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사군자 중 선비의 고고함과 절개를 상징하는 난초(蘭草)는 화분으로는 자주 접하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예전에는 흔하디흔한 들꽃이었다는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다. 꽃봉오리 식감이 아삭아삭하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꽃이 돈이 되기 시작하니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우리 꽃세계에 들어선 나는 언제 만날 수 있으려나 애가 많이 탄 녀석이다.
봄에 피어 춘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봄을 알리는 꽃, 보춘화(報春花)가 더 잘 어울린다. 따듯한 남부에 많고 중부는 서해를 중심으로 해안가 소나무가 많은 곳에 살고 있다. 활엽수림 속에서도 만났으니 사는 곳은 넓어진 듯하다.
잎은 상록다년생이니 질기면서 단단하다. 꽃은 연한 녹색으로 줄기 끝에 하나씩 달리는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지고 입술모양 꽃부리에는 하얀색에 자주색 반점이 보이는데 독특한 매력이 있다. 지난해 열매집을 같이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다음에는 서해 바닷가에 있는 산을 올랐다가 낙엽을 헤치고 올라와 꽃을 피운 보춘화를 보았다. 등산로 바로 옆인데도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제법 있는 것이 살기에 안정적인 곳으로 보였다.
또 한 번은 필 시기가 한참 지나고였다. 풀이 무성한 어느 산소에서 땅비싸리와 골무꽃을 담고 나오는데 길이 굽어진 모퉁이에 경비병처럼 떡 버티고 앉아있었다. 보고 싶어 찾아가는 발걸음도 설레고 즐겁지만 예상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만나는 그 기쁨에는 비길 수가 없다. 올봄에도 이런 즐거움이 종종 찾아와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