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치과이야기] 과학과 치의학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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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치과이야기] 과학과 치의학의 만남
  • 강신익
  • 승인 2004.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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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치과의료는, 생활 속에서 발견한 경험을 남에게 전해주거나 이를 직접 시술해 주는 ‘기술과 상업’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 기술의 내용과 형식은 당시의 문화가 구강병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랐을 것이다. 악령의 침입을 구강병의 원인으로 보는 경우에는 그 악령을 쫓아내는 주술사가 치과의사의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벌레나 나쁜 체액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벌레를 잡아내거나 체액의 균형을 맞추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치과의사였을 것이다.

이 때는 벌레를 잡아내거나 몸속의 나쁜 체액을 빼낼 수 있는 도구를 가진 사람이 치과의사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양의 경우 그런 사람들이 바로 대장장이와 이발사였다. 그들은 쇠를 벼리는데 쓰던 집게로 통증의 원인이 되는 치아를 통째로 뽑아내기도 했으며, 면도를 하는데 쓰던 칼로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뽑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지나 과학혁명을 경험하면서 서구인들은 특정 질병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사로잡힌다. 특히 결핵과 콜레라를 일으키는 세균이 현미경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모든 병의 원인을 세균에 돌리는 풍조가 만연한다. 처음으로 치아우식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윌러비 밀러(Willoughby D. Miller)도 그런 시대정신에 충실한 사람 중 하나였다. 오늘날 치의학이 과학의 권위를 입고 지금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상당부분 그의 공로라 할 수 있다.

1875년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밀러는 화학, 물리학, 응용수학을 공부한 과학자였다.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베를린에서 개업 중이던 미국인 치과의사 애버트(Frank P. Abbott)를 만난다. 애버트는 밀러와 같이 과학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치과에 입문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밀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애버트의 제자가 된다. 이후 미국으로 들어와 치과의사 자격증을 획득한 밀러는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 애버트와 동업을 하는 한편 공부를 계속해 의사면허(M. D.)를 획득한다. 당시 결핵균을 발견하는 등 미생물학 분야에서 선구적 업적을 쌓고 있던 코흐 (Robert Koch)의 자극을 받아 구강미생물학 연구에 매진한 끝에 1890년 마침내 『구강 내 미생물 Microorganisms of the Human Mouth』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그에 따르면 치아우식은 치아표면에 침착돼 있던 탄수화물이 미생물에  분해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이 이론(chemico-parasitic theory)은 이후 예방치의학의 기본 개념이 되었을 뿐 아니라, 구강병의 발생원인에 대한 최초의 ‘생물학적’ 설명이었다.
밀러보다 약 20살 정도 연상이었던 블랙(Greene Vardiman Black)은 복잡한 학문보다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렇지만 한번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인해 현대 치의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업적은 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말감의 물성 개선, 반점치 연구, 조직학과 병리학 연구에서 뿐 아니라 치과의료법의 제정과 후진 양성, 전문잡지의 발간 등 모든 분야에서 치의학의 선구자 역할을 충실해 수행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의과와 치과가 지금처럼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는 주로 치과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그가 가진 면허증은 치과의사가 아닌 의사면허였다. 물론 미주리치과대학에 근무하면서 명예치과의사면허를 획득했고 이후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으며, 치과를 의과에서 분리해 독립적 전문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의과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 치의학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치의학자 두 사람의 족적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적성을 살려 치의학이 지금의 지위와 위신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밀러는 대학에서 공부한 기초과학을 치과분야에 적용해 치의학의 생물학적 기초를 닦았으며, 블랙은 1년간 초등학교에 다닌 것 말고는 어떤 공식적 교육도 받은 적이 없지만 실천적 역량을 살려 임상치의학과 사회치의학의 귀중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기초치의학, 임상치의학, 사회치의학이라는 현대 치의학의 세 갈래 흐름이 시작된다.

반점치에 대한 연구 도중 불소의 우식예방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도 전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블랙은 죽기 19년 전인 1896년 이미 불소의 우식예방효과를 예측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이미 망가진 치아를 고치는 수복 위주의 치의학에서 그것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개입하는 예방치의학으로의 길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두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구강미생물의 통제(치면세균막관리)와 치아 구성성분의 조절(불소 투여)이라는 관리방침은 아직도 우식 예방의 주요 경로다. 밀러와 블랙은 아직도 우리의 믿을만한 스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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