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 치과이야기] 치과의사의 역사
상태바
[그림속 치과이야기] 치과의사의 역사
  • 강신익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학자들은 현재 존재하는 제도나 현상을 설명할 때 그 최초의 사례를 찾기를 좋아한다. 의사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초의 전신마취, 최초의 종두법, 최초의 X-ray, 최초의 소독 등을 찾아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추적한다. 또는 그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을 찾아내서 그를 선조로 설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그 위대한 선조의 후손임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를, 한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허준을,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을, 그리고 치과의사는 프랑스의 피에르 포샤르를 자기 분야의 롤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어떤 직업의 역사적 성격이 이러한 특출한 인물들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업적이 빛나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동업자들의 활동이 그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에 표현된 것은 15세기 초 유럽에서 활동하던 이발외과의사의 모습이다. 그가 들고 있는 커다란 칼과 가위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상처를 치료하며 피를 뽑아냄으로써 질병을 치료했던 그들의 업무를 상징한다.

중세 유럽에 이러한 이발외과의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은 1163년 교회가 사제들의 치료행위를 금지시킨 이후의 일로써, 그 이전에는 주로 사제들이 교구민을 돌보기 위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사제로부터 임무를 넘겨받은 이발외과의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고(1092년에는 수도사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요로결석을 절제하며, 농양에 대한 배농, 사혈, 발치 등의 시술을 했다. 독일에서는 이발외과의들이 목욕탕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부가적으로 관장을 해 주거나 치아를 뽑아주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210년 이발사 길드가 조직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분리를 선언해, 결국은 외과의(surgeons of the long lobe)와 이발사 또는 이발외과의(surgeons of short lobe)가 분립되기에 이르며, 14세기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의 허락없이 수술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령들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혈이나 발치 등은 두 집단 모두가 행할 수 있었고, 흡각을 이용한 치료, 관장,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빨아내게 하는 치료 등과 함께 점차 이발사의 고유영역으로 되어갔다. 이 중에서 흡각, 관장, 사혈, 거머리 요법 등은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된 반면 발치 이외의 치과치료법들이 도입됨에 따라 또 다시 치과의사의 영역과 이발사의 영역이 구분되게 된다. 따라서 현대의 외과의사, 치과의사, 이발사는 모두 중세의 이발사를 공통 조상으로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하기 시작한 해부학과 생리학 등에 힘입어 그동안 교회로부터 천시받던 외과가 점차 내과적 질병을 설명할 수 있게 되자, 본래 뿌리가 다르던 외과와 내과가 점차 통합의 방향으로 발전해 간 반면, 치과는 그대로 남아 독립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니까 중세까지는 의과와 치과가 구분돼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과와 외과가 구분되고 외과에서 다시 치과가 구분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치과의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에 비추어 이러한 역사 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치의학의 역사를 기록한 많지 않은 문헌 중 하나의 저자인 제임스 윈브란트는 자신의 책에 『‘고통스런’ 치의학의 역사; The Excru-ciation History of Dentistry』라는 제목을 붙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발사라는 조상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 조상들이 겪어온 역사적 과정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야할 이유도 없다. 역사는 지금의 현실을 옳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맥락이며 우리의 미래를 지시하는 방향타일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자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유쾌하지 않은 역사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