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 한편]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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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 한편] 스캔들
  • 강재선
  • 승인 2003.1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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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스캔들’을 봤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정사장면, 화려한 색채감각, 재치 넘치는 대사와 구성. 초반부에 시니컬한 프로정신을 자랑하던 선수들의 자신만만한 눈빛과 농담 따먹기는 영화를 더욱 발랄한 코믹에로물로 이끌어간다. 생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멜로드라마로 빠져들기 전까지는.

조씨 부인과 조원의 내기로 시작해 권도령과 소옥, 숙부인이 개입한 얽히고 설킨 게임에서 최후의 승자는 ‘마음은 권도령, 몸은 조원, 시집은 조씨 대감’에게 간 소옥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나오는 마지막 화면, 부른 배를 문지르며 미소짓는 소옥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지고지순하고 희생을 자처하는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철지난 유행가처럼 시들해 보이고, 누군가의 배신이나 복수, 시트콤처럼 가볍고 즐거운 연애담, 혹은 애절한 사랑 그 후에 찾아오는 일상의 나른함에 관한 이야기에 호기심이 가는 시대.

사랑이라는 것은 믿을 만한 것도, 도움이 될만한 것도 아니어서 때론 거추장스럽다고들 하는 시대. 깊이 관여하면 이렇게 되니 자신 없으면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하는 듯도 하고, 그런 감정 자체가 먹고사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거나 용납될 수 없으니 부질없는 생각일랑 접고 그저 영화라는 판타지로 만족하라는 듯도 하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하지만 어찌 보면, 사랑을 희롱하다가 패배하고 몰락해 간 선수들의 알 듯 모를 듯한 눈물이, 나를 교묘하게 선동하는 듯도 하다.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사랑과 결혼의 신화에 한번 물들어보라고.
가을 다 지나서, 가을 타나보다. 뜬금없이 사랑타령을 해대다니. 환자가 너무 없어서 그런가 보다.

 ‘당신의 마음을 얻으니 내 사랑이 변하더이다’는 조원의 말에도 눈물을 삼키며 바닥에 떨어진 붉은 빛 목도리를 주워 가는 숙부인의 떨리는 손길이, 봄날 살얼음판의 구멍 속에 동동 떠 있던 그 붉은 빛 목도리가, 가슴에 남는다.

조원이 응급처치를 받고 목숨을 건져 숙부인과 함께 연경으로 떠났다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가지 않은 길은 허망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지만, 우문우답이겠지만, 그랬기를 바란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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