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돈으로 살 수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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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돈으로 살 수 없는 이야기
  • 김해완
  • 승인 2019.08.2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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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2]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가 올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키로 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뽈리끌리니꼬(Policlínico) (제공=김해완)

한 번은 뽈리끌리니꼬(Policlínico)에서 의대 동급생들과 떠든 적이 있었다. (뽈리끌리니꼬는 쿠바에서 동네마다 24시간 가동되는 작은 종합 병원이다. 3회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 쿠바에서는 의사 월급이 짜다느니, 약국에는 늘 약이 없다느니, 왜 쿠바인은 돈이 없냐느니, 이런 저런 불만들이 튀어나왔다. 쿠바의 청년들도 세계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불만이 많다. 생계에 대한 불만부터 부모 세대에 대한 불만, 정부에 대한 불만,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만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런 불만들 아래에는 비슷한 정서가 깔려 있다. 그것은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동안 주야장천 불변의 길을 고집해온 혁명 구호에 대한 피로함이다. 이렇게 과거의 영광을 계속 강조한다면, 청년을 위한 미래는 불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바로 그때,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숭숭 구멍 난 치아를 드러내며 소리를 질렀다. “혁명이 없었으면 네 녀석들이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불평할 수나 있었을 것 같으냐? 위대하신 피델 동지가 등장하기 전에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는 애들이 수두룩했어!”

이럴 때마다 쿠바 동급생들은 질색하고 고개를 돌린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웃는다.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세대 갈등은 어쩌면 이렇게 레퍼토리가 똑같을까? ‘헬조선 탈출’을 외치는 청년들에게 한국 노인들 또한 이렇게 대꾸하신다. 먹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사지 멀쩡하게 태어났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한국 전쟁 때는 다들 굶어 죽었어…. 아이고, 여기까지만 말이 나와도 청년들은 벌써 귀를 막고 ‘꼰대 없는 안전 구역’으로 도망친다.

아바나 의과대학 친구들과 함께 (제공=김해완)

하지만 어르신들이 청년을 오해하는 만큼 청년들도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무게다. 혹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또 빚지고 있는 건강의 무게다. 전쟁, 학살, 착취, 기아, 가난, 테크놀로지로 인한 사고까지, 이런 인재(人災)들은 지능적이고 또 조작적으로 집단의 생을 파괴하는 작업이다.

물론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죽음이 불가능해질 때, 인재가 잦다 못해 ‘정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야기하는 고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 심정 때문에 비참해진다.

특히 그 화살이 어린아이를 향할 때면 이런 질문이 절로 튀어나온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도대체 왜 스스로의 목숨에 수치(羞恥)를 더하는가? 이런 질문이 사회적으로 흔하지 않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이 있어도 ‘살 만하다’는 것은 그 땅이 인간의 재앙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있음을 뜻한다.

휠체어 할머니의 호통은 이런 생명의 무게를 느껴보라는 훈계다. 혁명 전후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생명이 구해졌는지, 그것이 어떻게 쿠바인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비참함’에서 건져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 훈계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까? 쿠바인들의 건강은 정말 좋아졌을까? 그렇다. 여러 사료(史料)들과 국제기구가 발표한 수치들은 할머니가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쿠바인들의 건강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한 지역의 평균 건강을 평가할 때 활용하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다. 평균 수명, 사망률, 영아 사망률, 말라리아(대표적인 전염성 질환), 그리고 당뇨(대표적인 비전염성 질환)가 여기에 해당된다.

혁명 이전 1950년대 쿠바는 이 중 어떤 기준에 비춰 봐도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는 반세기 전에 막을 내렸지만, 쿠바인들의 목을 조이는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체 없는 위협, 그것은 바로 빈부격차였다. 주력 상품이 설탕뿐이었던 쿠바의 경제 구조는 선진국(미국)에 종속돼 있었고, 쿠바의 농촌은 대도시에 종속돼 있었다. 수도 아바나에는 미국 자본이 매혹적으로 찰랑거렸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자급자족은 물론이고 제 수명을 다하기도 어려웠다.

“치료가 가능한 말라리아, 기아, 결핵 등 전염성이고 풍토성에 해당하는 10여 개의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특히 농촌지역 아이들의 90%는 같은 이유로 매해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정이나, ‘쿠바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고찰 : 지역사회의학과 일차보건의료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2017 제 36권 2호>, 168쪽)

쿠바의 의료 조건이 얼마나 열악했었는지는 다음의 자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쿠바의 총 인구는 600만 명이었고 의사는 총 6,300명이었다. 그러나 의사 인구 중 3분의 2가 수도 아바나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지방에서는 1명의 의사가 2,000명에서 3,000명에 가까운 인구를 담당해야 했다. (당시 아바나의 인구는 총 인구의 6분의 1인 약 100만 명이었다.) 그러나 특혜 받는 지역인 아바나에서조차 병원의 주 대상자는 의료 혜택이 사적으로 보장된 고용주들이었다. 아바나 빈민들에게 의료란 시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의 떡이었다. (Jose Luis Di Fabio 외 네 명의 저자, ‘Cuban Medical Education: 1959 to 2017’, <SOAJ—Scientific Open Access Journals>, 2017)

만약 쿠바 의료가 별 다른 변화 없이 계속해서 이런 궤도를 탔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오늘날 아이티나 자메이카와 같은 카리브 해의 빈국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자유 국가’라는 선언은, 길거리에 만연한 가난과 불행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쓰레기 봉지와 다를 바 없이 텅 빈 말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1959년 일어난 쿠바 혁명은 이 모든 궤도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여러 사회 영역이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맞이했고, 의료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의료를 ‘만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천명하는 보건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혁명 영웅인 체 게바라가 의사 출신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 후 쿠바 의료는 후폭풍을 겪는다. 일 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되는 의사들이 혁명의 방향성에 동의하지 못하고 나라를 떠나버린 것이다. 전국을 통틀어 유일한 의대인 아바나 의과 대학에는 고작해야 23명의 교수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떠난 자들의 빈 구멍은 ‘새 사회’가 양성해낸 젊은 의사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이들은 졸업과 동시에 농촌이나 공장 같은 현장으로 투입됐다. 이런 질적·양적 팽창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와 의학계의 협력 덕분이었다. 정부의 보건 정책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의대의 커리큘럼 역시 변화하면서 그에 걸 맞는 ‘맞춤형 의사’를 양성해냈다.

이는 곧 ‘환자의 요구’가 의학의 마지막 고려사항이 아닌 최초의 출발점에 배치되었음을 뜻한다. 즉, 똑똑한 의사들에게 사람들을 도우라고 계몽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환자의 요구에 맞춰 훈련된 사람을 ‘의사’로 정의하겠다는 것이다.

꼰쑬또리오 진료실 내부 모습(제공=김해완)
꼰쑬또리오 진료실 내부 모습 (제공=김해완)
꼰쑬또리오에서 동네, 커뮤니티 환경 파악을 위해 만든 자료. 이런 자료가 꼰쑬또리오마다 벽에 붙어있다. (제공=김해완)
꼰술또리오에 진료받으러 온 아이들. 꼰술또리오 뒷뜰에서 놀고 있다. (제공=김해완)

쿠바 의료의 눈부신 성과는 오늘날 쿠바 국민들의 건강 수준으로 증명된다. 2017년 세계 은행 그룹(World Bank Group)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통계를 살펴보자. 쿠바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선진국들과 비슷한 80세다. 1990년대 쿠바는 소련 붕괴 이후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며 쉽지 않은 특별시기(Período Especial)를 통과했지만, 그 당시 74.6세였던 평균 수명은 그 후로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또, 쿠바의 영아사망률은 1,000명 당 4.5명이다. 이는 영아사망률이 1,000명 당 6명인 미국보다 더 낮은 수치이며, 쿠바와 경제력이 비슷한 저개발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빛나는 결과다. 앙골라의 영아사망률은 55명, 아이티는 54명, 필리핀은 2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오늘날 쿠바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살 만한’ 나라가 됐다. 자질구레한 문제가 끊이지 않을지언정, 목숨이 끊어질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됐다. 놀라운 것은 이런 성과가 쿠바의 GDP 수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가 부유할수록 국민 건강의 수준 또한 높아진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다. 그러나 쿠바는 이 통설을 정면에서 깨뜨린다. 쿠바는 자본과 자원의 규모가 아니라, 희소한 자원의 균형적인 분배와 사람들의 협력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해왔다. 인재(人材)로 인재(人災)를 막은 셈이다.

물론 통계가 건강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노후 대비 없이 수명만 늘어난다면 그만큼 불행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고, 유아 사망률을 낮추면서도 사회가 젊은이들을 출구 없이 가둔다면 그만큼 우울한 청춘이 늘어나는 것이다. 쿠바 청년들은 혁명의 혜택을 입고 건강하게 자라나지만 종국에는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조국을 떠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치상으로는 높은 수준의 국민 건강을 이룩했으나, 매년 수많은 청년들이 자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 ‘살 만한’ 나라인가? 이 순간 우리는 삶이란 ‘죽음을 미루는 상태’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라는 방식의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건강이란 ’심신(心身)이 건강한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이 질문을 적극적으로 던지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로,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고 여겨지는 수단에 방어적으로 집착한다. 이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전쟁 통에 겪었던 배고픔과 그 후의 극적인 경제 발전을 함께 기억한다. 이처럼 돈이 목숨의 기억과 연관되었으니, 한국 사회에서 돈은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된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1959년 혁명 체제는 수많은 쿠바 아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이를 목격한 쿠바의 구세대들로서는 혁명 체제가 바뀐다는 생각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듯 하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그러나 화석화된 관념으로는 공동체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 건강에 대한 인식은 건강한 몸과 닮아야 한다. 시대와 장소에 맞게 살아 움직여야 한다.

쿠바의 국민 건강은 말한다.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 없이도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고, 거꾸로 돈이 많아도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삶에 대한 탐구는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탐구의 토대를 깔아주는 것은 의학이지만, 답을 찾는 것은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모두 이 길에 올라선 탐구자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불평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건강한 삶을 탐색하라. 과거 노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을,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새로운 아이들에게 전해주려면 말이다.

삐냘데리오(Piñar de rio) 지방에 있는 재활센터 모습, 자연환경을 활용해 치료하는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이기다. (제공=김해완)
삐냘데리오(Piñar de rio) 지방에 있는 재활센터 모습, 자연환경을 활용해 치료하는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소이기다. (제공=김해완)

 

김해완 (아바나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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