 보이는 동양의 작은 나라가 흥미로왔고, 화면은 아기자기 하면서 독특한 건축양식인 궁궐의 여러 장소를 비쳐주었다. 여기에 화려한 의상과 아름답고 독특한 모자(갓)는 ‘케이 좀비’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렸다.

『킹덤』의 또 다른 미덕은 여타의 다른 미드보다 훨씬 저렴한 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미드의 편당 제작비는 100억을 훌쩍 뛰어넘는다. 10부작이면 1,000억 정도가 드는 셈이다.

미드의 흥행 대표작인 『왕좌의 게임』도 편당 100억을 넘어선 지 오래다. 반면에 『킹덤』은 편당 20억 수준에 만들어졌다. 물론 이 역시도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에 버금가는 예산이긴 하지만 시대극에다 제작비 상승 요소인 특수 분장이 많았음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높다고 하겠다.

단지 예산이 적게 든 부분만 대단한 건 아니다. 권력을 놓고 벌이는 암투와 역병든 백성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겪는 조선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넷플릭스 진입에 주저했던 한국관객층을 일거에 흡입했다.

역병에 걸린 조선의 왕. 그런 왕을 두고 절대권력을 탐하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와 그의 딸 중전(김혜준). 그들의 계략에 졸지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전임 어의였던 이승희 의원을 찾아 경상 땅 동래까지 내려가게 된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그러나 그곳에서 맞닥뜨린 것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백성들이었다. 이창은 좀비들과 싸우며 숨겨졌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한다.

언론 기사에는 『킹덤』이 15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큰 전란을 두 번이나 겪었다고 한 점(아마도 임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관리들의 부정부패, 가렴주구가 극도로 달했던 시기를 고려하면 15세기보다는 17세기 혹은 19세기로 보는 게 타당하다.

조 씨 가문의 세도정치 득세와 외척의 폐해가 그려지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조총의 개량된 제원 등을 보면 정조 사후 19세기 초 정도가 더 정확한 시대적 배경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드는 궁금증. 좀비의 순 우리말은 뭘까? 국산(?) 좀비의 이름은 ‘재차의(在此矣)’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나 여기 있다”라는 뜻인데 무당이 상을 차리고 춤을 추며 혼을 불러내면 병풍 뒤의 시체가 되살아나 ‘나 여기있다’ 하며 손을 내밀기도 하고 사람의 말에 대답도 한다고 해서 ‘재차의’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고려 후기의 문신인 한종유가 무당이 제사에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곡을 할 때 장난 삼아 자신이 살아난 시체 역할을 해서 사람들이 놀라 도망가면 제사상의 음식을 모두 쓸어 담아 갔단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와 있는 내용이니 그냥 지어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킹덤』은 『끝까지 간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사인』, 『시그널』 등 이미 방송에서 드라마를 흥행 시킨 김은희 작가가 손을 잡고 만들었다. 조선의 좀비들이 드라마 내내 죽어라 뛰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허기와 굶주림 때문이었다. ‘죽음보다 싫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득달같이 달음박질하는 좀비의 몸짓이 꼭 조선 시대에만 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다.

(출처=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킹덤』 시즌 1이 대성공을 거두자 『킹덤』 시즌 2 제작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하필 전 세계가 팬데믹의 광풍에 휩싸여있는 이때, 전 세계인에게 선보이게 되리라곤 제작진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혹시라도 홍보를 위해 코로나의 '지옥같은 나날'에 개봉 타이밍을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 많은 네티즌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넷플릭스 측은 이미 『킹덤』 시즌 2의 각본은 작년에 완성됐었다는 해명을 기자들에게 내놓았다.

하긴 인류의 재난은 영화 소재의 단골이다. 헐리웃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은 수 년 전에 이미 개봉을 해 5만이라는 미미한 흥행 성적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코로나19 덕분에 다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 지나치게 작금의 현실과 흡사해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한국영화도 만만치 않은 예지력(?)을 담고 있다. 『연가시』 와 『감기』는 한반도를 덮치는 역병과 강력 전염 세균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킹덤2』는 이번에도 흥행이 순조롭다. 아니 시즌 1보다 더 진화된 내용과 구성으로 조회수 급상승 중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콕'을 실천해야 할 엄중한 시기 덕에 넷플릭스의 주가는 연일 치솟고 있다.

오죽하면 넷플릭스가 유럽연합(EU)의 권고로 인터넷 정체를 막기 위해 향후 30일간 유럽 내 모든 영상의 스트리밍 전송률을 낮추겠다고 했겠는가.

어떤 작품이든 시즌2는 항상 더 강해지는 관성이 있다. 주요 공간을 구중 궁궐로 옮겨와 현실 권력의 쟁탈전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곳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창경궁과 창덕궁의 액션 신은 세트를 만들어야 했고 덕분에 촬영은 정교하고 웅장해졌다.

시즌2의 메가폰을 잡은 박인제 감독은 "더 잔인하고 더 고어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 전한다.

이번 시즌2는 피갑칠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중전(김혜준 역)이 자신의 핏줄로 권력을 이어가기 위한 ‘혈연 사수’ 드라마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의 암투에 눈이 먼 나머지 역병에 걸려 좀비가 된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은 위정자에겐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은 코로나의 발호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새삼 국가는 무엇인지, 정부의 가장 큰 임무는 어떤 건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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