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스물 다섯 번째 회에서는 엘 칼라파테 근처 국립공원에 위치한, 이 세상 풍경이 아니라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에 다녀온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12월 2일- 모레노 빙하
한 호텔에서 이틀을 자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세탁할 시간이 없을 것 같기에, 조식 후 조금 남은 시간에 양말과 속옷을 빨아서 널어놓았다. 장기간 여행을 하려면 빨랫줄이 요긴하다는 한비야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로 빨랫줄이 필요할 것 같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서 7시에 조식하러 내려갔다. 오늘도 간단히 먹었다. 이제는 조식으로 식빵 위에 올린 햄, 치즈는 넘어가질 않는다. 달달한 잼만 식빵에 조금 바르고, 토마토에 설탕 뿌려서 먹었더니, 먹을만했다. 얼른 빨래를 한 후에, 8시에 맞춰서 로비에 모였다. 오늘 갈 곳은 그 유명한 페리토 모레노 빙하였다.
최 과장이 어제 이후 무릎이 안 좋아서 오늘은 못 따라가겠다고 했다. 오늘은 어차피 지역 여행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가는 여행이고, 호텔로 되돌아오는 여행이니 빠져도 된다고 하면서, 2000페소를 나에게 주었다. 입장료를 100페소씩 내고, 나머지는 예비비로 가지고 있으라고 하면서 주었는데, 이게 은근히 신경 쓰였다.
버스가 와서, 우리 6명만 올라타고, 다른 호텔에 들러 다른 여행객들을 가득 태운 후, 모레노 빙하 공원으로 갔다. 빙하 국립공원 입구에서 하늘에 독수리 떼가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런 빙하 근처에 무슨 먹을 것이 있나 싶었다. 입구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가 오더니, 입장료를 내라고 했는데, 1인당 500페소라고 하였다. 1000페소가 모자랐다. 달러로 계산이 되는지 물어보았더니, 안된다고 하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현지 가이드는 버스에서 나갔다가 들어오고 하면서 시간이 또 지체되고, 그러면서 다른 승객들에게 점점 더 미안해졌다. 다행스럽게도, 조 선생님께서 그 옆자리 유럽 남자에게 60달러를 주고 1000페소로 바꿔 달라고 부탁하여, 해결 할 수 있었다. 보통 1달러에 17페소 교환 비율이니, 큰 손해 없는 교환이었다.

공원으로 들어간 버스는 곧장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게 되었다. 저 멀리 빙하가 보였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배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빙하의 왼쪽으로 가서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그곳에서 스페인어 팀과 영어 팀으로 둘로 나눈 후 설명을 따로 들으면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선착장 근처의 오두막에 각자 짐들을 보관해 놓으라고 했는데,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니, 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호숫가를 따라 걸어가서 빙하 옆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신발 위에 아이젠을 일일이 달아주었다. 빙하 위 트레킹을 하면서 주의사항, 아이젠 끼고 걷는 방법 등을 설명해 주었는데, 몸짓으로 다 보여주면서 말을 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쉬웠다. 빙하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는 것, 그 작은 움직임으로 인하여, 큰 U자형 계곡이 생기는 것을 생각하니, 자연과 세월의 힘이 역시나 어마어마하다.






빙하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그 안에는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얼음 덩어리 안에 있는 작은 틈 정도로 보이는데, 안에서 보니, 그것은 또 하나의 산이었고, 봉우리였고, 계곡이었고, 산맥이었다. 크레바스도 구경하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사진을 계속 찍게 되었는데, 한 시간 반이 힘들지 않게 금방 지나갔다. 빙하 위를 걸어 다녀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춥고, 힘들 것이라 했었는데,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어서 그런지, 따뜻한 기분이 들 정도였기에, 두꺼운 잠바와 모자, 방풍 하의까지 준비해 갔었는데,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챙이 넓은 모자, 선크림, 선글라스, 장갑이 필수품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빙하를 깨서 위스키 한 잔씩 주었는데, 얼음이 좋아서 그런 건지, 정말로 시원하고 깨끗한 맛이 좋았다. 안 마시는 사람이 있어서 남은 술을 더 따라 마셨다. 그 전에 흐르는 빙하 녹은 물을 맛보았는데, 이것 또한 맛이 기가 막혔다.




































1시 반에 빙하의 산에서 내려와서 아이젠을 반납하고, 오두막으로 와서 아침에 받아왔던,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빙하의 절벽을 바라보면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면서 나무 숲속에서 도시락을 먹는 느낌이 너무나 평안하고 좋았다.

3시에 배가 다시 와서 타고 나가서 버스로 갈아탔다. 잠시 후 빙하 건너편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고, 약간의 설명을 들은 후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제일 앞에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빙하를 구경하였다. 높이 50m의 얼음 절벽, 좌우 폭이 4km인 얼음덩어리가 수십km를 흘러 내려오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로 대단한 장관이었다. 인간의 왜소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고, 수백 년 동안 내려오고 있는 빙하 앞에서 인생의 찰나도 느끼게 해주었다. 광각카메라로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빙하였고, 핸드폰의 파노라마 촬영으로 해야 멋있는 전체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사진과 실물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북반구에 있는 캐나다, 북유럽, 히말라야의 빙하는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곳의 빙하들은 아직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빙하가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와서, 지금은 전망대 쪽 땅에까지 닿아있는 상태인데, 겨울철에 빙하가 더 커져서 내려와서 강물을 완전히 막아버리면, 빙하로 막힌 곳의 상류 쪽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져서, 빙하를 한꺼번에 터뜨리기도 한다고 하였다. 구경하는 도중에, 1시간에 한두 번 정도, 대포 소리나 천둥소리가 나기에,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었는데, 전망대에 가보니, 그 소리는 끝에 매달려 있다가 강물로 떨어지는 빙하의 소리였었다. 다만, 떨어질 것 같은 빙하를 보고 있으면 절대 안 떨어지고, 다른 쪽에서 소리가 나서 보면, 이미 물에 떨어져서 물보라만 일어나고 있어서, TV에서 보던 것처럼, 빙하가 떨어지는 장면을 찍고 싶다는 욕망은 채울 수가 없었다.


















5시에 다시 버스로 되돌아와서, 엘 깔라파테에 6시 반에 도착하여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조금만 정리를 한 후 7시에 모여서, Mi Vioje 식당으로 가서, 양고기를 포함한 고기 모듬(아사도)을 시켜놓고서 맥주, 와인까지…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었다. 최 과장이 돈을 조금 주어서 생긴 문제에 대한 사죄로, 와인을 쏴주었다.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면, 춥고 힘들었을 텐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걷고 보고 사진 찍기에 너무 운이 좋았고, 빙하 트레킹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된 것 같다. 트레킹 전반기의 날씨 운은 너무나 완벽했던 것 같다. 남은 트레킹에서도 날씨의 운이 좋기를 기도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간다. 이곳 4박 여행이 지나고 나면, 이번 남미 여행도 막바지로 갈 것 같다. 며칠만 더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