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지역 내 곤란한 이들과 함께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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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지역 내 곤란한 이들과 함께일 것”
  • 박인필
  • 승인 2018.09.21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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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치과 박인필 원장…민의련 소속 오사카 요도카와근로자후생협회 방문기

"우리는 이런 시대에서도 끝까지 가장 곤란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 위해 지역 안에 존재하며, 그런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는 빛을 가진 요도쿄가 되고 싶습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요도카와근로자후생협회(淀川勤労者厚生協会 이하 요도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사장의 인사말입니다. 종합병원을 비롯한 7개의 의료시설, 12개의 개호(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요도쿄, 복지재벌 같아 보이는 요도쿄가 '끝까지', '가장 곤란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겠다고 합니다. 낯설지만 설레고 곱씹을수록 뭉클한 선언입니다. 이곳의 '빛'은 어떤 것일까요?

지난 8월 15일~16일 양일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료사협)의 임직원 15명은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소속의 요도쿄를 견학하여 앞서가는 고령자 의료와 돌봄에 대해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개호노인보건시설인 ‘요도노사토’,  거점 병원인 ‘니시요도 병원, 고령자용 주택 ’플라워 히메지마‘,  여러 가지를 함께 운영하는 재택종합센터 ’라쿠라쿠‘, 인지증(치매) 데이서비스 ’안쥬‘ , 패밀리 클리닉 ’나고미‘ 를 견학했고 매 견학마다 간담회를 통해 시설의 임직원 그리고 자원활동가들과 질문을 주고받았습니다.

병상에 있지만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간호시설에서는 대부분의 환자가 자신의 일상복을 입고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들은 병실에 외롭게 있지 않고, 거실 혹은 식당의 역할을 하는 큰 홀에 나와 레크레이션을 하거나, TV 를 보고 있었습니다. 식사도 자신의 병실에서 받기 보다는 거실에서 함께 먹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재활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복을 갈아입을 수 있어야 하고 소통 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의미겠지요.

레크레이션 진행은 상당부분 자원 활동가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1인실도 있고, 4인실도 있지만 비용에 차이는 없었습니다. 1인실을 써야할 질환을 가진 사람이 1인실을 쓰는 방식이지요. 요도쿄가 지향하는 '차별 없는 평등의료'의 일환이었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인지증 할머니의 병상에는 생일날 이 곳에서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인지증 환자에게 알콜은 안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맥주를 좋아하는 저 역시 '나답게 병과 함께 지내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크레이션 중인 요도노사토 병동의 거실 (제공 = 박인필)

‘요도노사토’라는 이 시설에는 정기적으로 10인~15인의 자원 활동가가 고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차 마시는 공간을 관리하고 정원을 가꾸고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는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개호보험 내에서 본인부담금을 줄이면서도 질 높은 돌봄을 제공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텐데, 자원 활동을 통해 빈 곳을 메꾸고 있는 것이지요. 

재택종합센터 ‘라쿠라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층에는 경증 노인들을 낮 동안 돌보는 데이케어센터, 2층은 간호 소규모 다기능형 재택개호 시설, 3층은 방문간호 방문개호 재택지원을 위한 센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상담하는 케어매니저 센터가 있는 그야말로 다기능 복합 센터였습니다.

데이케어 센터의 휠체어 채 들어가는 욕조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2층에는 가족들이 잠깐 돌봄을 못할 때 단기간 입소하거나 중증이지만 집을 오가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베드 채 집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병상에 있지만, 저녁이 되면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또 오는 겁니다! 집에서 돌봄을 받고 싶은 사람은 헬퍼를 통해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도 있고, 방문 간호 방문 진료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가끔 90세쯤 되어있을 어머니를 돌보게 될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기도 하고 완전히 돌보기는 힘들 그때,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복합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는 꿈을 꾸어봤습니다.

데이케어 센터의 목욕시설, 앉아서도 누워서도 목욕할 수 있다. 오른쪽은 휠체어채 들어가는 욕탕 (제공 = 박인필)

‘요도노사토’, ‘라쿠라쿠’ 모두 벽에 오늘의 식단에 대한 소개 그리고 이달의 특별 송이버섯 요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인지증 데이서비스 ‘안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요양 시설에 계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족과의 만남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더 큰 즐거움으로 조사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안쥬’에서는 인지증 노인들이 스스로 식단에 대한 의견을 내고, 함께 결정하고, 요리와 뒷정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배제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상을 반복하는 것의 소중함이 느껴졌습니다.

지역주민들과 가족들에게 배포되는 ‘안쥬’의 소식지에는 어르신들의 나들이 이야기, 일상이야기, 지역의 이야기들이 사진과 함께 정답게 담겨 있었습니다. 혐오시설이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주민들이 아끼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집’을 컨셉으로 한 인지증 데이서비스 ‘안쥬’ (제공 = 박인필)

‘라쿠라쿠’와 ‘안쥬’ 여기저기에서도 자원 활동가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헌신적인 자원 활동가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알고 보니 요도쿄에는 친우회(토모노카이, 友の会) 라고 불리우는 22,000여 가구에 달하는 지역주민의 모임이 있습니다. 민의련 소속의 의료, 개호 기관들이 대부분 그러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병원을 시작할 수 있도록 소구좌 출자와 같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지역 내에서 병원의 존재를 알리며 운영의 과정을 지켜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이사회에 참여하여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병원과 시설의 행사에서 자원봉사자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의료협동조합의 조합원들과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친우회가 되면 대체 어떤 해택이 있나요?" 라고 물으니,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마을이 건강해지는 것이 혜택" 이라고 말씀하시는 부이사장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의료사협 조합원이 되면 어떤 해택이 있나요?" 라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대답과 내용은 같았으나, 에너지가 달랐습니다. 70년간 지역주민의 손과 마음을 모아 역사를 이어온 힘이겠지요.

궁금한 것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던 간담회, “24시간 대기하며 방문간호 하는 일은 힘들지 않나요?” 질문중 (제공 = 박인필)

일본 민의련의 힘은 이렇게 밑으로 부터의 당사자 운동이라는데 있습니다. 패전이후 국민들의 절박한 의료 욕구로 진료소 설립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이에 부응한 의료계의 참여와 지역 주민들의 출자로 민주 진료소가 전국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민의련이 결성되는 토대가 되었으며, 주민의 요구와 참여에 의한 발생과 성장의 이 과정이 민의련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주민의 참여와 욕구에 기반 했기에, 왕진수가가 없을 때부터 20여 년간 방문간호와 방문진료를 해올 수 있었고, 왕진이 국가정책에 반영되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될 때까지 계속 하면 언젠가는 된다‘ 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당사자의 참여가 있으니 ‘내가 받고 싶은 돌봄’ 에 대한 고민도 더 치열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역주민들의 손길이 닿아 따뜻하고 생기 있는 의료기관, 개호시설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요도쿄의 ‘지역 안에 존재하겠다’ 는 선언이 이해가 됩니다. 지역 안에 존재하고,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협동이 있을 때 돌봄은 진짜 나의 일,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내 가족이 받고 싶은 돌봄을 생각하며 돌봄의 체계를 함께 꾸려가고 기여할 수 있으니까요. 요도쿄의 '빛'은 대를 이어 건강한 나, 건강한 마을을 꿈꾸며 70년간 헌신해온 '사람'들인것 같습니다. 직원으로 이용자로 자원 활동가로 지역주민으로 여러 가지 역할로 지역의 소중한 공간을 함께 만들어 온 '사람'들 말입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에서 아직은 실체가 없는 '커뮤니티케어' 계획을 발표하고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지역 내에서 돌봄의 자원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을 합쳐, 지역을 기반으로 돌봄이 순환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발성과 힘을 믿으며 함께 걸어야 진짜 커뮤니티 케어, 연결과 그로 인한 시너지가 가능할 것으로 믿습니다.

*본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인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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