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연 알게 해준 원장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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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연 알게 해준 원장님께 감사를!
  • 유승현
  • 승인 2019.04.25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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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와 함께한 사람들] 21세기좋은치과 유승현 치과위생사…울산건치 배석기 회원 이야기
평연 진료 중인 배석기 원장

벌써 2019년 4월. 세월이 정말 빠른 것 같다. 내게 30대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벌써 내년이면 마흔이란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24살이라는 어린나이에 ‘21세기좋은치과’에 들어와 좋은 원장님들과 같이 한지가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배석기 원장님을 통해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하 평연)를 알게 되었고 첫 진료단을 간 게 아마 2009년쯤이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 일인데,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며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가슴 벅찬 이유는 뭘까? 

평연을 알기 전에는 베트남전쟁의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순히 의료봉사활동이라는 첫 경험으로 치과동료 한명과 봉사활동 준비를 했고, 원장님의 추천으로 책 한 권을 읽고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조금 느끼고 베트남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도 좋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뒤로 매년 4차례를 간 것 같다. 그 후론 결혼을 하고 여건이 되지 않아 가지 못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그 좋은사람들과 함께 진심으로 또 경건한 마음으로 학살 피해자들을 만나 뵙고 사죄드리고 그때와 또 다른 성숙한 마음으로 진료에 임해보고 싶다. 

베트남 진료가 끝나고 레크레이션 시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연의 진료단에 오면 뭐라 말 할 수 없는 뿌듯함과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돌아가는 시간이 된다고. 그때 어떤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유승현 선생님의 말이 딱 맞다고.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꾸밈도 없고 시기도 없고 진실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베트남 아이들은 너무도 순수한 아이들이다. 지금도 그 눈빛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신짜오~”를 외치던 우리들, 아프지만 내색하지 않고 꾹꾹 참으면서 치료받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었던 해맑은 통역단 친구들. 

첫 진료단 때 있었던 일이다. 진료를 받으러 들어온 한 남자아이의 다리로 시선이 쏠렸다. 그 아이는 어디서 다쳤는지 굉장히 큰 상처가 나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살은 너무 많이 벌어진 상태로 아물고 있는 상태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역시나 내 눈에만 보였던 게 아니었다. 그 아이의 상처를 보고 많은 선생님들이 마음 아파했다.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서 선생님들끼리 의논 후 상처를 봉합하기로 결정했다. 피부위에 치과용 인젝 시린지로 마취를 하고 약간 절개 한 다음 꼼꼼히 봉합해주셨다. 물론 마취는 하였지만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아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았다. 이 또한 한국 아이들에게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아이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느끼는 것이다.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하고 자신을 위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 광경을 기억하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하지 않았는데도 매우 뿌듯했다. 그 선생님들이야 말로 위대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진료단에서 어시스트를 하다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원장님들이든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에게 더 많이, 더 잘해주고 싶어서 안타까워하고 최선을 다 한다. 우리가 있는 일정 동안 모든 아이들에게 치료를 완벽하게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모자르는만큼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하는 원장님들의 마음이 보인다. 진료단 일정 내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평화로운 상태였다. 일정이 마무리 돼 가는 시점이 되면 너무도 아쉬워하며 말이다. 

난 한국에서도 우리 병원 원장님들처럼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좋은 원장님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한없이 어리기만 하던 나이에 ‘21세기좋은치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던 때 원장님은 전 직원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보험 틀니 제도도 없었을 때라 정말 생활이 힘들어도 틀니조차 하지 못해서 식사조차 너무 힘들어 보이고, 식사를 못하는 환자들이 많이 보였다. 그때 하시는 말씀이 주위에 정말 어렵고 힘들어서 틀니조차 하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있으면 말하라고, 내가 도와주겠노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런 천사 같은 원장님이 있으실까?” 생각했다. 

실제로 원장님은 경제적으로 힘든 외국인 노동자들의 진료비를 많이 차감해주거나 안 받는 경우가 많다. 예전 일반으로 발치를 해야 하는 중국인 노동자가 있었는데 원장님은 진료비를 받지 않으셨고 S/O하는 날, 그 중국인은 박카스 한통을 사들고 진료실에서 잘 하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어렵게 하면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시더라. 그 광경을 보는데 얼마나 가슴 뭉클하고 눈물이 나던지. 15년이 지난 지금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잉진료가 없는 병원,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원장님. 그게 너무도 느껴지고 보인다. 항상 어려운 사람이 오면 애쓰시며 더 도와주려는 원장님. 그런 원장님 밑에서 보람차게 일할 수 있음에 뿌듯하고 감사하다. 

한 번씩 평연 소식을 보러 SNS에 들어갈 때면 이런 같은 마음이 들곤 한다. 학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이라도 사죄를 고하는 사람들, 매년 평연 진료로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 우리 원장님, 15년이란 세월 속에 많이 늙으셨지만 마음만은 그대로, 아니 더 푸근해지고 좋다.(웃음) 내 치과 임기가 다하는 날까지 배석기 원장님과 보람찬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고 싶다. 다시금 평연에서 좋은사람들을 알게 해준 원장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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