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대 협회장 선거 취재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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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협회장 선거 취재를 돌아보며…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0.03.10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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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번에도 선관위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진화를 위해 정부, 의료인, 시민사회 각계각층은 나름의 치열한 2020년을 보내고 있다.

직선제로 치러지는 두 번째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제31대 회장단 선거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행사가 축소‧진행됐다. 사실 오프라인 행사만 줄었지, 물밑에서 그리고 SNS 단톡방에서는 줄어든 행사만큼 많은 수의 보도자료를 4명의 후보 캠프에서 앞다퉈 올렸다. (아, 보도자료 개미지옥)

선거라는 게 치과계 앞날과 발전을 위해 ‘정책선거’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치과라는 전문 영역에서의 이슈의 스펙트럼은 실상 좁을 수밖에 없고, 게다가 치과의사전문의제도, 구강정책과와 같은 굵직한 것들은 지난 3년 사이에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 지난번 선거 때도 그랬지만 각 캠프 간 정책 차별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먼저 공약 발표하는 쪽이 바보”라는 눈치싸움도 여전했다.

그래도 모든 개원의들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보조인력난’ 해결에 있어서는 캠프마다 각각 이름은 달랐지만 ‘제3의 직군 만들기’로 합의를 본 듯 했다. 어떤 분이 되든 아무튼 파이팅.

또 모든 이슈가 코로나19 사태로 수렴되면서 각 캠프의 이벤트도 비슷했다. 각자 인맥과 영향력이 있는 정부 부처로 뛰어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코로나19가 파죽지세로 대구‧경북지역으로 확산되자 이를 돕자며 후보자들은 구호에 나서 마스크와 손소독제, 성금을 앞다투어 보냈다. 이것도 모자라 협회장 급여 삭감, 협회비 일시적 감액 등을 통해 대경 지역에 특별 성금을 보내겠다는 등 치과계를 위해 처절하게 몸을 던지는 ‘헌신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역시 직선제라 그런지 회원 중심의 약속과 실천이 잇따르는 것인가?

적고 보니 스펙타클한 느낌이지만, 필자에겐 비슷한 느낌의 보도자료를 어떻게 하면 다른 것처럼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시간이었다(지만 다 비슷한 것 같다).  이러다가 그냥 선거가 끝나려나 하는 찰나에 이상훈 후보가 긴급 호소문을 내고 한 후보의 행실을 문제 삼았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제30대 회장단 선거무효소송단에 1천만 원의 거액을 그 후보가 은밀하게 현금으로 지원했으면서, 치과계 소송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발언한 것이 문제였다. 이를 놓고 캠프 간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겸직금지 위반 혐의와 기타 말로하기 민망한 혐의를 받고 있는 후보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정책선거가 결국 후보자간 흠결 잡아내기로 귀결되는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지만, 취재하는 입장으로선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치협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동기 이하 선관위)가 각 전문지로 공문을 보내 이와 관련한 기사 사용 중지 및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반론보도까지 착실히 하고, 취재원 및 대상자 보호를 위해 가명처리를 하는 등 보도준칙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본지는 선관위의 이런 요구에 황당했다. 선관위는 공문에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긴급 기자회견문 등을 통해 유포하면서 특정 후보자를 비방하고 불법적으로 사퇴를 요구함으로써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후보가 이를 각 치과전문지에 보도함으로써 선거인의 투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을 본 선관위에서 확인했다”면서 기사 삭제 및 중지를 요청한 것.

선관위의 자신의 말에 따르면 징계 대상은 그 후보자다. 그런데 사실 확인 후 작성한 기사를 문제 삼는 건 문제다. 각 전문지마다 저 사안을 어떻게 다뤘을지 모르는데, 일괄적으로 저런 공문을 보내 삭제하라는 것은 기자 본인에게도, 편집국에서도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본지 편집국장의 말을 빌리자면 “독재시대를 연상시키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선관위는 저 사건의 문제를 확인하고 해당 후보자 캠프에 3월 9일까지 사실확인을 위해 소명서를 달라고 요청하기가 무섭게 3월 6일 저녁에 치협 출입기자 단톡방으로 기사 삭제 공문을 보냈다. 공정선거를 지향한다면서 절차도 지키지 않은 선관위.

정책이 아닌 후보자 캠프의 과거일이 쟁점화되는 것도 별로지만, 가장 첨예한 논쟁 가운데 있는 문제에 대해 무엇을 근거로 선관위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것이라 단정하며 협박에 가까운 공문을 언론사에 보내는 지. 참으로 유감이다.

그러나 정작 선관위는 후보자들과 일부 유권자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유권자는 “한 후보 캠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편파적인 전문지 기사 링크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다른 후보를 깎아내리는 SNS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데 정말 질린다”고 비난키도 했다. 또 대구경북 지역에만 발송된 문자메시지의 경우 장영준 후보가 운영하는 의료재단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해당 캠프는 선관위에 문제를 제기키도 했다.

이 전에도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은 선관위는 “2월 29일부로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대회원 공지를 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일어난 불법 선거운동은 없던 일로 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시작이 언론 길들이기로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자의 취재로 확인된 사실을 기사화한 것에 대해서도 ‘건전한 선거를 해친다’면서 삭제를 요청하면서, 다른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이러니 특정 후보에 대한 특혜라는 여타 캠프들의 정황적 근거가 상당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번 선거에서 선관위의 태도를 떠올려본다. ‘선거인 대량 누락 사태’에 대해 선관위는 ‘(확인 안한)회원 네 탓’을 시전 했다. 이번엔 ‘언론사 네 탓’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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