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치과의원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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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치과의원의 경험
  • 김혜영
  • 승인 2017.12.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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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⑦] 고려대학교 치기공학과 김혜영 교수

본지는 구강부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연구하고, 노동자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해 활동해 온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사장 이흥수 이하 산구원)과 공동기획으로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을 연재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번 기획에서는 고려대학교 치기공학과 김혜영 교수의 과거 공단지역에 세워진 '푸른치과' 등 지역치과의원 경험으로 채워졌다.

- 편집자

뜻밖에 지역의원의 경험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달라는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흥수 이사장님의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지역치과의원에 근무한 지가 이미 십년이 지난 터이고 이제 지역지과의원이 모두 문을 닫아서 연결성이 없던 터라 많이 주저했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아도 좋고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사장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보았으나 역시 구체적인 사항들은 저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고 희미한 주관적 느낌 뿐 이었습니다. 저의 잘못된 기억이나 주관적으로 왜곡된 부분은 다른 분이 이어서 바로잡아 주시고 파편적인 기록에 중요한 부분에 더하여 완성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지역치과의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분위기를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1983년도에 학내에서 ‘짭새(사복경찰)’와 그들에 의해 비참하게 끌려 나가는 학우들을 목격하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 당시에는 대학생의 주요 임무가 사회에서 혜택 받은 계층으로서 다시 사회를 위하여 무언가를 공헌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과로 진입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고민은 역동적인 관악의 학생운동 분위기로부터 분리돼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찾아 낸 것이 직업적 의료인으로서 사회를 변화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의료운동이었고 스스로 ’의료운동 활동가‘로 규정지었습니다.

교내 동아리로서 의료연합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영등포 산업선교회, 성남 주민교회 및 시흥 새봄교회에 무료 주말진료 활동과 이를 매개로 한 지역 활동에 참여하면서 예비의료인으로서 무언가 사회 변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의료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께서 사회에 공헌하는 의료운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틀을 만들고 추진하시던 것이 ’지역 치과의원 사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지역치과의원의 기본 틀은 지역주민을 위하여 열린 치과진료와 지역 주민 활동에 부합하는 상담소의 운영이었습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회원들의 주도하에 가장 먼저 1988년 구로 노동자 지역에 ’구로 푸른치과의원‘이 설립됐습니다.

이어 안양 지역에 설립된 ’군포치과의원‘과 성남 지역에 설립된 ’성남 푸른치과의원‘은 노동자와 주민 모두를 포함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활동하고자 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다수 후원자들의 기금으로 지역치과의원을 설립했고 치과의원으로서 진료활동을 하면서 노동 단체 및 주민단체를 측면 지원하고, 또한 노동건강상담실을 운영해 노동현장과 지역현장에서의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건강향상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위한 구체적 활동을 하고자 했습니다.

군포치과의원에는 두 사람의 치과의사 - 김혜영과 고소영- 가 근무했으므로 사업장과 주민단체의 구강검진사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치과의사 선배님들은 지역치과의원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설립 취지에 맞는 활동이 수행되도록 많은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역에 대한 진료활동으로는 먼저 지역주민의 구강건강을 향상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조기치료 및 예방적 관점에서 진료를 수행했고 노동조합이나 주민 단체를 통하여 사정이 어려운 환자를 연결하도록 하여 낮은 수가를 적용해 진료했습니다. 노동건강상담실을 통해 개별 현장의 상황에 적합한 노동자와 주민 대상의 건강교육을 맞춤형으로 실시하고 특히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유해 환경과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통하여 가능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업장 구강검진을 시도하는 단계에서는 구강검진에 필요한 시간을 요청하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노동조합의 협조를 얻어 조합원 대상의 구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하여 점심시간이나 퇴근 무렵을 맞추어 대기하고 있다가 가능한 분들을 검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유료 또는 무료 구강검진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수년간 구강검진이 지속적으로 실시되면서 검진기록들이 쌓였고 이를 토대로 구강검진의 성과를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의 전신인 산업구강건강협의회의 학술집담회 등에서 발표했고 이러한 근거자료들은 사업장 구강검진의 법제화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더불어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이황화탄소에 중독된 것을 계기로 실시된 건강검진에 지역치과의원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구강건강검진을 실시했고 이를 토대로 이산화황에 의한 구강건강에 대한 영향을 발표한 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십여 년이 지난 후 그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생각하며 가슴 벅찬 열정에 불타오르던 우리들, 지역치과의원 구성원들을 생각해 봅니다. 밤새워 이상적인 지역치과의원을 꿈꾸다 맞은 아침의 해장국, 야간 진료에다 주말 진료까지 하느라 목디스크를 얻었던 일, 함께 여서 보람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어서 서로가 뿌듯했던 일, 치과의 청결을 위해 수세미와 왁스로 완벽하게 청소를 끝내고 갔던 뒷풀이, 그저 흥겨웠던 개원기념식의 시간들… 모두가 그리워지는 시간들입니다.   
 
돌아보면 지역치과의원 사업은 의료인으로서 건강의 가치를 사회의 진보적 발전으로 실현하고자 한 소중한 시도로서 자발적인 기금으로 씨앗을 삼고 헌신적인 다수의 의료운동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의미 있는 의료운동의 역사입니다. 이미 지역치과의원이 문을 닫은 지 오래이지만 진정한 의료인의 가치를 위하여 노력하고 건강한 사회로의 발전을 앞당기고자 했던 고귀한 뜻은 현재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의료운동의 활동 속에 남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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