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과거와 마주해야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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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과거와 마주해야 시작됩니다"
  • 이흥수
  • 승인 2019.04.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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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치를 말한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북지부 이흥수 회원
이흥수 회원

나이 서른을 이립(而立)이라고 부른다지요?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가 서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이립이 됐습니다. 건치가 시작된 1989년은 제가 대학원 석사학위 과정 중인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건치를 시작한 시기가 학문적 기초를 닦기 초입인 연령대이었다면, 이제 건치가 다시 기초를 세우는 시기가 돼, 건치의 미래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입니다.
 
30년을 더 살아 그 때의 건치를 볼 수 있을까요? 그 때 보고 싶은 건치는 어떤 것일까요? 사실, 전망은 예측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미래입니다. 건치의 미래와 전망은 그래서 결국 제가 보고 싶은 미래의 건치일 것입니다.       

모든 사건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미래의 건치는 그런 점에서 과거의 연장일 수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음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그러한 선택을, 그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냐에 모아집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도 다시 건치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행동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30년이라는 이라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건치의 행동을 관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면 그건 우리 조직의 이름처럼 건강한 사회를 위한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감히 단언합니다.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건치를 탄생시켰습니다. 사회 민주화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화라는 걸맞은 이름으로 우리 사회가 변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 건치는 다시 민주화를 다지는 대장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민주화는 우리가 사는 터전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병든 사회가 사회적으로 건강한 개인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구강건강’이라는 화두를 지니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전문가입니다. 구강건강증진이 우리의 목표이고, 그러한 구강건강증진이 건강한 사회에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미래의 모습은 자명합니다. ‘건강한 치아’, ‘밝은 미소’가 건강한 사회 속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여기저기서 땀을 흘리고 있는 광경이 미래에 펼쳐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구강건강증진을 위한 정책 전문가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정책을 현실에서 적용하고 확산하며 실천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건강을 재정의하고 확장시키는 지혜는 전문가의 몫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열망이 그러한 일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모습도 우리 건치가 꿈꾸었던 세상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누구와 더불어 살자는 것일까요? 어차피 사회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저소득자,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혐오와 냉대를 받는 사람들과 우리는 같이 살기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보듬고 같이 아파하고 그들도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외쳤던 것입니다.                            
현재는 미래를 만듭니다. 우리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구강건강불평등 역시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지역이 계층이 사회적 조건이 구강건강수준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치아우식경험이 높은 나라입니다. 감소추세에 있던 우식은 더 이상 줄지 않으면서 정체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건치가 줄기차게 노력해왔던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하 수불사업)은 이제 망했다고 할 지경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수불사업이 대표적인 건강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사업임에도, 불평등을 해소하는 다른 별다른 방법을 만들어 내지 못했음에도 수불사업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늘 볼 수 있는 사람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 못합니다. 구강건강정책연구회가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 건강형평성확보를 위한 불소시민연대가 마치 건치와는 다른 식구처럼 개별화되고 고립돼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전문성 증진이라는 명제로 출발한 특화된 조직들이 커다란 ‘건치공동체’로서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건치’를 약화시키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우리는 젊은 신입회원이 적어지는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충원을 위한 노력은 늘 더디었습니다. 과거로부터 단절됐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새로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답이 있었음에도,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문제의식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었음도 불구하고 과거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방법론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시작된 ‘참치학교’와 ‘꿀잠진료소’에서 우리는 새로움을 봅니다. 그러나 그 새로움 속에서도 문제의식은 과거와 동일하다는 점을 저는 여러 번 느낍니다. ‘건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삶’ 그리고 ‘구강건강증진’이라는 화두가 여전히 우리의 문제이며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말입니다. 
 
건치의 미래는 우리의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건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삶’ 그리고 ‘구강건강증진’이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 담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찰입니다. 방법의 모색은 성찰 다음의 일입니다. ‘새로운 것도 싸우면서 낡아갑니다’ 싸움을 하면서 낡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의자’의 주인이 바뀔 수 있습니다. 건치의 새로운 주인을 위해 저는 화두와 함께 싸우면서 낡아 가겠습니다. 이제야 이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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