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대한민국 학살 인정하고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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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대한민국 학살 인정하고 배상하라”
  • 정선화 기자
  • 승인 2018.04.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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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화법정,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실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정부에 배상 및 진상조사 권고
지난 21일과 22일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렸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요구하는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법정)이 원고 승소 판결로 막을 내렸다.

지난 21일과 22일 양일간 열린 시민법정에서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이 정한 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공식 사과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군 참전 기간 동안 민간인 대상 불법행위 진상조사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을 홍보하는 모든 공공시설 전시물에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을 함께 전시할 것 등도 주문했다.

판결 순간 법정에 자리해 있던 원고들은 눈물을 보였다.

300여 명의 시민들이 청중석을 가득 채웠다.

이번 시민법정은 50년 전인 1968년 1월 한국군에 의한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된 퐁니·퐁넛마을의 응우옌티탄과 하미마을의 응우옌티탄, 동명의 학살 생존자 2인이 원고로서 피고 대한민국에게 진상조사 및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재판이었다.

참고로 시민법정은 대한민국 법령 및 국제인권법·국제인도법을 근거 규범 삼아 진행되는 일종의 모의 법정으로, 법적 효력은 없지만 실제 법정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이번 법정은 국가배상소송의 형태로 열렸다.

재판부는 김영란 전 대법관과 이석태 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회 위원장,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 등으로 구성됐으며 이날 법정에서는 피고 대한민국의 대리인들과 원고 측 변호사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증인 및 당사자를 신문하는 등 절차가 진행됐다.

단, 일반적인 재판이 아닌 만큼 배상청구권 소멸시효 규정을 배제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의 심문은 재판부만 할 수 있도록 한정하는 등 조건이 걸렸다.

피고 대한민국이 소환에 응하지 않았기에 재판부는 변호사 3인을 피고 대리인으로 지정해 재판을 진행시켰으며 이들은 법정에서 “적아를 구별키 힘든 게릴라전 상황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희생이었으며 퐁니·퐁넛·하미마을에 게릴라 병력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원고 측 변호인은 “퐁니·퐁넛·하미마을에서 학살당한 주민들은 1세 미만 영아도 포함돼 있는 등 모두 민간인이었다”며 “학살장소에선 탄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근거리에서 무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계획적으로 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맞섰다.

원고인 두 명의 응우옌티탄과 통역, 변호인들.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비무장 민간인 공격… “‘의도적 학살’로 보인다”

이날 학살 생존자인 두 응우옌티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또렷하게 학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8살이었다는 퐁니마을 응우옌티탄은 “이모와 동생 등 가족 7명이 있던 집에 한국군이 들어와 수류탄을 보여주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던지겠다고 손짓했다”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국군이 갑자기 총을 쐈고, 나는 총에 맞아 쓰러진 채로 집에 불을 지르려는 한국군을 말리려던 이모가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11살이었던 하미마을의 응우옌티탄도 “한국군은 강제로 방공호에 우리 가족과 이웃 등 11명을 몰아넣은 뒤 수류탄을 던졌다”며 “그 순간 어머니가 몸으로 나와 동생을 덮었기에 우리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의식을 찾았을 땐 너무나 끔찍한 광경이었고 동생도 3일 후 죽었다”고 말했다.

퐁니·퐁넛·하미마을 주민들도 학살 당시 정황에 대한 영상 증언에 나섰으며 당시 퐁니‧퐁넛 작전에 참여했던 1중대 2소대 군인도 영상을 통해 “손을 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노인을 고참병이 총으로 쏘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고, 적과 교전하는 상황이 아닌데 민간인을 쏘는 것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정태환 이사가 연대발언에 나섰다.

또한 이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광주·전남지부 회원이자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이사로 활동 중인 정태환 이사가 발언을 통해 두 피해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재판부에 준엄한 판결을 내릴 것을 호소했다.

건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지역을 돕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사단법인 베트남평화의료연대를 창단, 2000년부터 매년 베트남을 방문해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태환 이사는 "1999년 노근리 학살과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실이 폭로되고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베트남에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사죄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진료를 떠났다"며 "베트남평화진료연대 진료단은 지난 20년 동안 학살지역인 꽝하이성, 꽝남성, 빈딩성, 푸엔성을 순회진료하며 무수히 많은 학살의 증거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 이사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괴감이 들 정도의 글이 새겨진 증오비와 마을 인민위원회에서 수기로 작성한 학살 당시의 조사보고서, 현장 사진을 보고 더 많은 생존자들의 증언도 들었다"며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나"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과 도쿄시민법정 이후에도 일본은 변한 게 없지만, 우리는 준엄한 판결을 내리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진실한 사과, 이에 걸맞는 피해보상으로 진정한 해결을 해야 한다"며 "어려운 결정인데 용기내어 증언해 주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한국에는 당신들의 손을 잡아줄 많은 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시민평화법정 재판부.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최종 판결에 나선 재판부는 “원고 측 증언을 검토한 바 진실이 구체적이며 신빙성이 있고, 원고들은 전쟁 중에도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으로 인정된다”며 “수십여 명의 민간인이 비무장으로 살해된 사건인 만큼 의도치 않은 희생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의도한 집단 학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재판부는 “이에 따라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며 국가 배상법에 따라 배상하라”며 “피고 대한민국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는 만큼 원고들이 존엄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공식 사과 및 사실을 전시하고 전쟁 기간 동안 발생했을 수 있는 한국군에 의한 불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작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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