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을 지키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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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을 지키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7.29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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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의련 치과부 학술‧운동교류집회에 다녀와서…
민의련 치과부 주최 제22회 치과학술·운동교류집회

사실 지난 6월 10일부터 한 달 간 건치 상근자 규약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다하기 위해 안식월을 쓰고 대탕진잼을 저지르기 위해 스페인 여행을 갔다, 7월 13일과 14일 거의 복귀와 동시에 일본 홋카이도로 취재를 떠났다.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치과부에서 주최하는 ‘제22회 치과학술‧운동교류집회’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시국에 해외출장 게다가 일본이라니! 하는 부담감과 비행기 너무 타는 거 아닌가 하는 피곤함이 겹쳤다.

그러나 건치 대표단의 눈에 띄는 구성으로 부담감과 피로감은 저 멀리 날아갔다. 대표단은 홍수연 공동대표를 필두로 정석순‧박인순 선생님, 게다가 기자까지, 모두 여성이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약간 즐겁기도 했다.

학술‧운동교류집회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건치가 오랫동안 민의련과 교류를 해 왔지만 주로 반핵과 평화운동에 대한 내용이 주류라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사실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 집회에서는 사업소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고 사업의 이모저모를 들을 수 있어 민의련이 추구하는 ‘차별없는 평등의료’가 조금은 실감이 났다.

민의련 치과부 학술‧운동교류집회는 4년에 한 번 개최되는데, 이번엔 민의련 소속 전국 35개 치과 사업소와 중앙집행부 등에서 총 201명이 참가했다. 전국에서 모이다 보니 대회 기간인 1박2일은 시간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참고로 민의련은 병원이나 진료소라는 말 대신 사업소라는 말을 쓰는데, 공통의 목표가 있고 그 사업을 현장에서 이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의련 치과부의 화두는 우리나라 커뮤니티케어에 해당하는 ‘지역포괄케어’였다. 우리보다 더 일찍 시작돼 정착이 됐을 법도 한데, 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실제 그려지는 모양새는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출산‧초고령화라는 사회문제의 큰 틀은 같았지만, 구석구석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달랐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팀의료’라는 민의련의 전제 안에서였다.

대회 내내 ‘지역포괄케어’라는 말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강연과 발표를 전부 들을 순 없었지만, 민의련 치과부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첫째 날 진행된 분과회는 ▲의과‧치과‧개호(요양)의 연대를 위한 노력 ①, ② ▲한 단계 더 높은 기술향상을 목표로 ▲의료 안전성과 의료질의 추구, 환자 서비스 향상 ▲사회보장성 향상 활동, 지역과 공동의 노력 ①, ②를 주제로 6개 분과회로 나뉘어 이뤄졌다.

건치 대표단은 ‘사회보장성 향상 활동, 지역, 공동의노력 ②’를 들었는데, 여기에선 민의련이 대표사업인 ‘무료저액진료’를 각 사업소가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개선방향은 무엇인지 공유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과사업소 인원인 치과의사,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사무 등 다양한 직종에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발표를 했는데, 그 직역이 할 수 있는 그 직역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또 제각각이라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각 직역이 ‘무료저액진료’의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아마 이 사업을 개인이 해나갈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참고로 무료저액진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정부가 사회복구를 위해 만든 것으로 빈곤계층의 경우 경제력에 따라 0~30%의 자기부담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쟁 직후엔 모르겠지만, 지금 가난한 사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위 대상자를 찾는 것부터가 한 직역만의 일은 아니다. 이 제도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우연히 다른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혹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설득돼서 온 환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가난 때문에 치아에 ‘혹독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찾고 치료하는 일은 민의련 치과부의 오랜 과제이기도 하다.

이어 ‘의과‧치과‧개호(요양)의 연대를 위한 노력 ①’을 주제로 한 1분과회의에서는 점막 브러시를 사용한 구강케어, 연하섭식 장애와 관련한 재택진료, 수면무호흡 등 일종의 케이스 발표가 이뤄졌다. 정석순 선생은 “실전 예방치의학을 배운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는데, 이번 대회가 단순 학술지식뿐 아니라 ‘지역포괄케어’를 민의련 치과가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민의련 치과부 치과학술운동교류회에 참가한 건치대표단 일동

민의련 치과부는 왕진‧방문치과진료는 사실 병원에 온 직후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입원 환자가 퇴원 할 때까지 그리고 퇴원 후 집에서 끊임없이 구강케어를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희망, 그리고 당사자의 자립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사자가 스스로 구강케어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를 돌볼 가족이나 요양사가 다음순위다. 민의련 치과의 고민은 당사자의 희망 사항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있다. 그래서 매뉴얼을 고민하고 환자와 그 가족과 충분한 상담을 꼭 거친다. 방문진료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둘째 날 ‘학습회’에서는 지역포괄케어에서 말하는 자립이란 개념을 ‘존엄’으로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건치 대표단이 참석한 ‘타 직종을 알자!’라는 강연에서는 질환자에 대한 전문적 영양관리를 하는 ‘관리영양사’가 나와 치과와의 연대에 대한 발표에서였다.

일반 병원, 요양병원에서 관리영양사는 보통 Speech-Language-Hearing Therapist 일명 ST, 언어청각사의 도움을 받아 당사자의 인생을 포괄한 주변 환경,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 식사를 구성하고, 영양지도를 한다.

이들은 조리 상태를 6개로 나눠 칼로리, 맛, 질감, 질환자의 연하‧저작기능 정도, 뱉는 힘 등을 고려해 식사를 만드는데, 표면적 목적은 오연성폐렴을 예방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궁극적 목적은 질환자가 어떤 상태이더라도 그들이 먹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것에 있었다.

사례로 나온 한 할머니의 경우 유부초밥을 유독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그의 상태는 유부초밥을 씹어 삼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관리영양사, 담당의, ST, 가족, 치과위생사, 케이스 워커, 그리고 그 가족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그 분이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냈다. 그 분이 돌아가신 후 유족들로부터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드셔서 행복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발표자는 ST나 관리영양사는 일견 치과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가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그 때 치과의사나 치과위생사가 결합하면, 구강 내 구성요소 치아와 혀, 입안의 근육 등에 관한 기본적 이해를 짚어주고, 문제가 있는 부분의 진료가 이뤄지면 ‘납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구현하는 데 훨씬 가까워진다고 전했다.

생의 첫 맛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자신으로 존재하고 죽기위해 필요한 것을 최대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지역포괄케어란 생각이 들었다.

‘납득할 수 있는’ 임종을 맞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할 때, 기념강연에서 호리케 세이지 선생이 “Social Vital Sign(SVS)을 읽고, 중심에 환자도 의사도 ‘건강권’을 놓고 지역포괄케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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