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스물 세 번째 회에서는 트래킹 천국이라 불리는 파타고니아와 파타고니아 최고봉인 피츠로이 트래킹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

대망의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첫날이자, 피츠로이 트레킹 날이다. 이번 여행 중 트레킹 거리도 제일 긴 코스이고, 표고차도 제일 높아서 제일 어려운 날이다. 어젯밤에 식당에서 호텔로 걸어올 때도 바람이 너무 거세어 앞으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고, 더 큰 문제는 하늘에 구름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호텔은 추워서 처음엔 걱정했었는데, 창문 아래의 라디에이터 온도조절 손잡이를 살짝 열어놓으니, 금방 따뜻해지더니, 방안이 훈훈해졌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잤다.
알람으로 기상한 후 7시에 조식하러 나갔다. 더이상 빵, 치즈, 햄, 베이컨, 스크램블은 느끼해서 먹기 힘들었다. 특히 긴 트레킹을 앞둔 상태여서 부담스러운 식사를 피하고자, 커피 2잔, 오렌지 주스, 콘후레이크+우유만 먹고 올라왔다. 이틀 밤을 자는 호텔이니, 큰 짐은 놔두고 등산 배낭만 챙겨서 8시에 모였다.
반 팔 티셔츠, 긴 팔 티셔츠, 그 위에 얇은 다운재킷, 윈드 스토퍼만 입었고, 만약을 대비하여 방한복과 우비, 목토시 2개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우산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우비를 믿고 우산은 가방에서 뺐다.

더하여 물 2개, 도시락 샌드위치를 넣으니, 가방이 거의 꽉 찬 느낌이었다. 불행하게도 아침부터 비도 오고, 바람도 셌다. 한국에서도 더운 날 우비를 입고 산행을 한다는 것을 끔찍이 어려워 했었는데, 트레킹 첫날부터 비가 내리다니 걱정이 앞섰다.
‘엘마르’라는 여자 가이드가 왔는데, 키도 크고, 몸매도 군살이 없이 운동을 잘할 것 같은 체형을 가진, 든든한 가이드였다.
8시에 봉고차에 타고, 30분 정도 강물을 따라 올라가서 El Pilar 호스텔에서 내렸다. 여전히 비가 왔다. 여기는 사유지여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여, 조용히 걸어서, 트레킹 입구에 도착하였다.
우리 최 과장이 비옷을 꺼내 입으라고 했다. 체온이 떨어지는 게 제일 문제니까, 몸이 젖기 전에 비옷을 꺼내 입으라 했다. 모두 비옷을 꺼내 입을 때, 엘마르 가이드는 안 입는 것을 보았다. 비의 양이 줄어서 보슬보슬 내리는 수준이 된 것 같아서, 비가 더 세지면, 비옷을 꺼내 입고, 이 정도 비에서는 그냥 생활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위드스토퍼를 믿고 그냥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분들은 다 입는데, 나만 최 과장 말을 어기고 안 입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비옷 입고 내가 하루 종일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선택이 좋았다. 1시간 정도 산행 후, 보슬비가 점점 이슬비처럼 변하다가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8시 반에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곧 숲속으로 들어가서 걸었기에 비 맞는 양이 더 줄었다. 목토시를 잠시 후 제거했다. 언덕길 초입에 도착하니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앞산의 빙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에 입은 다운 패딩재킷을 벗었다. 가방에 옷을 꽉꽉 쑤셔 넣어야 했다. 언덕 하나를 넘고 나서는 거의 평지 트래킹이었다.
11시 30분 즈음 Poincenot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에는 작은 2~3인용 텐트만 쳐져있어서, 이렇게 캠핑하면서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백패킹 캠핑이라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한국의 오토캠핑은 너무 심한 장비를 들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부터 잠시 후 계곡을 지나는데, 엘마르 가이드가 물통을 꺼내서 물을 받는 것이었다. 물이 너무나 맑아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깨끗하던 몇백 년 전에 내린 눈이 지금 녹아서 흐르는 것일 것이다. 그전까지 물을 별로 안 마셔서 나는 물을 채울 일이 없었는데, 하산 중에는 빈 물통에 계곡물을 채워서 내려왔다.
언덕길은 생각보다 길었고 가팔랐는데, 앞서서 잘 걸어가시는 두 여사님을 따라가느라 힘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번에도 제일 뒤에서 갔는데, 조 선생님이 카메라와 짐이 많아서 힘들어 보였으나, 나도 사실 간당간당하여 짐을 대신 져드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걷다 쉬다 꾸준히 올라가서 1시에 Tres 호수에 도착해서 피츠로이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언덕 위까지 무사히 다 올라오신 69세 조 선생님의 열정과 체력이 역시나 대단하신 것 같다.









피츠로이를 보면서 빙하가 떠 있는 맑은 호수 근처에서 샌드위치 반 개를 먹었는데, 치킨 샌드위치보다 야채 샌드위치가 덜 퍽퍽해서 먹을만 하였다. 그전까지는 땀나고 더워서 옷을 벗기 바빴는데, 빙하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추워지기 전에, 가방에서 모든 옷을 꺼내 입고, 모자를 썼더니, 괜찮았던 것 같다. 체온 조절이 중요하다.
아침부터 비가 오다가 그치고, 구름이 조금씩 걷혀서 앞산의 빙하가 조금씩 보이더니, 캠핑장에 도착할 즈음에는 바람이 잦아들고, 하늘이 조금씩 개는 듯했다. 아침에만 하더라도 이번 여행에서 피츠로이는 못 보겠구나 싶었는데, 캠핑장 이후로 오르면 오를수록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평소에 바람이 너무 강해서 사람이 날아갈 정도라고 해서, 바람이 너무 세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캠핑장 이후로 입산 금지를 할 정도라고 했는데,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올라갈 수 있었다.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어서니, 피츠로이가 구름을 거의 벗고 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마지막 구간의 얕은 고개를 더 넘고 나니, 완벽하게 파란 하늘을 뒤로 하고, 너무나도 눈부시게 완벽한 피츠로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곳에 7번째 와본다는 최 과장도 오늘이 최고의 날씨라고 하였다. 첫 트래킹부터 운이 잘 따라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피츠로이는 라틴아메리카 탐사선 ‘비글호’의 선장이었다. 그 배에는 젊은 의대생이 타고 있었는데, 그가 찰스 다윈이었다. 비글호와 함께 한 탐사에서 영감을 얻은 다윈은 후에 ‘종의 기원’을 저술하여 인류의 사고 전환을 일으켰다. 명예와 신앙심이 깊었던 영국 왕족 출신의 피츠로이는 이런 신성모독의 책이 발간되게 된 것이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완고한 최고봉에 피츠로이 이름을 붙인 이유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이해는 가는 것 같다. 이런 피츠로이도 1952년 첫 번째로 정상을 허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피츠로이 전망대에 도착하기 전에 구름에 가려져 있던 상태에서 조금씩 피츠로이가 보이면서, 구름이 피츠로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산 꼭지점에서 구름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 피츠로이라는 이름 대신, 원주민들이 불렀다는 엘찰텐-연기 나는 산-이라 불렀다.














트레스 호수 너머 만년설 위로, 발자국을 내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행렬이 보였다. 현 위치가 1000m인데, 피츠로이가 3405m이니, 앞으로 2400m만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중에 1000m 이상 수직 암벽을 올라야 하는 일이 힘든 일일 텐데, 그런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너무나도 멋진 풍경을 보면서 점심 먹고 사진 찍고, 2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는 길 내내 손바닥을 보이며 흔들어주는 피츠로이를 뒤돌아보고 사진을 계속 찍게 되어 걸음걸이가 계속 늦어졌다.




긴 트레킹을 하고 마침내 6시 반에 엘찰텐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총 24km의 거리였고, 10시간 이상의 소요시간이 들었다. 연습 없이 바로 오기엔 무리가 되는 코스 같은데, 그래도 마을에서 오르막길로 시작하는 것보다, 강 상류로 해발 200m정도 올라가서 하산을 하면서 트래킹을 하는 것이 덜 힘들고, 초반 입구에 원시 자연림 숲길이 아름다워서, 오늘 우리의 코스처럼 걷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모두 너무 힘들어서 호텔로 들어갔다가 나오기 힘들어서 호텔에 들어가지 전에 저녁을 먹자고 하여 호텔 바로 아래에 새로 생긴 La Cava라는 펍 앤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맥주집 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식사가 아니라 안주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우리의 입맛에 잘 맞았다. 수제 맥주도 있다고 해서 주문을 했는데, 너무 싱거워서 맥주 맛은 없었다.
식사 후 바로 호텔로 들어와서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나와 창밖을 보니, 아직까지 햇살이 너무 좋았다. 9시 반인데도 햇살이 봉우리에 남아있었다. 해가 금방 떨어질 것 같아서, 얼른 다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서 마을 밖 다리 건너까지 가서 피츠로이와 세로토레의 석양 사진과 셀카를 더 찍었다. 모처럼 혼자만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짜릿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문제는 해가 지는 골든타임이라 생각하고 나간 것이었는데, 노을이 지지 않고 계속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이었다. 피츠로이 꼭대기를 비치는 햇살도 금방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한참을 그대로 유지했다. 위도가 매우 낮으니 해 떨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10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몸이 추워져서 포기하고 그냥 되돌아왔다. 그랬더니, 몸에 몸살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아서, 일기도 못 쓰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잤다.
조금 더 무리하면 다음날 세로토레 트레킹을 못할 것 같았다.
오늘 저녁 식사 때는 나와 조 선생님이 30달러씩 내서 맥주를 샀다.










정상에서 먹다 아껴 둔 족발이나 통닭을 살 쪼금만, 정말 쬐금만 붙여서
이놈들에게 주면 근방 서로 경계를 풀 수 있지. ㅎㅎ
산을 다 내려오면 밤10~11시 정도.
일주일에 3일 씩 한 달만에 85KG에서 72KG으로 살을 뺀 경험도 있다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