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돌림자가 같네요…좋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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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돌림자가 같네요…좋은 일이죠”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4.25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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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건치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리병도 전 회장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건약 리병도 전 회장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건치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건치의 오랜 연대단체이자 같은 돌림자(?)를 쓰는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 리병도 전 회장을 만나 같은 지향을 가진 보건의료인으로서 본 건치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다 돌림자(?)를 쓰게 됐는지 묻자, 리병도 전 회장은,

“건약 초대 회장인 임종철 선생님에게 들으니, 건약도 6월 항쟁 이후 각지에 생겨난 약사회를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건약에서 건강사회 건설을 할지, 구현을 할지 논의하다가 ‘건강사회를 위한’으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건약 모토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약사, 건강한 민중’인데, 작명 당시에 운동권스럽지 않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이용석 선생님이 우겨서(?) 건약이 됐다고 한다.

다만, 1989년 건치가 건약보다 몇 달 빨리 통합해서 그 이름을 먼저 쓰게 됐다. 당시 청년치과의사회 회장이었던 故송학선 선생님이 ‘먼저 써서 미안합니다’라고 하자, 임종철 선생님도 ‘돌림자가 같으니 좋네요’라고 답하는 등 아무튼 훈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건치‧건약 커플도 많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익산에 있다고 들었다”

1989년 졸업과 동시에 건약에 가입했다는 리 전 회장은, 약대생 시절인 1987년 건약 자체에서 발행하던 신문을 보면서 “졸업하면 건약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빈민운동가인 제정구 선생의 강연을 듣고 도시빈민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졸업 후 이를 실천하기 위해 건약에서 도시빈민분과 활동을 하면서 성남으로 건너가 지역에서 빈민운동을 전개했다.

“바닥이 참 좁아서…” 당시 성남에서는 의료운동과 민중운동을 결합한 건치의 지역의원인 ‘푸른치과’가 한창이었다. 리 전 회장은 그 때 푸른치과 원장이었던 고순언 선생과 인연을 맺고 함께 지역‧빈민운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리 전 회장은 “그 때 같이 활동했던 하성주‧김봉주 약사님은 성남에 터를 잡고 지역화폐나 성남 생협을 만드는 등 지역활동을 지속했고, 최근까지 건치 김용진 선생님과 성남시의료원 설립을 위한 연대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건치와 건약의 끈끈한 인연(!)을 강조했다.

“역시 건치하면 수불사업이죠” 1996년 8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서울경인불소화추진본부 공동대표를 맡은 리병도 전 회장은 건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이하 청합) 등과 연대해, 수불사업 확대에 나섰던 일을 꼽았다.

“지금은 중앙과 통합해 없어진 건약 서울지부 회장을 할 때라, 서경불소화추진본부 대표를 자연히 맡게 됐다. 교대 전철 안에서 수불사업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게 기억에 남는다. 건치의 많은 선생님들이 수불사업을 위해 열심히 뛰던 모습도 생각난다.

또 2004년, 2005년 무렵 한미 FTA나, 의료영리화에 대한 이야기가 막 시작될 때라 인천건치에 강연하러 간 적도 있었다. 당시엔 보건연합에서도 FTA나 영리화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서 연합차원에서 각 연대단체 지부를 돌면서 강의하고, 토론도 했었다”

이름부터 닮은꼴 건치…미래 30년도 함께 고민하자

건치하면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며 코러스를 넣던 ‘미미시스터즈’가 생각난다는 리 전 회장은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그룹을 좋아한 몇몇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며 “인의협과 대비돼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건치 선생님들은 선비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다른 말로 하면 가열차지는 않지만 유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건약이나 인의협, 청한이 의협과 같은 직능단체와 척을 지다시피 거리를 두는 반면, 건치는 치과의사협회와도 잘 지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때문에 대중사업도 다른 단체보다 잘 해낸 것 같단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또 리병도 전 회장은 30년을 국민 건강권 향상을 위해 함께 걸어온 건치에게 2:8 법칙을 기억하면서, 또 깊은 연대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건치나 건약은 이름도 비슷하고, 걸어온 길도 많이 닮았다. 현장에서 환자를 대면하고, 다들 개업하고 있어 집회나 모임에 늦게 나가거나 못나가기도 하는. 마음으로는 성원하지만 활동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건약 등록회원은 1천여 명 이지만 활동하는 사람은 400명 남짓이다. 약사와 치과의사 비율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항상 보면 얼굴을 비추고 활동하는 사람은 20%고, 마음만 함께하는 분들은 80%다. 전에는 왜 20%만 활동할까,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는데 말없이 꾸준히 지지해주는 80%의 회원들 덕분에 우리의 활동이 부침 속에서도 유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비를 내고, 기꺼이 서명을 해주는 조력자들의 든든함이랄까?

아무튼, 30주년이면 성년이고 한 세대를 건너다보니 개인사로 인해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건약에도 많다. 다시 돌아오려해도 적절한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지난 3월 9일에 건약만 따로 제주도청 앞에서 영리병원 반대 투쟁을 했는데, 건약 원로 회원들부터 반가운 얼굴들이 꽤나 많이 오셨다. 이 사람들이 모일 계기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뭘 할 것인가 인데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고민하며 길을 개척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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