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건강권 외면…부메랑돼 돌아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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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건강권 외면…부메랑돼 돌아올 것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10.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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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일 간 공항 구금된 루렌도 씨 가족 사례로 본 난민과 이주민의 건강권 문제

287일 간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 46번 게이트 앞에서 난민 아닌 난민 생활을 한 루렌도‧바체테 씨 부부가 지난 10월 11일 공항에서 나와 한국으로 입국했다. 이들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면서 앙골라 국적을 가진 이들로 앙골라 정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한국 땅에 왔다.

앙골라와 콩고는 해저 석유 통제권 등의 자원을 놓고 갈등을 벌여왔으며 지난 2007년경부터 해상 경계선 분쟁으로 확대됐고 이러한 국가 간 갈등 속에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만 콩고 출신 이주민 40만 명이 앙골라에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앙골라 정부는 물리적‧성적 폭력을 자행해 국제적으로도 비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루렌도 씨는 경찰에 고문을, 아내 바체테 씨는 성폭력을 당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은 지난 3월 이러한 루렌도 씨 가족의 사연을 『노동자연대』 기사에서 접한 후,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을 통해 진료지원이 절실하단 이야기를 듣고 인의협 차원에서 진료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출입국은 ‘인도주의적 의료지원’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차선책으로 변호사를 대동해 들어가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값싼 비행기 티켓을 끊고 들어가 진료만 하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인의협에서는 우석균 공동대표를 비롯해 최규진 인권위원장, 녹색병원 정신과 이승홍 선생 등이 4차례에 걸쳐 진료를 나갔다. 아울러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고승석 원장(행복한치과)도 치과진료를 제공했다. 현재 공항을 나온 루렌도 씨 가족은 안산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본지는 우석균 대표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의 변혜진 상임연구원을 만나 루렌도 씨 가족의 상황과 한국의 난민 수용의 문제점에 대해 들었다. 루렌도 씨로부터 억류 중의 건강상태에 대해 필요에 의해 공개해도 된다는 동의를 얻었다.

- 편집자

 

공항에 억류된 루렌도 씨 가족 (출처=난민과함께공동행동)

“난민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4월 처음으로 루렌도 씨와 바체테 씨의 건강상태를 체크한 우석균 대표는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우 대표는 “루렌도 씨의 혈압을 쟀는데 200/120이란 숫자가 떴다. 처음엔 기계가 고장난 줄 알았다. 당장 뇌경색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로, 응급 상황이었다”라며 “놀라서 루렌도 씨에게 공항 내 클리닉에도 가지 못했냐고 물으니 배가 아파 가서, 약을 타 왔다고 했다. 어떤 병원이든 정식으로 접수를 하면 혈압을 재는 건 당연한데 이를 패스하고 약만 준 것은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아내인 바체테 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고. 우 대표는 “바체테 씨는 혈압도 높았고, 특히 안압이 높아 두통을 호소했다. 첫 번 째 진료에서 혈압약을 보냈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보니 약을 먹었는데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바체테 씨는 녹내장으로 인한 실명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 빨리 외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다”며 “치아의 경우 매우 심각하게 통증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외부 병원으로 데려나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루렌도‧바체테 씨 상태에 대한 소견서를 빽빽이 써서 제출했지만, 출입국은 앙골라 공항 관계자가 출근을 안해서, 주말 휴일이라서, 목요일과 금요일은 앙골라 항공편이 없다는 이유로 닷새나 시간을 끌었다.

우 대표는 “외부 진료를 위해서는 앙골라 항공 관계자, 법무부 당국자와 동행해야만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자꾸 미뤘다”며 “교도소에서 수감자들도, 심지어는 포로도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공항에 억류된 난민의 의료지원 조차 막는 당국의 비인도적인 처사는 사람을 사람취급 하지 않은 것”이라고 규탄했다.

결국 녹색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긴 했지만 시간이 모자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던 치아는 제대로된 치료는커녕 어금니 2개를 발치하는 데 그쳤다. 우 대표는 “진통제나 소염제, 항생제 등을 보내 최대한 완화시켜 보려했지만 역부족이라, 리도카인(마취제)를 보내 잇몸에 문지르도록 했다. 언제 치료받을 수 있을지조차 몰라서”라고 설명했다.

바체테 씨가 제대로 치과치료를 받은 것은 10월 4일, 승소판결을 받고 일주일이 훌쩍 지나서였다. 우 대표에 따르면 난민 심사 받을 자격을 얻었음에도 당국에서는 휴일을 이유로, 인천지역 치과만 허락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지난 4일 고승석 원장 치과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고 원장에 따르면 바체테 씨의 치아 상태는 충치로 인해 뿌리만 남거나, 치주염이 심해 후유증으로 곪아 있는 치아 등 4개를 발치했다. 또 다른 2개의 치아는 신경치료를 진행하고 임시로 떼웠다고 한다. 고 원장은 “한번에 4개를 발치하는 건 사실 안되지만 시간도 상황도 여의치 않아 급한 불 끄듯 진료를 진행했다”며 “당시 상태는 제대로 음식물을 섭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4명의 아이들의 건강 역시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우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우 대표는 “아이들은 처음엔 활달해 보였는데 몇 개월 지나니까 상당히 시무룩해졌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고.  종일 공항은 불이 켜져 있으니까 Hyperactivity 상태였던 것”이라며 “셋 째 남자아이가 팔을 다쳤다며 루렌도 씨가 내게 사진을 보내줬는데, 잘 보니 스카프를 팔보호대처럼 메고 있었다. 공항 내 클리닉에서 몇 천 원짜리 팔보호대도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울러 우 대표는 “처음엔 활달해 보였던 아이들이 밤낮없이 지내다 보니 불안정해지고, 말수도 적어졌다. 엄마인 바체테 씨에게 ‘학교는 언제가?’라고 물을 때 가슴이 아팠다”며 “이들 가족이 난민이 되는 과정에서 이 부부에게 저질러진 감금, 고문과 폭행, 비인권적 처사 등의 고통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음식도 잘 먹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풀려난 상태인데도 아직도 식사하는 게 어렵다. 이러한 고통과 경험이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권 문제는 난민에서 그치지 않을 것

인의협 우석균 공동대표

우 대표는 난민에 대한 극도로 폐쇄적인 한국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 대표는 “만약 루렌도 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바체테 씨가 실명이 돼 아이 넷만 공항에 덩그러니 남겨진다면, 이 얼마나 국제적 망신이겠느냐”라고 통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난민에 대한 폐쇄적 정책이 개선돼야 하고, 난민을 비롯해 긴급히 의료지원이 필요한 이주민에게 일시적 의료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이러한 비인도적 상황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난민과 이주민의 건강권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 대표는 난민에 대한 인도적 의료지원, 건강권을 보장해 주는 일은 ‘사회보장’의 기본 이념을 따르는 것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은 외국인이나 재외동포가 혜택만 받는 ‘먹튀’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받는 것이 사회보장”이라고 피력하면서 “세금도 건강보험료도 안내는 데 복지혜택을 받는 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그런 논리라면 경제능력이 없는 노인, 어린이는 물론 실업자, 현재 급여치료인 백혈병 환자조차 제외된다는 뜻”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난민이 최소한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위의 논리에 따라 이주민이, 이주민이 제외되면 재외동포가, 재외동포가 안되면 비생산 인구인 노인과 어린이, 실업자, 빈곤층까지 연쇄적으로 사회보장제도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건강권 보장은 우리나라 인권의 가장 예민한 지표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난민‧이주민, 침묵할 수 없는 문제

건강과대안 변혜진 상임연구원도 이번 루렌도 씨 가족의 사례를 통해 한국이 얼마나 난민에 폐쇄적이며, 나아가 ‘외국인 혐오증’의 정도가 심각한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 연구원은 루렌도 씨 가족 문제가 바로 어느 곳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난민’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봤다. 그는 “두 성인은 물론 네 명의 아이들에 대한 아동권리, 건강권이 배제됐다”면서 “국경에 걸쳐있는 난민들에겐 인도주의적으로 진료를 갈 수도, 그들이 반대로 올 수도 없다”고 말했다.

‘건보료 외국인 먹튀’ 우려는 근거가 없고, 국민의 반감을 오히려 국가가 이용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난민이나 이주민은 보통 지역보험으로 가입하는데, 원래 우리나라 지역보험은 늘 적자”라며 “외국인 직장보험 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더하면 사실 흑자인데, 마치 재외동포나 이주민이 건강보험을 축내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부실한 사회보장 제도를 가진 나라일수록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치안이 불안해 진다는 등 국가가 외국인 혐오증을 조장하고, 교정시키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며 “이주민을 위험하게 보는 건 고소득 국가의 일관적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변 연구원은 “다양한 연구와 논문에서는 중저위 소득 국가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적절한 사회보장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뤘다고 보고되고 있다”면서 “기업과 자본의 규제없는 이동은 허용하면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온 사람을은 물론 생계형 이주민의 이동을 막는 건 말이 안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황당함”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1985년부터 2015년까지 30년 간 서유럽 15개국에 유입된 이주민들이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난민들이 거시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고, 되려 국내총생산 증가, 실업률 하락, 세수 증대에 도움을 준다고 밝히고 있다.

변 연구원은 ‘이주민’ 문제는 전 세계가 직시해야할 문제이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UN에서는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분야에서 기업전략을 UN Global compact의 10대 원칙과 결합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는데, 지난 2018년엔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이슈를 핵심으로 지목키도 했다.

그는 “이미 2016년 유엔에서 지난 15년 동안 전세계 해외 이주민이 41% 증가한 2억 명을 돌파했고 그 중 2천만 명이 전쟁이나 국가의 박해 등을 피해 나온 난민, 망명자라고 발표했다”면서 “이주라는 것은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고 사회통합을 위해 국가 우선 과제 중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변 연구원은 “British Medical Journal과 같은 권위있는 영국의 저널에서도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건강 문제가 논의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UN 권고를 받아들여서 지속가능한 목표라는 SDGs에 따라 목표달성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데, 2억 명에 이르는 난민, 이주민의 최소한의 건강 요구를 외면한다면 이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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