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비핵화 향한 역사의 한복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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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비핵화 향한 역사의 한복판서…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8.08.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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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 2018년 히로시마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18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회장 후지스에 마모루 이하 민의련)의 초청으로 한국 보건의료단체 대표단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2018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를 위해 히로시마에 방문했다.

대표단에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공동대표 김기현 홍수연 이하 건치) 청년학생위원회 ‘파란’ 정석순 위원장을 비롯해 채민석 사무국장, 심영주·허원범·김창우·정상 위원, 건치 이효직 사무차장, 파란에서 모집한 원광대학교 치과대학 고정민·김나영·김민진·김채은·조혜진·차수정·전진 학생,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이보라 사무처장, 이미옥 팀장, 장영우 의료사업단장, 임성미·김현숙 회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송해진 사무국장 등 20명이 참가했다.

특히 이번 건치 대표단은 3년차 이하 개원의로 구성된 민의련 청년치과의사회 회원들과 한·일양국의 치과의료 현황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 대표단은 ▲2018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 개·폐회식 ▲민의련 치과부와의 교류회 ▲민의련 소속 후쿠시마 생협 병원 및 치과진료소 견학 ▲피폭자 간담회 ▲민의련 청년치과의사회와 그룹워크 ▲‘피폭의료와 방사선 영향’ 강연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 개별세션 ‘비핵평화와 한반도와 아시아 - 일본의 역할’ 청강 ▲평화자료관 견학 ▲미야지마 견학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18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

세계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한 걸음을 위해

첫째날인 지난 4일 첫 일정은 2018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개회 총회 참석이었다. 이날 히로시마의 기온은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는 시원하다는 37도였다. 하지만 대표단이 분주히 대회 참가 준비를 하던 7월 초 히로시마를 포함한 서일본 지역을 휩쓴 호우재해로 인해, 평소보다 더욱 엄숙한 분위기였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주최자 보고에서는 4·27일 남북 정상회담 및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울려 퍼졌고, 이어 6·12 북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비핵을 향한 역사적 흐름이 생긴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어 지난 2017년 7월 7일 국제연합 UN에서 채택된 ‘핵무기금지조약’ 비준을 미루는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최자 보고에서는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향한 역사적 흐름이 생겼고, 이 일련이 흐름의 배경에는 많은 나라의 반핵평화를 위한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일본 정부는 피폭국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오키나와와 연대해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철폐를 요구할 것이며, 전쟁과 전력 포기를 담은 일본 헌법 9조를 지킬 것”이라며 “젊은 세대와 함게 핵무기의 실상과 긴급성을 고발하고, 전 세계 시민사회, 정부와 연대해 핵무기를 고집하는 세력들에 저항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날 개회 총최에서는 UN 핵무기금지조약 체결을 이끌어낸 반핵운동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핵무기폐지국제운동(ICAN)’이 지난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과, 그 배경에 피폭자(HIBAKUSHA)의 증언이 세계를 움직였다는 데 공감했다.

아일랜드 외무역성 군축불확산국 Jamie Walsh 부국장은 연대발언에 나서 “ICAN 베아트리스 사무총장이 노벨상 수상식에서 나쁜 무기를 다루는 올바른 손은 없다는 말에 지지를 보낸다”며 “우리는 군축을 위해 다이나믹한 시도, 지속가능한 개발, 인권보호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핵우산이라는 체념의 구름아래 산다. 이런 체념의 분위가 핵군축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대회를 통해 세계는 핵무기 폐절의 편이며, 체념의 구름을 멀리 쫓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18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에 참석한 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

이날 대회 참가자 발언에서 눈길을 끈 건 이바라기현 생협병원 노동조합 대표단이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는 간호사의 과잉노동, 잦은 이직, 괴롭힘 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병원운영은 진료보수(수가)에 좌우되기 때문에 의료현장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아베 정권하에 늘어난 군사비용은 사회복지비용의 감축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의료법 개악, 환자의 건강의 배제, 의료현장 노동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건강한 마을을 만드는 매일의 운동이 쌓여 평화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의료노동연맹의 ‘백의를 다시 전쟁의 피로 더럽히지 않겠다’는 슬로건을 지켜나가기 위해, 원전제로를 위한 노력에도 함께 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개별 세션에서 발언하는 인의협 이보라 사무처장(제공 = 나가세 후미오)

한편, 대표단은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총회 개별세션 ‘비핵평화와 한반도와 아시아 - 일본의 역할’에 참가했다. 인의협 이보라 사무처장은 연대 발언에 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이해 관계 때문에 한국이 분단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일본제국에 협력한 세력이 친미세력으로, 기득권층이 돼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로 인해 일본 식민지배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 북일‧북미관계 정상화, 통일 과정에서 일본은 다시 사과와 반성을 해야만,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참석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피폭자를 넘어 약자에 밀착하는 의료

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과 민의련 청년치과의사회

이어 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은 둘째날인 지난 5일에는 히로시마 중앙보건생활협동조합 후쿠시마생협병원(이하 후쿠시마생협 병원) 건강프라자에서 피폭생존자 오가타 스미코(86세) 씨의 증언과 그의 주치의인 히로시마 민의련 후지와라 히데후미 부회장의 ‘피폭의료와 방사선 영향’ 강연을 들었다.

오가타 스미코 씨는 지난 2016년에도 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을 만나 피폭 체험을 들려준 바 있다. 그는 여전히 핵무기 폐절을 위한 국제 서명 활동에 앞장 서고 있다.

인의협 이미옥 팀장은 “지난번에 뵙고나서 그와 관련된 책인, 오에 겐자부로의 히로시마 노트를 읽었다. 거기엔 피폭자들이 겪는 증상, 치료 등을 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며 “다시 한 번 오가타 씨의 증언을 들으면서, 알지만 일상에서 쉽게 평화를 잊어버리는 거 같아서, 이 증언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증언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날 텐데 이를 무릅쓰고 용기를 내 준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채민석 사무국장도 “기억하기 싫은 고통을 말씀해 줘 감사하다”며 “피폭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때마다 히다 슌타로 선생이 ‘다만 곁에 있어주는 것 뿐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환자와 주치의로서 두 분의 모습을 보며 그 말이 더 와닿았고, 이것이 좋은 의료인이 되는 첫 걸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후지와라 히데후미 부회장, 오가타 스미코 씨

참고로, 후지와라 부회장은 원폭 투하 11년 뒤에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재 후쿠시마생협 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후쿠시마 생협병원은  오가타 씨를 비롯해 그에게 진료 받는 환자의 3분의 1은 피폭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강연에서 피폭 이후 70년 이상을 살아나가고 있는 생존자들의 실상을 소개했다. 그는 피폭자들의 심신의 문제 뿐 아니라, 핵폭탄으로 인한 지역공동체와 사회시스템의 파괴, 교육기회 박탈, 사회적 배제와 차별로 인한 ‘빈곤’문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후지와라 부회장은 “피폭자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2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전쟁 트라우마와 차별의 기억으로 증인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이는 핵무기 사용을 감추기 위한 미국의 일본 정부와 언론을 통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1954년 비키니섬 수소폭탄 실험이 알려지고, 이어 민의련 의사들이 자료를 모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1975년에야 겨우 피폭자를 인정한다는 ‘피폭자 수첩’을 일본 정부가 발행한 것이다. 정치와 정권을 바꾸는 건 시민과 여론이 어떤 힘을 갖느냐에 달렸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핵무기는, 지금까지 없던,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특수한 폭탄이며 인류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비인도적 무기”라며 “이런 일은 또다시 어딘가에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 폐절을 위한 국제적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강연 말미에 “피폭자 진료, 피폭자만 무슨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라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사람, 약자에 밀착하는 것에서부터 의료의 참모습이 시작된다”고 밝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다만 곁에 있는 것 뿐이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한국 보건의료인 대표단은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평화기념식에 참가하는 대신,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에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어 피폭자 진료와 반핵운동에 평생을 몸담아 온 의사 히다 슌타로 선생의 기림비를 찾았다. 히다 슌타로 선생의 기림비는 폭심지로부터 800m 떨어진 히로시마 제2육군병원 터에 위치해 있다. 제2육군병원은 원래 직원 330명, 환자 750명이 수용된 병원이었지만 원폭 투하 직후 살아남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히다 슌타로 선생의 기림비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당시 히다 선생은 폭심지로부터 300m 떨어진 제1 육군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으나, 원폭투하 전날 후카카무라라는 옆 마을로 왕진을 나가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히다 선생을 비롯해 살아남은 의료인들은 거의 파괴된 제2육군병원에 천막을 치고 수만명의 부상자들을 돌봤다.

히다 선생은 지난해 3월 20일, 100세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약 6천여 명의 피폭자를 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의련은 지난 2017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서 히다 선생의 유산을 받들어 피폭자 의료와 핵무기 폐절을 위한 구체적인 역할을 강조키도 했다.

한국인 위령비에서 묵념하는 대표단
한국인 위령비에서 묵념하는 대표단
평화공원 내, 원폭 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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