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날이 흐려 입을 꼭 다문 채 고개 숙이고 있는 ‘뚜껑별꽃’을 만난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차가운 봄기운 때문에 몇 송이밖에 피지 않은데다가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열매의 뚜껑이 아니라 머리뚜껑이 날아갈 뻔했다. 세 번째 제주행, 지난해와 같은 날짜였음에도 풍성하게 피어 있어 붕붕 뜬 기분으로 담았다. 거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경지다.

‘뚜껑’이란 말은 열매가 터질 때 뚜껑처럼 열린다하여 붙여졌다. ‘뚜껑덩굴’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 열매는 아직 직접 만나지 못했다.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별꽃, 개별꽃, 쇠별꽃은 석죽과인데 뚜껑별꽃은 앵초과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별’을 빌려온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남부 해안가와 제주에 살고 있다. 대부분 4월에 피고 늦게는 5월말까지 볼 수 있는데 유난하게 일찍 피었다. 날씨에 민감해서 해가 아주 쨍한 서너 시간만 그 속살을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30여 종이 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딱 한 종만 살고 있다. 줄기는 비스듬히 누워 자라고 마주난 잎의 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한 송이씩 피어난다. 꽃이 청색에 가까운 짙은 보라색이라 ‘보라별꽃’이라는 별명도 있다.

새끼손톱만한 꽃을 들여다보니 노란 꽃밥이 매달려 있는 다섯 개의 수술대에는 밝은 자줏빛 털이 나있고 암수술대 주위에는 하양, 자주색이 둘러싸고 있다. 색의 묘한 조합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은은하고 조용한 계절에 이리 강렬한 빛깔의 꽃을 피워내는 것은 어인 일일까. 보이지는 않지만 치열한 생명싸움이 이뤄지고 있는 봄을 대변하는 외침처럼 다가온다. 손톱만한 보라별꽃이 그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 시간을 빚어내고 있다. 맞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도 받는가 보다. 그 꽃빛은 영락없이 깊은 바다를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